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흑백요리사> 시즌 2 결승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떨어지면 안 돼!"
잔뜩 긴장한 채 안간힘을 쓰며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던 기억이 있는가. 마치 평균대 위를 걷는 것처럼. 우리는 언제부터 그렇게 걷는 법을 배웠을까.
화제의 프로그램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시즌2 최종화에서는 서로 다른 궤도 위에 서 있는 두 셰프가 결승전에 올랐다. 미국 최고의 요리학교를 졸업하고 다수의 파인다이닝 식당에서 경력을 쌓아온 '흑수저' 이하성 셰프. 그리고 음악을 하다 만화책을 계기로 요리에 빠져들었고, 늦은 나이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요리학교를 졸업한 뒤 식당을 열었다가 폐업하기도 했던 '백수저' 최강록 셰프다.
한 사람은 한붓 그리기처럼 끊김 없이 이어진 경로 위에 서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여러 번 꺾이고 덧그려진, 지우개 흔적이 남아 있는 선 위에 서 있었다고 하면 과장된 표현일까.
최종 라운드 주제는 '나를 위한 요리'
▲넷플릭스 '흑백요리사2' 이하성 (요리괴물)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시즌 2 우승자를 가리는 최종 라운드의 주제는 '나를 위한 요리'였다. 결승전 심사는 두 셰프가 각자 자신을 위해 만든 요리를 심사위원과 함께 먹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하성 셰프는 경연 내내 "이기고 싶다, 이겨야 한다, 우승하고야 말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최종 라운드에서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소울푸드 순댓국을 파인다이닝 형식으로 재해석한 요리를 내놓았다.
심사위원의 기대치를 '넘어서기 위해' 가장 좋은 요리를 내놓았지만, 막상 자신을 위한 요리를 스스로에게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다. 파인다이닝 소속 셰프이자 직장인이라는 위치에서 벗어나 자신의 첫 번째 업장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흑백요리사> 우승은 그가 반드시 넘어야 하는 관문이었을 테다. 그 부담감이 심사위원을 신경쓰는데 온 신경을 집중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2' 최강록넷플릭스
반면 최강록 셰프는 '나를 위한 요리'를 소개하며 "좋아하는 재료를 넣었다. 심사위원들의 취향과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 평소에는 자신을 위해 90초도 쓰지 않는다는 그는, 결승전에서 주어진 90분을 오로지 '나'를 위해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들어간 재료 하나하나에는 자신의 요리 인생에서 좋았던 기억들을 채집하듯 담아냈다고도 설명했다. 그는 대결 시간의 약 3분의 1을 깨두부를 젓는 데 쓰고, 구운 닭뼈를 더해 자신만의 육수를 냈으며, 고급 식재료로 취급되는 성게알을 호박잎에 싸 '절대 업장에서 판매하지 않을 법한' 요리를 완성했다.
내가 좋아하는 재료를 모두 넣은 요리를 심사위원과 함께 나누는 최강록 셰프의 모습에서는 '조림핑'이라는 무대 위 서사 아래 가려졌던 얼굴이 여실히 드러났다.
'흑백요리사'의 진짜 가치
이미 이전 경연에서 획득한 '조림 인간'이라는 타이틀, 가장 잘하는 것이자 가장 안정적인 선택지가 무엇인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최종 라운드에서 그 안정적인 선택지를 따르고 싶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조림핑', '연쇄 조림마' 등 조림을 잘하는 척 살아왔지만, 나를 위한 요리에서까지 조림을 하고 싶지 않았다는 그의 말은 큰 울림으로 남는다. 임기응변이 아닌, 위험을 감수한 선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두 심사위원과 최강록 셰프가 테이블에 앉아 한 그릇의 국물 요리와 '빨간 뚜껑' 소주를 기울이는 모습은 결승전이라기보다 뒷풀이, 혹은 에필로그에 가깝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노동주, 몸과 마음의 고단함을 씻어내고 내일을 준비하기 위한 취침주로서의 '소주 한 잔'은 하루를 정리하는 하나의 의식에 가깝다.
불을 끄고 가게 문을 닫기 전 끓여냈을 법한 우동 국물 속, '자신이 좋아하는' 재료들에 소주를 곁들이며 그릇을 비워 나가는 '완뚝'의 장면은, 이 경연이 결국 무엇을 평가하고 있었는지를 압축해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최강록 셰프는 '승패에 상관없이' 정말 좋아하는 것을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어쩌면 이는 한 번쯤 궤도의 가장 높은 지점에도 올라보고, 그 궤도에서 자의든 타의든 미끄러져 본 사람만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젓는 대신, 노를 던져버리고 맨몸으로 산을 오르는 사람의 모습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누구나 단계를 올라서기 위해 공부하고, 잠을 줄여가며 실력을 쌓고, 모자라는 부분은 '척'하며 버티는 시기가 있다. 최강록 셰프 역시 그런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했다. 그 고백은 자신 역시 그런 시간을 지나왔다는 심사위원 안성재의 '무장해제된' 모습을 이끌어냈다.
우승 소감에서 최강록 셰프는 스스로를 '셰프'가 아니라 '숨어서 요리하는 많은 사람들 중 하나'라고 정의했다. 오지 않는 손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다 문을 닫는 자영업자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 것이다. 마지막 경연의 주제였던 '나를 위한 요리'가 자신의 우승에 한 몫했다고도 담담하게 인정했다.
끝까지 평균대 위에 남아 있으려 애쓰는 사람보다, 이미 어떤 평균대를 걸어 메달을 쥐어봤고 그 이후의 삶이 생각만큼 탄탄대로가 아니었음을 경험해 본 사람이 보여주는 의외의 선택이 위로가 되기 충분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는 평균대 위 어딘가에서 이 이야기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흑백요리사> 시즌 2의 가치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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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우리의 힘을 믿으며 진짜 나를 찾기 위해 읽고 쓰는 사람. 미국 동부에 머무르며 한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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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록 셰프의 우승 소감이 증명한 '흑백요리사'의 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