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인간의 삶을 구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훌륭한 답변

[김성호의 씨네만세 1242] <고스트라이트>

이야기는 사람을 움직인다. 전에는 해본 적 없는 생각으로 이끌고, 가져본 적 없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나 아닌 다른 이의 삶에 빠져들어 그가 가졌을 마음을 겪도록 한다. 그렇게 나의 세계를, 삶을, 나라는 인간을 바꿔낸다. 드라마, 소설, 영화, 이야기를 매개로 한 예술의 아름다움이 여기에 있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부부이기도 한 알렉스 톰슨과 캘리 오설리반이 공동연출한 <고스트라이트>는 예술의 이 같은 면모에 주목한다. 한 인간을 절망으로부터 일어서도록 하는 예술의 미묘한 순간을 포착한다. 그로부터 영화 바깥, 스크린을 응시하는 관객을 움직이려 든다. 과연 미국에서 주목받는 젊은 영화인 부부의 작업답다.

세상 가장 고통스런 이는 누구일까. 고통이란 상대적이어서 저기 전란으로 제 고국이 폐허가 된 이보다도 여기 손톱에 가시 낀 이가 더 괴로울 수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와 저기를 모두 납득케 할 고통받는 이는 있는 것이다. 톰슨과 오설리반 부부가 <고스트라이트> 가운데 세운 고통 받는 이는 장년의 미국 건설노동자 댄(키스 컵피러 분)이다. 아내 샤론, 딸 데이지와 함께 사는 평범한 듯 보이는 이 사내의 일상으로부터 영화는 그가 겪고 있는 커다란 고통과 그를 둘러싼 두터운 갑주를 관객 앞에 꺼내놓는다.

고스트라이트 스틸컷
고스트라이트스틸컷필름다빈

망가진 관계, 부서진 삶으로부터

금쪽이도 이런 금쪽이가 없는 듯 보이는 사춘기 딸 데이지, 서로 깊은 대화는 나누지 않는 듯 보이던 부부의 문제가 실은 이 가족이 겪은 상실로부터 비롯됐다는 걸 영화는 얼마간의 시차를 두고 털어놓는다. 세상에 이런 고통이 또 없다 하여 참척(慘慽)이라 불렸던 상실, 공자의 제자였던 자하는 제 아들이 죽은 뒤 너무나 슬퍼한 나머지 눈까지 멀었다고 하였었다. 그럼에도 예로부터 지금까지 누군가는 꾸준히 참척이며 상명지통(喪明之痛)의 아픔을 감당했던 것인데, <고스트라이트>가 바로 그 지점을 들여다보기로 한 것이다. 세상 가장 고통스런 이를 예술이 구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꺼내놓기 어려울 만큼 큰 상처를 가진 이는 그저 봉한다고 하였다. 댄이 꼭 그렇다. 그는 지난 상실과 관련한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친다. 온 가족이 함께 상담사를 만날 때나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문제와 대면할 때가 생기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댄은 물러서고 회피하길 선택한다. 평소엔 온화한 편인 듯한 그이지만 수시로 분출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건 이와 관련이 있을 테다. 그리고 바로 그날이 다가온다. 댄이 예술과 마주하는 그 운명적 순간이.

건설 노동자, 둔중한 기계에 올라타 새로 깐 아스팔트를 밟는 댄의 모습과 셰익스피어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도 10대 청춘남녀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니. 그러나 톰슨과 오설리반, 미국 영화계가 주목하는 이 싱그러운 재능들은 바로 그 어우러지지 않음을 도리어 매력적으로 여긴 듯하다. 댄이 기꺼이 무대에 올라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그것도 로미오 배역을 연기하도록 하니 말이다.

