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의 악단> 스틸 이미지.CJ CGV
영화 <신의 악단>을 보러 극장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솔직히 아무 생각이 없었다. 제목도, 홍보도 어딘가 가벼워 보였다. 신년 극장가에서 잠깐 웃고 나오면 그만일, 그런 코미디 영화쯤으로 여겼다. 아내와 함께 웃다 나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는 순간,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웃음은 이미 사라졌고, 대신 오래 눌러두었던 생각 하나가 불쑥 고개를 들었다. 한동안 애써 외면해 왔던 '신앙'이었다. 코미디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신(God)을 떠올리고 나오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신의 악단>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이야기의 뿌리는 1994년 평양에서 실제로 벌어진 이른바 '가짜 부흥회 사건'에서 시작된다. 영화는 북한 정권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이 종교 행사에 종교와 정치, 예술과 인간성 사이의 갈등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고 있다.
실제로도 평양 칠골교회 사건은 북한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교회의 외관을 정비하고 예배 장면을 대외 선전에 활용한 사례로 알려져 있다. 신도들 역시 국가가 선별한 연기자들이 참여하는 '전시용 교회'였다는 증언이 나오며, 북한 종교 정책의 모순이 국제사회에 부각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영화는 이러한 북한의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CG 대신 몽골과 헝가리에서 혹한 속 로케이션 촬영을 감행했다. 그 결과 관객은 눈 덮인 초원과 황량한 건물, 삭막한 풍경까지 세밀하게 담아낸 또 하나의 '북한'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배경이 쌓이면서 작품의 무게는 서서히 관객에게 전해진다.
초반 일부 배우들의 어색한 북한 사투리는 아쉬움으로 남지만, 각기 다른 사연을 안고 모인 인물들의 엇박자 난 연주가 점차 하나의 합으로 맞춰지는 과정은 감동적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웃음으로 시작하지만, 끝내 관객을 편안하게 놔두지 않는다.
다만 기독교적 색채가 비교적 분명한 서사 구조 탓에 관객에 따라 호불호는 갈릴 수 있다. 그럼에도 <신의 악단>은 신앙을 강요하기보다는, 신앙이라는 틀 안에서 사람과 삶을 바라보려는 태도를 끝까지 유지한다.
또한 <신의 악단>은 지난 2015년 개봉한 영화 <사랑후애> 이후 10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배우 박시후의 선택으로도 눈길을 끈다. 화려한 상업영화가 아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종교적 휴먼 드라마를 복귀작으로 택했다는 점에서 그의 선택이 더욱 인상적이다. 박시후는 힘을 빼고 북한군 장교라는 특수한 인물의 내면에 집중한 연기를 선보인다.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만나는 원로 배우 최선자의 존재도 반갑다. 그는 조연으로서 작품의 정서적 중심을 단단히 받쳐준다. 과장된 연기 대신 삶의 굴곡이 얼굴과 호흡에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말보다 표정이, 감정보다 침묵이 많은 역할인데, 그 침묵이 오히려 관객의 시선을 붙든다.
박시후가 영화의 중심축이라면, 최선자는 그 축을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뿌리에 가깝다. 큰 장면보다 작은 순간에서, 대사보다 눈빛으로 감정을 전한다.
이 영화는 종교 영화라기보다, 신의 이름을 빌려 사람과 삶을 이야기하는 휴먼 드라마에 가깝다. 영화 후반부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가스펠 연주와 노래 장면은 종교를 떠나 '은혜롭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완벽한 연주는 아니지만, 가수 출신 배우 정진운의 보컬은 탄성을 자아낸다.
<신의 악단>은 웃음으로 문을 열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 누군가는 신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음악을, 또 누군가는 오래 잊고 지냈던 신앙심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영화 <신의 악단>은 9일 기준,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집계 결과 누적 관객 수 18만 명, 관람객 평점 8.80을 기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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