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정치백서 - 쇼미더저스티스> 스틸
익스포스필름
창인은 당내 경선에 최선을 다하지만, 애초 예상한 대로 상황은 만만하지 않다. 현진은 계속 자신의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해 한겨울 거리에서 삭발과 단식, 시위와 농성을 이어가지만, 행동을 강조하며 절박한 마음이 앞선 그에게 주류 보수정당의 장벽은 쉽게 진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차선책으로 비주류 정당의 문을 두드리지만, 선거를 앞두고 사분오열하던 소수 극우정당의 혼란 앞에 그의 기대는 무너져간다.
두 정치 '어린양'의 성적표가 나올 시간이 도래한다. '졌지만 잘 싸웠다?'라고만 위안 삼기엔 둘 다 상황은 달라도 쓰라리기만 하다. 창인은 정의당 청년비례대표 경선에서 하위권으로 쳐진다. 현진이 갈아탄 정당은 원외에 머문다. 창인은 지역구 출마를 고민하다 접고 선거 지원에 힘쓰며 재기를 모색한다. 그는 이후 시의원 후보로 출마하고 당직을 맡으며 꾸준히 활동하지만, 그가 몸담은 정의당은 거대 양당 구도가 심화하는 정치판에서 힘을 잃어간다.
현진은 정치판에 넌더리가 난 모양이다. 다시 사업가로 돌아간 그는 사업 운영 과정에서 송사에 휘말리고, 거리의 정치투쟁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으로도 재판에 출석해야 한다. 지치고 짜증이 난 그는 정치 회의론자가 되어가는 모양새다. 사업가인 그로선 돈도 잃고 시간도 뺏기고 남은 게 없이 허송세월한 셈이다. 그래도 둘 다 아직 앞길이 창창하고 남은 인생이 더 길다. 무엇이든 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영화 시작과 함께 두 사람이 뛰어들었던 정치지형은 급격히 소용돌이친다. 관객이 이미 함께 또 각자 체험한 것처럼, 총선과 대선이 연달아 계속되며 세력 구도가 휙휙 변한다. 그런 가운데 현진은 다시 생업 전선으로 돌아가고, 창인은 애써 정치 행보를 모색해도 노력과는 별개로 길은 보이지 않는다. 안 풀려도 '징하게' 안 풀린다. '보릿고개'가 따로 없다.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세상은 변하고 그들도 처음 시작할 때 포부와 달리 썩 개운한 현주소를 보여주지 못한다. 모든 것이 너무 쉽게 변해간다.
청년들의 정치실험
국내에서 보기 드문 정치 다큐멘터리에 도전한 <청년정치백서 – 쇼미더저스티스>는 주로 팬덤이 확고한 기성 정치인, 또는 진보·혁신 계열 정치도전 위주인 한국 독립영화판에서 드문 시도다. <카운터스>, <모어> 등 선 굵은 캐릭터를 내세운 인상 깊은 기록영화를 선보여 온 이일하 감독은 그의 스승이자 일본 다큐멘터리 거장 하라 카즈오 감독의 스타일을 계승하듯 '행동파' 정치영화에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과감히 도전한다.
그런 도전정신 덕분에 영화의 전반부는 낯설고 당황스럽지만, 대신에 흥미진진하다. 장외에서 구경꾼에 머물 뿐, 정치판엔 발도 안 담가야지 회피하던 이들에겐 정치성향 불문하고 그들의 동선에 호기심을 갖고 과연 그들의 도전이 어떤 결과로 마침표를 찍을지 궁금증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평소 한 번쯤 관심을 품던, '나'와 달리 거리에서 목소릴 높이며 자기 시간과 돈을 쏟아가며 정치에 관여하는 이들이 무슨 생각과 배경을 품었는지 풍성한 데이터를 제시한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감독의 의도와 달리 영화는 추진력을 잃어간다. 두 주인공의 활력이 시들고 그들의 행보가 화면 밖으로 빠져나가며 주변부에 머물던 인물들, '아스팔트 보수' 주변부의 현주소가 빈자리를 채운다. 물론 여기에서 몇 년 후 그들의 변화상이 극심한 한국 정치 격변과 맞물려 기이한 후일담을 전하곤 한다. 때로는 묘한 아이러니, 혹은 그럼 그렇지 하는 한숨과 더불어 지켜볼 수밖에 없는 진풍경이다.
대미를 장식하고자 제작진은 계속 엇갈리던 현진과 창인의 만남을 주선한다. 이태원 참사현장에서 교차하던 둘은 마침내 한 자리에 선다. 그러나 둘의 정치 도전 동기가 달랐던 것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달리 두 사람은 특별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 그 차이가 확인되는 순간, 갑자기 영화의 정조는 현재형 비극으로 추락한다. 영화의 실패가 아닌, 한국 정치의 실패가 원인이란 점이 관객의 마음도 쓰리게 만들 법하다. 그 실패의 교훈은 관객이 냉소가 아닌, 그들의 좌절을 '반면교사'로 삼아 이제는 '무엇을 할 것인가?' 모색으로 향할 때 거름이자 씨앗으로 변환될 것이다.
영화는 2023년 영화제를 통해 공개되었으나, 2년 사이 또다시 격랑에 휩싸인 한국 정치판 지형을 추가로 포함해 재편집 과정을 거쳤다. 이를 통해 두 주인공의 '영락'을 넘어 일정하게 청년 세대가 벽에 부딪히는 지금의 정치지형을 보다 구조적으로 가미하는 방향으로 개편된 걸로 보인다. 그렇게 작품은 청년 정치 도전의 '실패 박람회'로 완성된다. 한국에선 보기 힘든 방식의 '정치영화'로 기록될 실험정신 투철한 결과물이다.
<작품정보>
청년정치백서-쇼미더저스티스
Show Me the Justice
2023|한국|블랙 코미-크 정치 다큐
2025.12.28. 개봉|106분|12세 관람가
감독/제작 이일하
출연 김창인, 김현진 외
제작/배급 익스포스필름
▲<청년정치백서 - 쇼미더저스티스> 포스터익스포스필름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