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40세에 접어든 미야케 쇼 감독은 최근 10년간 연달아 내놓은 작품들(〈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새벽의 모든〉, 〈여행과 나날〉)이 일본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대적인 호평을 받으며 '일본 영화의 미래'로 불리기 시작했다. 모르긴 몰라도, 그 역시 이런 평가가 싫지만은 않은 눈치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작품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영화들이 속속 개봉되고 있다. 상당히 실험적인 픽션 다큐멘터리 청춘 영화 〈와일드 투어〉에 이어, 2010년 데뷔작 〈굿 포 낫씽〉이 관객을 찾아왔다. 그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두 번째 영화 〈플래시백〉 역시 머지않아 개봉하지 않을까 싶다. '미야케 쇼'라는 이름은 앞으로 더욱 널리 알려질 듯하다.
〈굿 포 낫씽〉은 하염 없이 눈이 내리고 차곡차곡 쌓인 설원을 배경으로, 컬러 아닌 흑백 화면이 인상적인 영화다. 18살 고등학생 친구 세 명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야기가 전부인데, 제목 그대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영화에 몰입하게 되는 걸까. 보고 난 뒤 여운이 길게 남는다.
새하얀 삿포로의 겨울, 18살 세 친구
삿포로의 겨울은 새하얗다. 어디를 보든, 어디를 가든 눈이 소복이 쌓여 있다. 교복을 입은 세 친구는 어딘가로 향한다. 매일같이 들르던 카페에 갔다가, 아는 형이 일하는 보안 경비 업체로 발길을 옮긴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다. 그중 한 친구는 긴 머리를 빡빡 깎으며 나름의 결의를 드러낸다.
졸업을 앞둔 18살 고등학생 세 친구는, 그러나 보안 경비 업체에서 딱히 할 일이 없다. 더군다나 사장은 애초에 세 명이나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아는 형은 중간에서 난감해하지만, 대수롭지 않은 듯 상황을 넘긴다. 그러는 사이 세 친구 중 한 명은 탈선하듯 따로 행동하려 한다. 보안 경비 업체라는 공간 자체가 못마땅해 보인다.
▲영화 <굿 포 낫씽>의 한 장면.
디오시네마
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장, 뒷구린 일을 일삼는 아는 형, 경찰인 사장의 아들이 소소하게 물어다 주는 잡일,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저 '일하는 중'이라며 으스대는 친구들까지. 모든 것이 정녕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차를 몰고 나갔던 세 친구는 결국 차를 도난당하고 만다.
일본 영화의 미래가 기록한 '아무것도 아닌 시절'
〈굿 포 낫씽〉은 묘하게 인상에 남는 영화다. 빠져드는 이야기, 감정 이입을 부르는 캐릭터, 탁월한 연출력을 보여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심지어 뚜렷한 서사조차 제시하지 않아 상당히 불친절하고, 전체적으로 어설프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는 않는다.
세 친구의 청춘, 10대의 끝자락, 어른이 되기 직전의 '아무것도 아닌 시절'을 먼발치에서 엿보는 듯한 감각 때문일 것이다. 그 시절만이 전하는 분위기, 그 시간을 건너는 이들만이 뿜어내는 에너지,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이들이 느끼는 애잔함까지 이 짧은 흑백 영화 안에 모두 담겨 있다.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이기에, 오히려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영화 <굿 포 낫씽>의 한 장면.디오시네마
특히 세 친구가 따로 또 함께 걷고, 뛰고,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앞에서, 뒤에서, 옆에서, 멀리서, 아주 멀리서까지 다양한 시점으로 포착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그들이 어디론가 향하는 모습을 집요하게 반복해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정처 없이 떠도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은 아직 제대로 된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이제 막 출발선에 섰을 뿐이다.
하지만 청춘은 늘 힘들고 어렵다. 어른들은 좋은 시절이라며 마음껏 즐기고 누리라고 말하지만, 정작 당사자에게는 빛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고 있는 시간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루빨리 제대로 된 어른이 되고 싶지만, 시간은 좀처럼 그들의 편이 아닌 듯하다. 그렇기에 그 시절, 청춘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일본 내에서도 정식 개봉된 적이 없고, 전 세계 최초 정식 개봉이 국내에서 이루어진다는 점 역시 의미 깊다. 차세대 거장이자 일본 영화 뉴 제너레이션의 선두 주자로 주목받는 미야케 쇼의 데뷔작을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올해 겨울은 눈도 많이 내리지 않고 유난히 춥지도 않은 듯한데, 이 영화를 통해 순백의 설원이 펼쳐지는 삿포로의 겨울을 대신 즐겨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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