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 '첩'에게서 태어난 아이, 조선 건국 주역의 숨겨진 정체

[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KBS <은애하는 도적님아>

KBS 사극 <은애하는 도적님아>에서는 혜민서 의녀인 홍은조(남지현 분)가 밤중에 탈을 쓰고 의적 홍길동 역할을 한다. 그는 훔친 곡식을 가난한 사람들의 방문 앞에 놓아둔다.

홍은조는 몰락한 양반인 전직 판서 홍민직(김석훈 분)의 딸이다. 그런데 홍은조는 홍민직의 적녀가 아니다. 서녀도 아니다. 홍민직의 노비인 춘섬(서영희 분)에게서 태어난 '얼녀'다. 춘섬은 홍민직의 집에서 일반 노비와 다를 바 없이 노동한다. 그래서 홍은조의 처지는 <홍길동전>에서 노비 춘섬의 아들로 등장하는 얼자 홍길동과 다를 바 없다.

홍민직의 절친인 도승지 임사형(최원영 분)은 친구 딸인 홍은조를 자기 집의 첩으로 들이려 한다. 그런데 그 첩이란 것은 임사형 자신의 첩도 아니고 임사형 아들의 첩도 아닌, 임사형 아버지의 첩이다. 임사형은 아직 어린 친구 딸을 병석에 누워 오늘내일 하는 자기 아버지의 첩실로 들이려 한 것이다.

임사형은 자기 아버지에 대한 효도만 중시할 뿐, 친구 딸의 인생에는 관심이 없다. 만약 홍은조가 친구의 적녀나 서녀였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임사형에게 홍은조는 친구의 노비일 뿐이다.

세상으로부터 그런 대우를 받으면서도 홍은조는 세상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의녀 일을 마친 뒤 의적으로 변신한다. 그는 한밤중에 탈을 쓰고 지붕 위를 날듯이 뛰어다닌다.

노비인 첩에게서 태어난 아이들

 KBS <은애하는 도적님아> 관련 이미지.
KBS <은애하는 도적님아> 관련 이미지.KBS

음력으로 명종 8년 10월 15일자(양력 1553.11.20.) <명종실록>에 "이른바 서(庶)라는 것은 양첩의 자식이고, 이른바 얼(孼)이라는 것은 천첩의 자식입니다"라는 대목이 있다. 일반 양인인 첩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서녀·서자이고, 노비인 첩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얼녀·얼자라는 구분법이다.

서자녀들은 신분상으로는 양인이었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첩이기 때문에 결혼이나 관직 진출 등에서 차별을 받았다.

얼자녀 대다수는 그런 차별에 더해 신분상의 차별도 받았다. 어머니의 혈통을 기준으로 신분을 결정하던 시대에 그들은 노비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이들은 법적으로 인격 대우를 받지 못하고 물건과 다를 바 없이 취급됐다.

<경국대전>에서는 얼자를 원칙적으로 노비로 삼되, 종친·공신·관료의 얼자만 양인으로 인정했다. 이런 식의 예외들이 있었지만, 그럴지라도 세상은 그들의 어머니가 누구인가를 그들의 생애 내내 잊지 않았다.

그런데 얼자녀들은 대개 상류층 자제들이었다. 그래서 이들의 문제는 일반 대중의 문제가 아니었다. 얼자녀 문제는 집안 내의 노비들 중에서 최소 한 명 이상을 첩으로 둘 수 있는 경제력을 보유한 집안의 문제였다. 그런 집안에서 태어났으므로, 대부분의 얼자녀들은 먹고 사는 문제로부터 해방됐다.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사회적 차별로 인해 뜻을 마음대로 펼 수 없다는 점에 있었다.

소작농 집에서 태어난 반체제 운동가는 먹고 사는 문제도 동시에 해결해야 했지만, 얼자녀 출신의 운동가는 그런 문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래서 그들이 투쟁에 참여하는 것은 일반 농민에 비해 수월했다. 조선 건국의 주역들이 얼자녀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도 이 때문이다.

1392년에 조선왕조를 창업한 주역들이 얼자녀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이타적 연민에서 비롯된 일이 아니다. 이는 그들 자신들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성계와 더불어 조선 건국의 투톱이었던 삼봉 정도전은 얼자였다. 또 다른 건국 주역인 하륜·조영규·함부림·이화·이조·조온 등도 얼자 아니면 서자였다. 하륜은 이방원의 최측근이고, 조영규는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살해했고, 조온은 정암 조광조의 4대조다.

서자와 얼자들이 이성계와 함께 건국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조선왕조가 얼자녀 문제에 적극성을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태조 6년 7월 25일자(양력 1397.8.17.) <태조실록>에는 혁명 주역들의 의중을 대변하는 노비변정도감이 "비록 천첩의 소생일지라도 이 역시 골육입니다"라며 "그러므로 노비와 똑같이 일을 시키는 것은 곤란합니다"라는 말로 얼자녀 신분해방을 촉구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조선왕조가 '얼자녀'에게 행한 조치

 KBS <은애하는 도적님아> 관련 이미지.
KBS <은애하는 도적님아> 관련 이미지.KBS

이 건의에 따라 조선왕조는 '얼자녀의 아버지가 생존해 있고, 얼자녀의 어머니가 얼자녀 아버지의 노비인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얼자녀를 양인으로 인정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얼자녀의 어머니가 얼자녀 아버지의 부모에게 속한 노비이거나, 얼자녀 아버지의 정실부인에게 속한 노비이거나, 얼자녀 아버지의 적자녀에게 속한 노비인 경우에는 위 조치가 적용되지 않았다. 얼자녀 어머니가 얼자녀 아버지에게 속한 노비인 경우에만 적용되는 조치였다. 그 뒤 새로운 조치들이 나왔지만, 건국 5년 만인 태조 6년에 이런 개혁이 실현된 것은 신왕조의 주역 상당수가 바로 서자 혹은 얼자였기 때문이다.

건국 주역들 중에 서얼이 많았는데도 왕조 내내 서얼차별이 문제가 된 것은 이들에 대한 차별이 얼마나 오래됐으며 얼마나 견고했는지를 웅변한다.

흔히 고려시대 문화는 귀족적 문화로 지칭되고 조선시대 문화는 서민적 문화로 지칭된다. 문화의 색깔이 이처럼 바뀐 데는 건국 주역들 중에 서얼들이 많았던 점도 크게 작용했다. 고려시대와 달리 조선시대에는 가문 중심의 채용 제도보다 능력 위주의 과거시험 제도가 부각됐다. 이 역시 건국 주역들의 혈통과 무관치 않다.

소설 <홍길동전>과 현대의 수많은 사극에서는 얼자 홍길동이 의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지만, 얼자녀들의 힘은 의적활동 수준에 그치지 않고 신왕조 건국과 문화 개혁 같은 훨씬 차원 높은 성과도 이룩해냈다.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를 수 없고 언니·오빠를 언니·오빠로 부를 수 없고 누이·형을 누이·형으로 부를 수 없는 사람들의 울분은 경우에 따라 자신의 가(家)뿐 아니라 국가까지 뒤엎는 에너지를 발산했던 것이다.
홍길동 호부호형 얼녀 얼자 서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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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