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관현악계의 '삐딱한 천재' 가 되고 싶어요"

[인터뷰] 제17회 아르코창작음악제 국악부문 선정자 유재영 작곡가

지난 8일, 객석 조명이 켜지지 않은 리허설 공간에서 한 젊은 작곡가는 악보를 펼친 채 사람들의 숨과 손끝이 어디로 흐르는지 따라가고 있었다. 빈 좌석들이 층층이 앉아 있는 공연장은 늘 그렇듯 조용하다. 하지만 그 잔잔함은 아무 일도 없는 정적이 아니라 곧 벌어질 소리의 기대감으로 팽팽하다. 그는 악보의 한 줄을 눈으로 훑고는 잠깐 멈춰 서서, 지휘자의 손끝이 공기를 자르는 모양을 응시한다. 작곡가가 음악을 완성하는 순간은 컴퓨터 화면 속 음표가 아니라, 손끝과 호흡이 실제로 움직이는 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아직 20대 초반이라고 믿고 싶은 2001년생 작곡가입니다."

유재영은 자신을 소개하는 첫 문장부터 약간 비틀어 놓는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지금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예능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는 인터뷰에서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의 닉네임을 빌려 자신도 "삐딱한 천재"가 되고 싶단다. 정석으로 추천되는 길보다 자꾸만 다른 길을 선택해온 자신의 습성에 더 가깝다는 설명인데, 말투는 웃고 있었지만 그 삐딱함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그가 말하는 '삐딱함'은 취향의 반항이 아니다. 어쩌면 국악관현악 안에서 익숙하게 반복되는 문법을 전제로 두지 않겠다는 선언일까. 5음 음계, 굿거리·자진모리 같은 장단의 안전한 조합, '이 정도면 국악답다'고 스스로 타협해버리는 습관을 의미한다. 그는 모든 것을 한 번쯤 의심하고 싶다며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국악기 음향을 탐구하는 작곡가가 될 겁니다."

음표가 생명력을 얻는 순간, 내가 진짜 작곡가임을 느낀다

 유재영 작곡가 프로필
유재영 작곡가 프로필유재영

인터뷰에서 가장 오래 머문 대목은 의외로 화려한 수상 소감이 아니다. 자신이 작곡가라는 감각을 언제 뚜렷해지냐고 묻자, 오선 노트나 사보 프로그램 앞에서 보내는 시간을 "누구나 할 수 있는 끄적임"이라고 표현했다. 이것이 자신을 깎아내리는 말처럼 들릴 것 같지만, 오히려 작곡이라는 노동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가리키고 있는 셈이다.

그에 따르면 작곡가의 탄생 순간은 리허설을 할 때 구체화된다. 연주자들이 악보를 처음 읽고, 합을 맞추고, 무대에 올릴 때를 지정했는데, 그는 그 과정에서 음표가 생명력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특히 리허설 전까지는 오로지 자신의 내청 속에서만 울리던 소리가 실제로 공간을 채우는 순간, 짜릿한 카타르시스가 온단다.

"내가 쓴 음악이 드디어 사람의 시간이 된다는 감각을 느껴요. 그 말은 리허설 현장에서 더 설득력 있게 보입니다. 지휘자의 손짓이 공기를 자르고, 단원들의 시선이 악보 위를 질주할 때, 저는 한 박자 늦게 따라오는 잔향까지 체크하는 사람처럼 서 있었어요."

그의 음악적 성격을 설명하는 데 '최초'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이미 예전부터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조합을 고르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밀어붙여 왔다고 고백했다. 해금·비올라·피아노를 위한 작품을 쓸 때도, 존재하는 조합 사이에서 일부러 비어 있는 칸을 택했다. 최초는 허영이 아니라, 아직 열리지 않은 문을 고르는 습관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그 습관이 이번 제17회 ARKO한국창작음악제(아창제) 국악 부문 선정작으로 이어졌다. 작품의 출발점은 꽤 선명한 자문에서 시작됐다.

