78세 중식 대가, 후덕죽 "'조직 생활'에서 중요한 것 뭐냐면..."

[리뷰]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후배들에게 늘 상경하애(上敬下愛)의 마음으로 업장으로 들어가라고 이야기한다. 주방만이 아니라 어느 조직 생활도 마찬가지다. 제일 중요한 게 조리사이기 전에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리사들이 입는 옷도 흰색인 이유는, '항상 마음을 깨끗하게 가지라'는 의미다. 당연히 요리 기술도 있어야겠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인품이라는 것을 제자들에게도 항상 가르쳤다."

21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중식대가 후덕죽 셰프가 조리사의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후덕죽 셰프는 57년 경력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중식계의 역사이자 전설이다. 중식 4대 문파로 불리는 팔선의 창립멤버이자, 중식당 조리사 출신으로는 최초로 대기업 임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어느덧 78세가 된 지금도 현재까지 유명 호텔 중식당의 총괄 셰프로서 왕성하게 현장을 지휘하는 현역이다.

'흑백요리사' 출연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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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넷플릭스 시리즈 < 흑백요리사2 >에서 후덕죽 셰프는 탑3까지 올랐다. 이미 존경받는 현역 최고령급 셰프가, 굳이 잘해야 본전인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원래 외부적으로 노출을 많이 안 하는 성격이다. 출연 요청을 하도 많이 해서 망설였다. 57년 경력이 있다 보니까 젊은 친구들에게는 용기를 주고, 저도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어 출연을 결심했다."

팀 단체전에서 후덕죽 셰프는 누구나 인정하는 요리 대가이자 최고참인데도, 권위나 욕심을 내세우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젊은 후배들을 든든하게 받쳐주며 허드렛일까지 자처하는 모습은 큰 감동을 선사했다.

"출연한 요리사들이 모두 개인마다 다 능력이 있고 기술을 갖춘 분들이다. 거기서 누군가는 가장 기초가 되는 일을 밑에서 도와주지 않는다면 단체전이 잘 이뤄질 수 없다. 팀워크가 가장 중요하니까 '무슨 일이든 간에 팀을 도울 수 있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있다."

시청자들은 경연 내내 보여준 후덕죽 셰프의 모습을 통해 권위를 내세우는 '꼰대'가 아닌, 우리가 보고 싶어 하던 아량을 베푸는 '참어른'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환호했다. '본인이 잘할 수 있음에도 자신 있다고 하는 누군가가 나타나면 의심 없이 믿고 양보하기', '이미 경지에 올랐음에도 항상 겸손함을 지키는 자세' 등 후덕죽 셰프의 대인배적 가치관을 극찬하는 의미로 '후덕죽 사고'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지금도 57년 했다고 해서 '기술은 내가 최고다'라는 식에서 절대 직원들에게 그렇게 강조하지 않는다. 기술은 아무리 뛰어나도 종이 한 장 차이다.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마음가짐과 자세다."

천하의 후덕죽 셰프도 단체전 경연날은 힘들었다. 그는 "3라운드에서 한 표로 승패가 갈릴 수도 있어 힘들었다. '오히려 떨어지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면서 "출연한 젊은 셰프들이 더 정신못차리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 내 체력이 괜찮구나'라는 자신감도 들었다"고 밝혔다.

후덕죽 셰프는 '무한 당근' 미션에서 5가지 당근 요리를 선보였다. 당근 반죽으로 만든 가짜 꼬마 당근 등, 최고령 나이가 믿기지 않는 창의적이고 재치 있는 아이디어를 선보이며 감탄을 자아냈다. 이를 두고 그는 "아이디어를 적거나 사전에 기획한 건 하나도 없었다. 당근을 하나씩 만들면서 다음 건 뭐 해야겠다는 생각이 금방 머릿속에 떠올랐다"면서 "끝날 때가 되니까 오히려 2-3가지를 더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 흑백요리사2 >에서 우승하지는 못했지만 후덕죽 셰프는 "결승까지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떨어진다는 생각을 안 했고 경연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서 "그래도 57년 동안 해왔던 내 요리가 아직 썩지 않았다고 생각했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잡일부터 시작한 후덕죽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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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덕죽 셰프는 20살의 나이에 요리를 시작했다. 육 남매의 넷째였던 후덕죽 셰프는 초등학생 때 어머니를 잃고 형제가 다 흩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부친의 친구 소개로 "여기서 일하면 햄과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조건에 매력을 느껴서 양식당에 취업했다.

이후 중식의 세계에 매력을 느낀 후덕죽 셰프는 1971년 사천요리를 배우려 당시 국내 최고의 중식당으로 불리던 반도호텔의 '용궁'에 주방보조로 취업했다. 처음 1년간은 각종 잡일만 도맡아야했고, 요리 실수를 해서 뺨을 맞는 일도 있었다. 이후 일본에서 건너가 2년간 지내며 광둥요리를 배우기도 했다. 후덕죽 셰프는 "당시의 경험이 오늘날까지 큰 힘이 되었다"고 회고했다.

