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이끈 '안성기' 와 뗄 수 없는 대표작 셋

[추모] '최고스타' 타이틀 내려놓은 후에도 2010년대까지 대표작 만들었던 배우 안성기

5일 많은 관객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줬던 고 안성기 배우가 세상을 떠났다. 지난 2019년 혈액암 판정을 받은 후 치료와 재발을 반복했던 안성기 배우는 2022년 <한산: 용의 출현>에서 어영담 역을 맡으며 연기 혼을 불태웠지만 2023년 특별 출연한 <노량: 죽음의 바다>가 유작이 됐다. 많은 팬들이 안성기 배우의 건강 회복을 바랐지만 새해를 이틀 앞두고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5일 눈을 감았다.

안성기 배우는 1957년 6살의 나이에 연기를 시작해 고 김기영 감독의 <10대의 반항>, <하녀> 등에 출연하며 아역 배우로 활동했다. 대학 진학 후에는 육군 중위로 군복무를 마치고 1970년대 후반부터 다시 연기 활동을 시작했고 1980년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을 시작으로 배우로서 전성기를 열었다. 실제로 안성기 배우를 빼고 1980년대 한국영화를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흔히 배우들은 짧으면 2~3년, 길어도 10년 정도 전성기를 보내면 후배들에게 밀려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안성기 배우는 1980년대 최전성기가 지난 후에도 1990년대와 2000년대, 2010년대까지 관객들의 기억 속에 남을 대표작을 남기며 건재를 과시했다. 안성기 배우에게 그 어떤 대단한 스타배우도 달지 못했던 유일무이한 수식어 '국민배우'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닌 이유다.

[1990년대 <투캅스>] 절친한 후배에게 '권력 이양'

 안성기 배우(오른쪽)는 <투캅스>를 통해 한국 최고의 스타배우 자리를 아끼는 후배 박중훈에게 물려 줬다.
안성기 배우(오른쪽)는 <투캅스>를 통해 한국 최고의 스타배우 자리를 아끼는 후배 박중훈에게 물려 줬다.(주)시네마서비스

1980년대를 지배(?)했던 안성기 배우는 1990년대 초반까지도 <남부군>과 <천국의 계단>, <그대안의 블루>, <하얀 전쟁> 등에 출연하며 충무로 최고 배우의 자리를 굳게 지켰다. 그러던 1993년 떠오르는 청춘 스타로 이름을 날리다가 뉴욕에서 연기 공부를 하고 돌아온 후배 박중훈과 코미디 영화에 출연했다. 서울 관객 86만을 동원했던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였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사실 안성기 배우와 박중훈은 1988년 박광수 감독의 <칠수와 만수>에 함께 출연하며 뛰어난 연기 호흡을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연기자로서 더욱 무르익은 두 배우가 <투캅스>에서 보여준 환상의 호흡은 관객들을 열광 시키기 충분했다. 안성기 배우는 <투캅스>에서 각종 불법과 비리로 빼돌린 거액의 재산을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아내와 자식의 명의로 빼돌리고 본인은 검소하게 사는 척하는 조형사를 연기했다.

반면에 박중훈이 맡은 강민호 형사는 경찰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정의감 넘치는 엘리트 신참 형사로 파트너인 선배 조형사와 사사건건 부딪친다. <투캅스>는 그렇게 전혀 다른 두 형사가 서로 충돌하면서 벌어지는 갖가지 에피소드들로 관객들에게 많은 웃음을 선사했다. 그리고 <투캅스>에서 환상의 연기 호흡을 자랑한 안성기 배우와 박중훈은 1994년 대종상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했다.

안성기 배우는 <투캅스>를 계기로 1980년대부터 10년 넘게 짊어지고 있던 '한국영화 원톱배우'의 자리를 자연스럽게 박중훈에게 넘겨줬다. 의도했든 아니든 <투캅스>라는 영화에 함께 출연하면서 좋아하는 후배에게 권력을 이양(?)하게 된 셈이다.비록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배우'라는 타이틀은 박중훈에게 넘어갔지만 그렇다고 '국민배우' 안성기의 입지와 위상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2000년대 <라디오스타>] 박중훈과 4번째 연기 호흡

