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편집 장인' 김현 감독 별세, 향년 79세

'남부군' '밀양' '시' 등 185편 편집... 1987년 영화인 시국선언 참여

 김현 편집감독
김현 편집감독유족 제공

1980~2010년대까지 한국영화의 대표적 편집 장인으로 활동했던 김현(본명 김현기) 편집감독이 13일 별세했다. 향년 79세.

1948년생인 김현 편집감독은 1967년 신필름을 통해 영화계에 발을 디딘 후 1972년 신상옥 감독 <효녀심청> 편집 감독으로 데뷔한 후 2018년 이창동 감독 <버닝>까지 185편의 편집을 맡아왔다.

이창동 감독의 주요 작품인 <오아시스> <밀양> <시> 등도 그의 손을 거쳤고, 박광수 감독 <칠수와 만수> <이재수의 난>. 정지영 감독 <남부군> 김성수 감독 <무사> 배창호 감독 <흑수선> , 방은진 감독의 데뷔작 <오로라공주>(2005) 등 수많은 한국영화의 명작들이 그의 손을 통해 완성됐다.

1967년 세기극장에서 상영하던 <워터프론트>를 보고 영화를 하겠다고 결심한 후 무작정 신필름을 찾아가 연출부였던 이장호 감독을 만났다. 연출을 원하는 김현에게 이장호가 편집 일을 권유하면서 편집감독의 길로 들어섰다. 1978년까지 신필름에서 일했고, 이후 1984년 <고래사냥>으로 충무로에서 편집 재개한 후 1985년 충무로에서 개인편집실을 운영해 왔다.

1985년 제 24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박철수 감독의 <어미>로 편집상을 수상한 이후 1990년 춘사영화제 편집상(남부군),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편집상(걸어서 하늘까지), 2002년 대종상 편집상(무사) 등 2009년까지 다수의 편집상을 수상했다.

1987년 영화인 시국선언 참여

 김현 편집감독
김현 편집감독한국영상자료원 제공

김현 편집감독은 1987년 영화인 시국선언에도 참여했다. 당시 전두환 독재에 항거한 한국영화의 첫 시국선언은 주로 감독과 조감독들이 중심이 된 가운데, 기술 쪽에서 몇 안 되는 참여 인사 중 편집감독으로 유일하게 참여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일이 끊겨 어려움을 겪었다. 서명에 참여한 이후 편집 중이던 필름을 회수당했고 일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고인은 당시에 대해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생각이었고, 당연한 일이었다"며 "후회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시국선언에 함께했던 양윤모 평론가는 "원칙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는 의연한 편집 감독이었다"고 평가했다.

방은진 감독은 "드라마를 꿰뚫는 장인이자 신인감독들에게는 다정한 큰 오빠같았다"며 "이창동 감독이 신인이면 김현 감독님이랑 일해야 한다고 추천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첫 작품 때 엔딩 시퀀스를 먼저 찍었는데, 김현 감독이 중요한 장면을 초반에 찍으면 안 된다고 해서 다시 촬영했고, 더 좋은 결과물을 얻었다"면서 "고인 덕분에 편집의 예술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유족으로는 배우자와 두 딸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고, 16일 아침에 발인한다. 서울시립승화원을 거쳐 남양주에덴공원에 안장된다.
김현 편집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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