후덕죽 셰프는 고 이병철 삼성 초대 회장과의 인연을 추억했다. 1977년 그는 서울 신라호텔의 중식당 '팔선'의 창립멤버로 합류한다. 하지만 개업 2년이 지나도 목표였던 1위를 달성하는 데 실패하자, 당시 제일주의를 추구하던 이병철 회장은 팔선에 폐업 지시를 내리면서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당시 부주방장이었던 후덕죽 셰프는 전 주방장의 이탈로 자리를 물려받았다. 후덕죽 셰프가 메인 셰프가 된 이후, 매장을 재방문한 이병철 회장은 달라진 음식을 맛보고 감탄하며 그 자리에서 폐업 철회를 결정했다. 그리고 약 1년 뒤에 팔선은 드디어 경쟁자인 도원을 제치고 중식당 업계 1위로 올라선다. 이후 팔선은 국내 중식 4대 문파로 자리 잡았고, 후덕죽 셰프는 요리사로서는 국내 최초로 대기업 임원까지 승진하는 신화를 이뤄낸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재벌 회장 진양철은 이병철 회장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인물인데, 진양철의 명대사 "초밥 한 점에 밥알이 몇 개고?" 역시 실제 이 회장이 했던 어록이다. 이 회장은 음식에 대한 조예가 깊기로 유명했고, 평생 요리를 했던 후덕죽 셰프조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질문에 당황했다고 회고했다. 후덕죽 셰프는 자신을 높이 평가하고 아껴준 이병철 회장에게 "인정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참 요리사로서 인생이 완전히 전환된 것"이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후덕죽 셰프의 끊임없는 노력과 연구로 만들어진 신메뉴만 200가지가 넘는다. 이병철 회장이 말년에 폐 건강이 악화되어 식사조차 제대로 못 하던 시절에는 후덕죽 셰프가 직접 중국과 일본까지 수소문해 직접 약선 요리 비법을 찾으러 다니며, 폐 건강에 좋은 천패모가루를 넣은 배찜인 '천패모설리'를 만들었다. 후덕죽 셰프가 개발한 요리 레시피들은 이제 후배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후덕죽 셰프의 요리 실력이 해외에도 알려지면서 여러 차례 스카우트나 방송출연을 제의받았다. 1995년 방한한 당시 중국 장쩌민 국가주석은 후덕죽 셰프의 요리를 맛보고 "중국 본토보다 훌륭하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이후로 한동안 중국 측에서 많은 러브콜이 쏟아졌다. 하지만 후덕죽 셰프는 모든 제의를 정중하게 거절하며, 자신을 믿어주고 키워준 직장과의 의리를 끝까지 지켰다.

후덕죽 셰프는 1987년 한국식 '불도장(佛跳牆)' 요리를 처음으로 선보인 인물이기도 하다. 불도장은 각종 산해진미를 육수에 푹 끓여낸 중국식 보양요리다. 후덕죽 셰프는 구하기 힘든 비싼 중국식 식재료 대신 한국에서도 구할 수 있는 오골계, 전복, 해삼, 흑돼지 등심 등의 재료로 한국식 불도장을 고안해 냈다.

"만일 < 흑백요리사2 > 결승에 진출해 '나를 위한 요리'를 했다면 불도장을 하려고 재료까지 준비했다. 황궁에서 먹는 스타일로 불도장을 구상했는데 결승에서 보여줄 수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 제가 진급도 되고 임원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도 그 요리 덕분이었다. 불도장은 제 인생을 바꿔준 요리다."

후덕죽 셰프는 지금도 주방에서 후배들에게 '상경하애' 철학을 강조한다고 밝혔다. 후배는 선배를 존경하고 선배는 후배를 사랑으로 대하라는 뜻이다. <흑백요리사>에서 사제대결로 명승부를 펼쳤던 천상현 전 청와대 셰프는 "제게는 사부님이 두 분 계시다. 한 분은 아버지이고 한 분은 후 사부님이다. 저는 영원한 사부님의 제자"라고 할 만큼 지금까지도 후덕죽 셰프를 향한 남다른 존경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흑백요리사에 나갔을 때도 제게 '왜 참외만 짜고 있냐'고 이야기하더라. 누구나 다 우위의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주방이든 어느 조직 생활이든, '야, 내 말 들어 인마' 이런 식으로 하는 사람들도 많다. 따뜻한 분위기가 되어야 후배들이 열심히 하고 배우고 일하는 데 근무 분위기가 안 좋으면 금방 그만두는 일이 많다. 제일 중요한 게 조리사가 되기 전에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성과 품격을 지켜야 한다."

후덕죽 셰프는 긴 세월을 버틸 수 있게 한 사람으로 아내를 꼽았다.

"아내를 만난 당시에 처가에서 반대가 심했다. 당시는 남자 조리사가 사회적으로 외면받던 시대였다. 가족의 반대에도 둘이서 결혼식을 올렸다. 20년 전에 귀화했지만 그 당시에는 국제결혼이었다. 다행히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웃음)."

마지막으로 후덕죽 셰프는 앞으로도 현역으로 오래 활동하면서 후배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 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57년을 일했는데 앞으로도 60년까지는 체력적으로 문제없을 것 같다. 모든 기술을 혼자 가져가는 것보다는, 젊은 친구들한테 하나라도 나눠주고 가르쳐주고 키워주는 게 제 소원이다."
유퀴즈 후덕죽 중식 흑백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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