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아보겠다 다짐한 전과자가 결국 총 든 까닭

[안지훈의 뮤지컬 읽기]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

대공황이 미국 전역을 강타한 1930년대, 차량 절도와 은행 강도를 일삼던 범죄자 커플이 있었다. '보니 파커'와 '클라이드 배로우', 당시 언론은 이들을 '보니 앤 클라이드'라고 부르며 범죄 행각을 보도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하던 사람들은 보니와 클라이드의 범죄에 흥미를 느꼈고, 이들의 도주를 돕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보니와 클라이드의 실화는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영제 'Bonnie and Clyde')로 제작되는 등 이 커플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각종 장르에서 모티브로 활용되곤 한다.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 역시 범죄자 커플의 실화를 바탕으로 창작된 작품으로, <지킬 앤 하이드>·<데스노트> 등 유명 뮤지컬의 음악을 써온 프랭크 와일드혼이 작곡을 맡았다.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 공연 사진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 공연 사진(주)쇼노트

보니와 클라이드의 운명 같은 동행

보니와 클라이드는 로맨틱한 범죄자 커플의 대명사로 여겨지며 영미권에서는 관용구로도 사용된다. 보니와 클라이드의 일화가 단순한 범죄 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두가 어려웠던 대공황의 시기에 누구나 그렇듯 꿈꿨지만 좌절을 경험했고, 살아남으려 발버둥 쳤지만 살아남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경험한 사람의 드라마가 담겨있다.

조형균·윤현민·배나라가 연기하는 클라이드는 절도 혐의로 복역하다 탈옥했다. 대사를 통해 유추해 보건대 초기 절도는 규모가 크지 않은 생계형 범죄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 유리 공장 등에서 일자리를 찾으려 했다는 대사는 클라이드가 범죄가 아닌 방법으로 살아남으려 애썼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지만 이는 쉽지 않았고, 전과자가 된 이후에는 자신의 입지가 더 좁아졌음을 클라이드는 회고한다.

옥주현·이봄소리·홍금비가 연기하는 보니는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세탁 일을 하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간다. 전과자라는 이유로 부모로부터도 온전히 환대받지 못하는 클라이드와 달리 어머니라는 심리적 안전망이 있고, 소득이 많진 않아도 직업이 있으니 클라이드보다는 나은 삶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보니에게는 꿈이 있었다. 글을 쓰고 노래를 하고 연기를 하는 스타를 동경했지만, 하루하루 버텨내야 하는 보니에게는 허울뿐인 꿈이었다. 이런 보니 앞에 나타난 클라이드는 그녀의 잃어버린 꿈을 자극한다. 보니는 자신의 꿈을 알아본 클라이드에 매력을 느끼고 그와 동행한다. 클라이드를 '최소한의 자리를 박탈당한 인물'이라고 한다면, 보니는 '최소한의 인정이 필요했던 인물'이다.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 공연 사진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 공연 사진(주)쇼노트

마지막 총격전

아무리 힘들어도 바른길을 따라야 한다는 말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이 말을 곧 도덕이다.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에는 교회를 배경으로 하는 장면이 다수 등장한다. 이 종교는 당대 사회를 지배하는 도덕을 제공했고, 사람들은 종교의 가르침을 적극 수용한다. 죄인으로 태어난 우리가 이런 고난을 감당하는 것은 당연하고, 바르게 살면 길이 열린다는 가르침 말이다.

클라이드의 형 '벅 배로우'(김찬호·조성윤)는 동생과 함께 탈옥했지만, 신실한 교인인 아내의 권유로 자수하기로 결심한다. 감옥에서 죗값을 치르고 나오면 깨끗한 사람이 되고, 이때부터는 새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이 그의 결심을 굳힌다. 그렇게 벅은 다시 감옥에 들어갔다 나오지만, 그의 자수를 가능하게 했던 도덕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가뜩이나 힘든 시기는 전과자 벅에게 더 가혹했다. 사회가 개인에게 정직하고 깨끗한 삶을 살 것을 권유했다면, 그리고 개인이 사회가 제시한 조건을 어느 정도 이행했다면, 이제 사회는 정직하고 깨끗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다시 말해 도덕을 실천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하지만 벅에게 그런 공간은 마련되지 않았다. 이제 벅은 보니와 클라이드에게 향한다. 보니는 꿈을 찾아 클라이드와 동행했지만, 동행을 이어갈수록 꿈과는 멀어져간다. 할리우드와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그들의 자동차는 이를 공간적 은유로 풀어낸다. 보니와 클라이드의 입지는 점점 더 줄어들고,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범죄를 이어간다.

보니와 클라이드, 그리고 벅까지. 최소한의 자리를 잃어버린 이들이 모인다. 이들에게 선택지는 없다. 경찰이 포위망을 좁혀오는 가운데 이들은 경찰에 의해 죽거나, 경찰을 죽이고 살아야 한다. 마지막 총격전에서 연주되는 음악은 'How 'bout a Dance'이다. 이 음악은 클라이드가 보니의 잃어버린 꿈을 다시 찾아준 순간, 보니가 불렀던 곡이다. 완전히 다른 상황에서 다시 연주되는 이 음악은 그래서 서글프다.

뮤지컬은 이들을 악랄한 범죄자로 그리지도 않고, 사람들의 지지를 받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웅으로 그리지도 않는다. 희망과 절망, 로맨틱함과 좌절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보니와 클라이드의 서사를 입체적으로 구성한다. <보니 앤 클라이드>는 3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 공연 사진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 공연 사진(주)쇼노트
공연 뮤지컬 보니앤클라이드 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