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자는 누구인가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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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세 사람의 이야기다. 일본문학과 영화의 오랜 전통이라 해야 할까, 그 옛날 아쿠타카와 류노스케가 <덤불 속>에서, 또 구로사와 아키라가 <라쇼몽>에서 펼쳐낸 방식을 얼마쯤 차용하여 각자의 시선을 옮겨가며 한 줄기 이야기를 풀어낸다. 완전 동일한 이야기를 각각의 시선으로 재차삼차 풀어내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랬다면 한 세기 쯤 뒤처진 차용일 뿐일 테니까. 서로 겹치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다른 줄기의 이야기가 시선을 옮겨가며 이어지는 것이다. 그로부터 드러나는 건 이런 류의 영화가 대체로 기대하는 사건의 진상이 아니다. 사람의 진심이다.
시작은 두 사람, 이십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타쿠야(키타무라 타쿠미 분)와 마모루(하야시 유타 분)다. 유달리 가까운 듯한 두 사람은 영 좋지 않아 보이는 일로 돈을 번다. 남의 호적을 구해서 파는 일인데, 이들의 역할은 호적을 구하는 데까지다. 호적을 사고파는 일이란 당연히 불법이게 마련. 공공연히 아무에게나 호적을 팔라고 권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들의 방식이란 호적을 팔 만큼 어려운 이들이 먼저 접근하도록 하는 것이다. 젊고 예쁜 여자를 고용해 SNS를 통해 사내를 꾀어낸 뒤 그렇고 그런 처지인 이들에게 은근한 제안을 하는 방식이다.
'일단 호적을 팔아도 2년 뒤엔 무탈하게 돌아갈 것'이란 대책 없는 설명에도 기댈 곳 없는 이들은 그 말을 의심할 줄 모른다. 그렇게 팔린 호적은 그를 필요로 하는 온갖 문제 많은 일들에 쓰이게 된다. 법을 어겨 출국이 금지된 이들, 과거를 지우고 새 삶을 살려는 이들, 심지어 범죄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호적이 쓰인다. 자연히 호적은 돌아오지 않는다. 호적을 판 이들은 취업도, 부동산 거래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그림자 신세가 된다. 말하자면 현대판 유령이다.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자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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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행위의 일부를 전담하고 수수료를 떼어먹는 타쿠야와 마모루가 대단한 프리랜서일 리가 없다. 범죄를 설계한 범죄조직이 있고 이들은 피해자에게 노출되는 말단일 뿐이다. 범죄조직에서 번듯한 미래가 있을 리도 없다. 피해자를 제대로 낚아내면 꽤나 큰 돈을 만질 수가 있지만, 어디다 자랑스레 꺼내놓을 수도 없는 일이다. 머리 큰 타쿠야가 은근히 다른 생각을 품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영화는 타쿠야가 큰 일에 휘말린 뒤 급변하는 이야기를 뒤쫓는다. 소소한 범죄행위로 일상을 꾸리던 이들의 삶이 한 순간에 흔들리고 마모루의 시선에서 타쿠야가 사라지는 일이 발생한다. 영화는 타쿠야를 친형처럼 따르는 마모루를 시작으로, 타쿠야, 다시 그를 조직으로 이끈 카지타니(아야노 고 분)의 시선으로 옮겨가며 이들의 결코 잊지 못할 이야기를 풀어낸다.
진짜 어리석은 건 누구인가
영화는 타쿠야와 마모루, 카지타니가 우리와 같은 사람이란 걸 보인다. 사회적 약자를 노려 호적을 사고 그 삶을 더 못한 곳으로 밀어 넣는 이들에게도 우정과 양심, 의로움과 용기가 없지 않다. 그런데 그들은 범죄조직의 일원이고 다른 누구를 해하기도 하는 것이다. 살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말하며.
처음엔 그저 핑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삶이란 언제든 다른 길이 있는 게 아니냐고. 너의 선택으로 네가 오늘 그 자리에 선 것이라고. 하지만 과연 그런가. 우리는 정말 다른 누구의 사정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세상엔 정말 어쩔 수 없었던, 적어도 그와 가까웠던 사정들이 있지는 않을까. 우리라도 그들과 달리 할 수 없었을 사정말이다.
<어리석은 자는 누구인가>의 미덕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던 이들의 삶을 우리 눈앞에 던져두고 이해하도록 한다는 점에 있다. 그들의 사정을 보며 우리는 우리가 돌보지 않고, 심지어 배제하고 배척한 이들이 실은 우리와 같거나 더 나을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적어도 그들이 딱한 처지에 처한 게 오로지 그들이 못난 까닭이라 말할 수는 없겠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어리석은 자'가 누구인지도 오랫동안 되묻게 된다. 영화의 세 주인공 타쿠야와 마모루, 카지타니는 비극과 희극, 영화 속 전개와 결말에 어떤 책임을 가지고 있는가. 그들, 또 이들 주변의 인물들 중 누가 어리석은 자인가. 처음엔 쉽게 답할 수 있을 것만 같던 질문이 갈수록 어렵게 느껴지는 건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토록 간단하지 않은 탓이다. 낙오시켜선 안 될 것을 낙오케 하는 세상이, 그조차 외면하는 우리가 어쩌면 가장 어리석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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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