"국악관현악 중에 이런 소품 모음곡이 있었나?"

서양음악작곡기법 수업에서 1900년 이후의 소품 모음곡을 분석하던 어느 날, 그 질문이 머리를 때렸고, 찾아보니 정말 없었다. 그래서 마음속 결론도 빨랐다.

"국악관현악에서 최초로 현대음악 소품 모음곡을 시도했다는 깃발을 꽂아야겠다."

그는 그 말을 조금 과감하게, 그러나 자연스럽게 꺼냈다. 마치 '이건 해야 하는 일'이라는 듯이 느껴졌을 것이다.

'8'이 접히는 순간, 곡은 대칭이 되고 이야기가 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연주회 당시 공연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연주회 당시 공연유재영 제공

작품의 제목에 들어간 숫자 '8'은 장식이 아니다. 유재영은 '8'이 황제를 상징하고 길상의 수였다는 기억에서 출발했다. 한국음악 안에서도 8음, 8일무, 8박 장단 등 중요한 숫자로 반복된다는 사실을 다시 발견했다. 그는 그 숫자를 단순한 콘셉트로 쓰는 대신, 구조로 밀어 넣었다. 종묘제례와 굿의 모티브가 자연스럽게 스케치에 들어왔고, 그때부터 음악은 하나의 상징이 아니라 작동하는 장치가 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8개의 짧은 음악으로 구성됐다. 겉으로 보면 소품들이 줄지어 서 있는 형태지만, 실제로는 가운데를 기준으로 정확히 접히는 구조다. 첫 소품(즉흥적 도입)을 제외하면 7개의 소품이 4번째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룬다. 말러 교향곡 7번이 3악장을 기준으로 대칭인 데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며, 자신을 "진성 말러리안"이라고 웃었다. 그 웃음 뒤에는, 국악관현악도 구조적으로 더 과감해질 수 있다는 확신이 숨어 있었다.

"원하는 소품만 따로 들어도 괜찮지만, 작곡가가 의도한 호흡을 느끼려면 약 12분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듣길 추천해요. 그러면서 이걸 작곡가 맡김차림으로 이해하면 좋겠어요. 일본어로는 "작곡가 오마카세"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그 순간 작품이 갑자기 가까워집니다. 어렵게 들리기 쉬운 현대음악이 아니라, 작곡가가 내어놓는 한 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면서요."

처음 듣는 사람에게 어디부터 들어보면 좋겠냐고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4번째 소품 '요즘제례악'을 꼽았다. 편종·편경이 담당하던 선율과 리듬을 다른 악기군으로 옮기고, 남창의 영신희문 멜로디를 태평소가 연주하게 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느낀 제례악의 특징을 관현악법으로 다시 번역해보았단다. 전통을 인용하는 대신, 전통을 해석하는 손길이었다.

'요즘'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는 '요즘'이라는 단어가 어느 순간부터 "요즘 애들이~" 같은 비난의 뉘앙스로 쓰이는 현실이 싫었다. 오히려 요즘을 'Modern'의 의미로 되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메탈 장르와 현대 국악관현악의 결합도 그 실험 중 하나입니다. 다만 '요즘'의 최종 판정은 결국 청중에게 달려 있어요. 청중이 "트렌디하다, 요즘 음악 같다"라고 느낄 때 비로소 '요즘'이 되는 것이죠. 말하자면, '지금'이라는 단어를 혼자 소유하지 않을 거예요."

관객을 위한 '숨겨진 장치'도 공개했다. 메탈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알 법한 드림시어터의 'Metropolis' 루프를 인용해 7번째 소품 '프로그레시브 메탈'에 섞었다. 듣는 사람이 알아채면 웃음이 나는 장난 같은 장치이면서도, 동시에 이 작품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서이기도 했다.