 <라디오스타>의 최고 명장면으로 꼽히는 우산 엔딩신은 안성기 배우의 아이디어였다.
<라디오스타>의 최고 명장면으로 꼽히는 우산 엔딩신은 안성기 배우의 아이디어였다.(주)시네마서비스

1993년부터 1997년까지 박중훈의 전성기가 이어진 한국영화는 한석규와 박신양 같은 신진 세력이 급부상한 1990년대 후반부터 급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성기 배우는 후배들의 약진과 별개로 <영원한 제국>과 <남자는 괴로워>, <박봉곤 가출사건>, <미술관 옆 동물원> 등에 출연하며 꾸준하게 활동을 이어갔다. 1999년에는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살인범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성기 배우는 2000년대 들어 주연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물론 2003년 한국 최초의 천만영화 <실미도>에서 "날 쏘고 가라"는 명대사를 남긴 684부대 교육대장을 연기하기도 했지만 1980~90년대에 비하면 안성기 배우의 입지가 좁아졌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2006년 안성기 배우는 '영혼의 콤비' 박중훈과 함께 <왕의 남자>로 천만 감독이 된 이준익 감독의 신작 <라디오스타>에 출연했다.

<라디오스타>에서 안성기 배우는 1988년 가수왕에 오른 이후 끝없는 몰락을 경험했지만 여전히 스타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최곤(박중훈 분)의 매니저 박만수를 연기했다. 박만수는 다혈질에 사회성도 없는 최곤 때문에 온갖 고초를 겪지만 20년 가까이 최곤을 뒷바라지하면서 최곤이 라디오DJ로 성공해 제2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하는 캐릭터로 안성기 배우의 소탈한 연기가 단연 돋보였다.

<라디오스타>에서는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쓸쓸하게 서 있는 최곤에게 박만수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담담하게 우산을 씌워주는 라스트신이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준 명장면으로 꼽히는데 이는 안성기 배우의 아이디어였다. 안성기 배우는 개봉 20주년이 된 현재까지도 많은 관객들의 '인생영화'로 꼽는 <라디오스타>로를 통해 대종상과 청룡영화상에서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청룡은 박중훈과 공동수상).

[2012년 <부러진 화살>] 346만 관객으로 건재 과시

 안성기 배우가 열연을 펼친 <부러진 화살>은 단 17억 원의 제작비로 전국 345만 관객을 동원했다.
안성기 배우가 열연을 펼친 <부러진 화살>은 단 17억 원의 제작비로 전국 345만 관객을 동원했다.(주)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안성기 배우는 2010년 친구의 딸과 사랑에 빠지는 멜로 영화 <페어러브>가 2만7000관객에 그치며 흥행 참패했고 2011년에 개봉한 재난 액션 스릴러 <7광구>도 엄청난 혹평 속에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그렇게 일부 관객들로부터 '감 떨어진 국민배우'라는 비아냥거림을 듣던 2012년, 안성기 배우는 2007년에 있었던 '판사 석궁 테러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 <부러진 화살>로 돌아왔다.

<부러진 화살>은 1990년 <남부군>과 1992년 <하얀 전쟁>에서 안성기 배우와 호흡을 맞췄던 정지영 감독이 1998년 <까> 이후 14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었다. <부러진 화살>은 최근 성적이 좋지 않았던 안성기 배우의 단독 주연작인 데다가 10년 넘게 현장을 떠나 있던 노장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부러진 화살>은 전국 346만 관객을 동원하며 극장가에 이변을 일으켰다.

안성기 배우는 <부러진 화살>에서 대학 입시에 출제된 수학 문제의 오류를 지적한 뒤 부당 해고 당하고 교수 지위 확인 소송에서 패소하자 정당한 재판을 요구하며 판사를 석궁으로 위협하는 김경호 교수 역을 맡았다. <부러진 화살>은 안성기 배우를 제외하면 스타 배우가 나오지 않았지만 안성기 배우의 열연에 힘입어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흥행 성적을 기록하며 관객들이 사랑하는 '국민배우'의 건재를 알렸다.

안성기 배우는 <부러진 화살>로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그 후에도 <타워>와 <신의 한 수>, <화장>, <사자> 등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혈액암 발병과 함께 안성기 배우의 활동은 급격히 위축됐고 2023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식 참석이 마지막 대외 활동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평생 영화를 사랑했던 한국 영화계의 유일무이한 국민배우는 5일 '하늘의 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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