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5년 말 '박정민 신드롬', '박정민 앓이'라는 말이 돌았다. 청룡영화제를 비롯해 가수 화사의 뮤직비디오 출연으로 그가 보여준 존재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조금 이른 시점인 2019년 초 개봉한 <사바하>를 보며 이미 박정민 앓이를 시작했던 팬이었다.
박정민의 매력은 그저 잠깐의 유행처럼 소비되는 아이템이 아닌 어떤 역할에 두어도 인물을 정직하게 구현해 낸다는 점에 있다. 또 출판사를 운영하는 '뇌섹남'이라는 점, 마흔의 나이에도 소년 같은 표정을 지닐 수 있는 배우, 그리고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천재 피아니스트 역할을 위해 끝내 대역 없이 난곡을 연주한 집요한 열정까지. 식상한 표현이지만 박정민은 카멜레온 같은 배우다.
청춘에 어울리는 영화
▲영화 시동의 스틸컷
(주)NEW
지난 2019년 개봉된 영화지만 박정민이 출연한 <시동>은 1월, 한 해를 시작하는 '청춘'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청춘은 더 이상 나이로만 구분되는 시기가 아니다. 여전히 마음 한쪽 어딘가에서 앓고 있는 시간이 아닐까 한다. 나 역시 청춘이라는 시기를 지나 장년의 삶을 살고 있지만 여전히 선택 앞에서 머뭇거리고, 책임 앞에서 주저하며 스스로를 다잡는 연습을 끝없이 반복한다.
<시동>은 언제봐도 지금의 나와 지금의 시간을 비춰주는 영화다. 첫 관람 당시에는 속도감 있는 전개와 캐릭터들의 에너지, 웃음과 액션이 눈에 띄었지만, 다시 본 <시동>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한 장면, 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택일(박정민 분)이 소중한 엄마와 엄마의 가게를 지키려 거석(마동석 분)에 전화를 걸어 도와달라고 말했을 때 거석은 이렇게 답한다.
"소중한 건 네가 지켜."
이 짧은 대사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이다.
<시동>은 흔히 말하는 청춘영화이자 성장영화다. 그러나 그 안에는 사채가 있고, 조폭이 있고, 폭력이 있다. 표면만 보면 자극적인 사건들이 연속된다. 하지만 영화가 끝까지 표현하고 있는 중심은 의외로 간단하다. 어른이 된다는 것,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나'와 '소중한 사람들'의 문제라는 것이다. 누구에게 기대고, 누구를 지키며,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이야기다.
박정민이 연기한 택일은 미성숙한 인물이다. 욱하고, 말보다 행동이 빠르며,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순간이 잦다. 영화는 그를 멋있게 포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질하고 오만하며 안하무인인 사춘기 자퇴생이다. 대신 택일이 어떤 선택 앞에서 망설이고, 결국 어떤 순간에 스스로 나서게 되는지 천천히 보여준다. 박정민의 연기는 이 인물을 결국엔 납득 가능한 존재로 만든다. 저런 아이 한 명쯤은 있을 것 같다는 느낌, 그게 이 영화의 설득력이다.
소중한 걸 지키는 경험
▲영화 시동의 스틸컷(주)NEW
거석이라는 인물 역시 중요하다. 그는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는 한발 물러선다. 그 선택이 비겁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는 그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한다.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는 것, 지켜야 할 것을 스스로 지키는 경험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석의 "소중한 건 네가 지켜"라는 말은 냉정하면서도 어른다운 조언이면서 가장 친절한 한마디다.
이 지점에서 <시동>은 평범한 성장 서사를 넘어선다. 도움받는 것과 책임을 떠넘기는 것의 차이, 보호와 의존의 경계를 분명히 그어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결국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선택을 책임지려 한다. 그들은 모두 도망치지 않고 오롯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과정을 우리는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지난 20년에 가까운 시간을 숨 가쁘게 살아왔다. 투잡이 아닌 적이 거의 없었고, 쓰리잡까지 감당해야 했던 시기도 적지 않았다. 힘들다고 말하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다. 그러는 동안 누군가는 세상을 떠났다. 이미 떠난 사람을 떠올리며 지켜주지 못했다는 마음에 오래도록 시달렸다. 그래서 아직 곁에 있는 그 지인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듣고 함께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비로소 알게 된 것이 있다. 서로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지만 서로를 지탱하는 존재가 될 수는 있다는 것, 동시에 결국 각자가 감당해야 할 몫도 있다는 점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아픈 청춘의 시간을 이겨나가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영화 속 거석의 말처럼 "소중한 건 네가 지켜"야 하는 순간은 생각보다 깊게 그리고 오래도록 삶 속에 남아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 끊임없이 아픈 청춘을 조금이라도 덜 외롭게 살아내기 위해서 그리고 각자가 지키고 싶은 것을 끝내 놓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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