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약에 우리> 스틸컷
(주) 쇼박스
비 오는 어느 날 은호(구교환)와 본가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만나 연인으로 발전한 정원(문가영)은 뜨겁게 사랑했고, 성공을 빌었지만 결국 헤어져 10년 후 재회한다. 반가움도 잠시, 옛 추억을 더듬다가 현실을 직시하며 무너진다. 다시 만나자는 건 아니지만 지나간 시절을 돌이킬 수 없어 안타까움이 커진다.
<만약에 우리>는 <건축학개론>(2012), <너의 결혼식>(2018) 이후 지지부진한 멜로 가뭄에 단비를 내린 작품이다. 배우 출신인 김도영 감독이 <82년생 김지영>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영화다. 원작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 한국만의 정서로 각색해 구교환과 문가영의 케미로 싸이월드 시절을 소환했다. 광활한 중국의 눈을 한국의 비로 치환해 다양하게 활용했다. 임현정의 대표곡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의 OST까지 더해져 잔상에 짙게 남는 물의 이미지를 구현했다.
특히 한국인의 소울이자 드림인 '집'을 메타포로 삼은 정서가 곳곳에서 읽힌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지만 건축가를 꿈꾸는 정원은 '인 서울 내 집 마련'을 꿈꾼다. 보육원에서 자라 집에 관한 남다른 애착을 보였던 만큼 은호라는 집을 만나 정착하려 든다. 정원에게 집이 가족, 고향, 마음의 안정을 향한 상징이었다면 은호에게는 집은 돌아가야 할 정원의 마음 한구석이다. 훗날 은호는 마침내 게임을 완성하고 정원에게 닿고자 했지만 둘은 끝내 이어지지 못한다.
정원의 고시원은 어둡고, 은호의 옥탑은 환했으며, 마지막으로 이사한 반지하는 눅눅하고 축축하다. 시작하는 연인이 그렇듯 불꽃이 터지며 관계는 절정으로 치닫다가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다들 비슷해서 공감되는 연애 과정이 공간의 변화로 묘사된다.
덥고 습할 때 본심이 튀어나오게 마련인 미세한 디테일이 숨어 있다. 선풍기를 회전으로 돌리던 따스한 은호도 시간이 지나자 선풍기 머리를 탁 쳐서 자기 쪽으로 돌리는 행동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다. 선풍기는 은호의 사소한 뒤틀림이 투영된 물건이다. 그 후 환한 빛을 주겠다던 은호도 결국엔 커튼으로 햇살을 가리는 행동으로 답답한 심기를 드러낸다. 무심코 한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이별로 가는 과정임을 두 사람은 알고 있지만 굳이 말하지 않는다. 심장도 떼어주겠다던 그 사람은 아득히 멀어져만 가고 이내 낯설어진다.
무릇 어떤 이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고?' 말할 수 있겠다. 사랑이 변한 게 아니라, 누구나 그런 시기가 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보다 성장통을 겪는 때, 삶에 지친 청춘이었을 뿐이라고 위로해 본다. 사랑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각박한 현실은 함께 있는 시간을 지옥으로 만들어 버릴 뿐이다. 같이 힘든 시간을 견디는 것은 능사가 아니며, 이별만이 답일 때가 반드시 찾아온다.
마음 속 누군가를 떠올리는 영화
▲영화 <만약에 우리> 스틸컷(주) 쇼박스
<만약에 우리>는 원작과 다른 결말을 택하면서 긍정적인 내일을 기대하게 만든다. 어쩌면 현실적이지 않은 선택이라고 불평을 늘어놓을지 모르겠다. 현실에서는 누구나 꿈꾸던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판타지 요소를 더함으로써 우리의 삶이 조금은 윤택해진다고 생각했다. 가질 수 없는 것을 끊임없이 동경하는 인간의 속성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을 반영한 허구인 영화가 100년 넘게 사랑받는 이유와 비슷하다.
은호와 정원은 어렸고 미숙했다. 금전적 여유와 사회적 지위를 바라던 막연한 미래가 손에 잡히지 않기에, 곁에 있는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실수를 반복했다. 하지만 20대의 연애는 어설프고 순수했기에 상대방을 놓아버리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 생각할 수 있다. 오해와 실수가 만든 착각으로 아프게 했지만 그때의 행동이 단단한 나를 만들어간 것이다.
원작을 좋아했지만 리메이크 버전도 잘 만들었다. 원작과 가장 큰 차이점은 은호와 정원이 '성장캐'라는 설정이다. 특히 여성 캐릭터 빌드업은 원작을 뛰어넘었다.
지난 2025년 마지막 날 개봉한 <만약에 우리>는 연말연시 필람무비로 벌써 입소문을 탔다. 한국 영화계에서 금기어처럼 자리 잡은 '멜로 장르'의 훈풍이 불어오는 기분 좋은 조짐이다. 관객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옛사랑을 떠올리며 본인의 리즈시절을 떠올리는 분위기다. 연인으로 한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부모님, 친구 등 아름다웠던 때를 함께한 누군가가 생각나 그때의 자신과 연결에서 받아들인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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