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암 아빠, 세상 떠난 고모... 한국 독립영화가 담아낸 풍경

[김성호의 씨네만세 1247] 2025년 씨네만세가 기억하는 한국 독립영화 (상)

3학년 2학기 스틸컷
3학년 2학기스틸컷작업장 봄

지난해 개봉해 2만4000여명의 관객을 모은 이란희 감독의 < 3학년 2학기 >가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가 매해 발표하는 '올해의 독립영화'로 선정됐다. 매년 나온 최고의 독립영화 단 한 편에 주어지는 영예를 이 작품이 차지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 시대 관객에게 가닿는 설득력 있는 작품성에 더하여 우리 시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일면을 전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관련 기사 : 중소기업으로 실습 나간 고등학생의 현실, 우리가 놓친 것 https://omn.kr/2dts9)

< 3학년 2학기 >가 전하는 고등학교 현장실습생의 실태는 한국 사회의 저열함을 드러내는 불편한 현실이다. 2021년 전라남도 여수 한 요트업체로 현장실습을 나간 특성화고 학생 홍정운 군이 요트 바닥에 붙은 조개며 해조류를 제거하는 작업에 투입됐다 사망하는 사건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걸 많은 이들이 기억할 것이다.

그로부터 현실은 나아졌을까. 실습을 넘어 사실상의 노동, 뿐만 아니라 근로기준법이 금지하는 위험노동에 실습생을 투입하는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단 걸 통계로 알 수 있다. 고교생 산재수는 이 사건 뒤 도리어 큰 폭으로 증가하기까지 했는데, 현장에선 정부가 사실상 손을 놓고 문제를 방치해왔단 목소리가 공공연하다.

대중예술의 역할 중 하나가 우리 시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문제를 보는 이에게 드러내 전하는 것이라면, 한국 영화판에선 오로지 독립영화가 이 역할을 자임한다. < 3학년 2학기 >를 비롯해 올 한 해 한국 사회 곳곳의 작은 목소리를 전하는 일련의 작품들이 하나같이 그렇다. 씨네만세가 기억할 만한 독립영화를 추려보는 것도 그래서다. 본편과 다음 편에 걸쳐 2025년 씨네만세가 기억하는 독립영화 다섯 편을 가려 뽑아보겠다.

양양 스틸컷
양양스틸컷영화사 진진

[하나] <양양>

양주연 감독의 <양양>은 한국 장편 다큐멘터리로서는 드문 극장 개봉 기회를 가졌다. 지난해 10월 개봉한 영화는 전국 극장에서 하루 총 10여 차례 상영이 고작인 어려움 속에서 3400여명의 관객과 만났다. 흥행했다고 보긴 어려우나 적어도 작품을 만난 이들 사이에서 의미 깊은 담론을 형성할 정도는 되었다. <양양>의 가치는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초청해 상영하고 한독협이 지난해 224회 독립영화 쇼케이스 상영작으로 선정한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단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관객을 만날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독립영화로 동료 영화인들에게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제목인 '양양'은 강원도 어느 도시의 지명이 아니다. 두 명의 양씨 성을 가진 여성이 시공간을 건너뛰어 마주 닿는 이야기다. 하나는 감독인 양주연 감독, 그녀가 자라며 그 존재조차 몰랐던 제 고모의 삶과 죽음을 추적하는 것이 <양양>의 얼개가 된다. 어느 날 술에 취해 전화를 걸어온 아버지가 건넨 한마디, "고모처럼은 되지 말라"던 이야기가 그대로 그녀의 영화로 이어졌다. 1975년 스스로 생을 끊었다는 대학생이던 고모는 어째서 그 존재조차 가족 가운데서 지워졌는지 이 영화가 살펴나간다.

영화 안엔 지난 시대의 가부장제, 사람을 자리와 역할로 옴짝달싹할 수 없도록 옭아매는 낡은 체제가 담겨 있다. 그 체제에 조여 비틀리고 망가진 이들, 제가 망가진 줄도 모르고 다른 이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이들까지, 이미 지나와 과거의 것인 양 밀어두고 있었던 한국 사회 못난 모양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여성을, 애인을, 딸을 한 명의 인격이 아닌 소유물인 양 여기는 게 당연하거나 그럴 수 있는 일쯤으로 여겨지던 세상, 그런 사회가 사랑하는 이를 죽이고 그 죽음을 은폐하고 돌아보지도 못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조카 양주연이 고모를 찾아 그녀의 이름을 가족 가운데 되찾는 모습이 감격적이다. 고모의 죽음에 얽힌 진상을 끝끝내 추적하는 일과 그 존재를 복원하고 이해에 다가서는 것 사이에서 후자를 택하는 감독의 마음이 사려 깊고 무겁다. 사적 다큐가 공적 문제와 닿는 유효한 순간 또한 이 다큐 가운데 이뤄지니 보는 이는 양주연과 그 가족의 이야기로부터 저 자신과 제가 사는 세계를 돌아볼 기회 또한 얻게 될 테다.

2009년부터 2024년까지 16년간 확인된 것만 1560명이 만나던 남성에 의해 살해된 나라, 그것이 한국의 불편한 진실이다. 한국사회는 과연 그를 차단하기 위한 노력을 충실히 경주하고 있는가. 나는 차마 그렇다고는 답하지 못하겠다. (관련기사: 애인 집에서 죽은 고모, 반 세기 지나 추적한 조카 https://omn.kr/2f7rw)

철들 무렵 스틸컷
철들 무렵스틸컷부산국제영화제

[둘] <철들 무렵>

지난해 30회 부산국제영화제 2관왕에 빛나는 <철들 무렵>이다. 2020년 작 <이장>으로 재능을 인정받은 정승오가 5년 만에 선보인 작품으로, 올해 중 개봉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이제는 감독의 장기라 불러도 좋을 한 가족의 이야기로, 서로 다른 세대와 상황의 인물들이 처한 다채로운 상황 가운데 한국 사회의 일면을 흥미롭게 부각한다.

말기 암 진단을 받고 죽음을 앞둔 철택(기주봉 분)과 그와 오래전에 갈라서 싱글라이프를 즐기려 하지만 형제들이 가만히 놔두질 않는 현숙(양말복 분), 꿈은 톱스타지만 현실은 귀신6과 식당손님3쯤을 오가는 이들의 딸내미 정미(하윤경 분), 정미의 외할머니이자 현숙의 어머니인 옥남(원미원 분)이 영화의 네 기둥이다. 이들의 오늘은 꼬일 대로 꼬이고 풀리고픈 대로 풀려온 한국사의 곡절들이 영향을 미친 결과이니 이 영화가 그리는 어느 가족의 풍속도가 그저 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사회가 오래 외면해 온, 그러나 더는 그럴 수 없게 된 간병과 돌봄은 <철들 무렵>의 주된 문제다. 여기에 더하여 세대와 자본계급의 충돌, 기대되는 역할과 책임으로부터 벗어남까지 다뤄지니 가족을 소재로 풀 수 있는 온갖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이 영화 한 편에 담겼다 해도 좋겠다. 이십대 부터 팔순 노인까지, 제대로 철들었다 자신할 수 있는 이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철들 무렵>은 그대로 엉망진창인 듯 그럭저럭 괜찮은 듯 어찌어찌 살아가는 우리네 사는 모양과 닮아 있는 듯도 하다. 올해 개봉할 이 영화가 부디 많은 관객에게 가 닿기를 바란다. (관련기사: 부국제 2관왕 '철들 무렵', 모두가 칭찬하는 이유 있었네 https://omn.kr/2fkcu)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씨네만세 1248'로 이어집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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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