그런데 유재영이 더 집요하게 말한 건 의외로 피날레였다. 그는 말러 9번, 베르디 레퀴엠, 차이코프스키 '비창'처럼 곡이 끝난 뒤 30초에서 1분까지 이어지는 콘서트홀의 잔향을 가장 큰 현장감으로 꼽았다. 그 현장감을 공유하고 싶어 자신의 곡 마지막에도 같은 결의 피날레를 넣었다고 했다. '크게 터지며 끝나는' 관습 말고, 국악관현악도 더 다양한 끝맺음을 상상해야 한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음악이 끝나고도 남아 있는 공기의 떨림을 청중과 나누고 싶어 했다.

별의 순간 이후의 다음 페이지

 제17회 아창제 공식 포스터
제17회 아창제 공식 포스터아창제 추진위원단

이번 작품은 연주자들이 협주곡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바쁘다고 인정했다. 그래서 먼저 그들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하지만 곧바로 선정되면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이 연주를 맡는다는 공지를 보고, 120%의 역량을 다해 썼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그의 죄송함은 오히려 책임감으로 번졌고, 그 책임감은 기대감으로 상승했다. 학부·대학원 동료들이 아닌 노련한 악단이 자신의 음악을 처음 만나는 자리를 기대했다. 그 손맛이 더해지면 정말 좋은 연주가 나올 거라고 믿었다. 말은 조심스럽게 했지만, 눈은 확신을 품고 있었다.

요즘 관심사가 무엇이냐고 묻자 지휘를 가장 먼저 꺼냈다. 중학교 합창제 지휘, 고등학교 조회 시간 애국가 지휘까지 그의 지휘사에 대한 열망은 생각보다 길었다. 요즘도 유명 지휘자 내한 공연을 직접 찾아가며 지휘를 본단다. 심지어 한국예술종합학교 관현악 수업을 청강하려고 지휘자에게 문자를 여러 번 보내고, 답이 없자 다시 보내고, 카톡까지 보냈다는 기억은 그의 성격과 고집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오히려 끈질기게 연락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셨다는 말은, 그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배움을 '현실'로 만들어 왔는지 보여주는 장면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 2년의 청강 경험이 관현악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작곡가가 관현악을 쓰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관현악이 작곡가를 다시 만들었다는 느낌이었다.

그가 '아창제'를 별의 순간이라고 부른 뒤의 계획도 구체적이었다. 학부를 조기졸업하고, 독일에서 작곡을 더 깊게 배우기 위해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독일어는 이미 B2 시험을 준비 중이라고도 했다. 먼 이야기처럼 들릴 법한 계획이 이상하게 현실적으로 들린 건, 그가 늘 '비어 있는 칸'을 찾아 들어가던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가장 큰 목표는 스승들처럼 아창제와 꾸준히 연락을 이어가며 작품을 발표하는 것, 더 멀리 가서는 3회 당선되어 위촉 작품도 발표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장기 목표를 말할 때도 과장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 분명한 그림을 꺼내 보였다. '지금 여기'에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방식이, 늘 그랬듯 구체적이었다. 필자와 나눈 인터뷰 말미에 그가 관객에게 남긴 문장은 간단했다.

"지휘자의 지휘봉이 내려갈 때까지의 현장감, 그러니까 콘서트홀의 잔향을 느껴주시면 좋겠습니다."

끝난 뒤에야 비로소 들리는 것들. 소리가 사라지고도 남는 것들. 유재영이 말하는 '요즘'은 어쩌면 그 잔향의 시간과 닮아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을 붙잡되, 그 순간이 사라진 뒤에도 남는 무언가를 끝까지 믿는 태도. 그 태도가 국악관현악의 다음 장을 조금 더 넓혀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제17회 아창제 국악부문 공연은 오는 1월 27일, 19:30분부터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진행된다.
국악 아창제 유재영 신진아티스트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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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쓰고 있다. 문화예술 시사 월간지에서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에서 객원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과 전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만나고 있다. 현재는 '서울문화투데이' '더프리뷰' 등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