고스트라이트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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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극단에 들어간 뒤 바뀐 것

세상사 많은 일이 그러하듯, 이렇고 저런 우연과 필연의 이끌림으로 댄은 아마추어 극단을 만난다.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준비하는 이 극단은 진지한 삼류, 허술한 진짜들의 모임이다. 젊은 축도 사오십은 족히 되는 듯한 이들이 온 정력을 다하여 이 연극 대사들을 읊어가는 과정이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적어도 댄에게는 그렇다. 특별함을 읽은 때문일까. 말로 써낼 수 없는 이끌림 때문일까. 그저 무시할 수도 있었을 제안을 끝내 거부하지 못한 댄은 조금씩 이 극단의 일원이 되어간다.

그리고 셰익스피어, 인류 역사상 손꼽는 예술가인 그의 수작이 제 역할을 해낸다. 댄은 연극을 준비하며 저 자신과 마주한다. 제가 연기하는 것은 극 속의 인물들, 꾸며지고 만들어진 가짜일 뿐이지만 그로부터 진짜 제 삶의 무엇이 바뀌어가는 것을 느낀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탈리아 베로나의 두 가문, 원수로 서로를 잡아먹을 듯한 몬태규와 캐플릿 가의 젊은이들이 눈 맞아 사귀다가 마주한 비극이다. 집안의 반대에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애정은 이 시대 늙은 청춘들의 나태함을 질책하듯 격렬히 타오른다. 어른들의 합당한 이유는 고려할 가치도 없다는 듯 오로지 순수한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지는 이들의 관계를 셰익스피어는 가장 찬란할 때 부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댄은 로미오다. 사랑하지 않아야 할 모든 이유를 넘어서 제 마음을 던지는 청춘이다. 무대 위에서 로미오여야 할 댄은, 그러나 로미오가 될 수 없다. 현실 속에서 그는 몬태규며 캐플릿의 당주이고, 로미오와 줄리엣을 갈라놓은 장본인이며, 그들을 끝내 비극으로 이끈 늙은이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무책임하게 가문을 배신하고 부모와 형제를 해소할 바 없는 고통의 수렁에 던져 넣은 로미오가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어느 흔한 베스트셀러 극작가였다면 댄은 당장 집어치웠을 테다.

고스트라이트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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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낭만적인 이유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다. 댄의 깊은 반감에도 극이 조금씩 그를 설득해간다. 영화는 댄이 무대 위에서 로미오가 되는 과정이다. 무대 위에서 로미오가 되기 위해선 무대 밖에서 로미오를 이해해야 한다. 몬태규와 캐플릿의 당주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이해하는 기적이 이 극 안에서 일어난다.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전에는 이해할 수 없던 선택이 충분히 가능한 무엇이 되고 만다. 내 벌어진 상처보다 글썽거리는 저편의 눈물을 먼저 보게 되는 일이 댄의 일상에서 빚어진다.

<고스트라이트>는 영민하고 낭만적이다. 극 중 극과 그 바깥의 이야기를 절묘하게 연결 짓고, 한 곳에선 아버지인 이가 다른 곳에선 아들이란 전환을 이뤄낸다. 닿지 않던 것이 닿아지고 단단히 묶여 있던 것이 풀어지는 순간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사건과 만남들로 이뤄낸다. 동시에 영화는 돌아보도록 한다. 그 있을 수 있는 사건과 만남들이 현실 가운데선 어째서 일어나지 않는지를, 이 팍팍하고 삭막한 세상이 결국엔 우리의 꽉 막힌 자세와 태도 때문에 빚어진 것임을 알게끔 한다. 댄에게 셰익스피어가, 로미오가 다가서는 기적은 약간의 낭만이 더해지면 기적이 아닌 현실일 수 있다.

영화 속 댄의 가족들을 실제로 한 가족이 연기했단 건 신선한 뒷얘기다. 가족이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걸 이 가족들이 보여준다. 가족이 얼마만큼 소중한 것인지를, 그 작고 소중한 집합이 때로 위대한 힘을 낸다는 걸 역시 가족이란 끈으로 묶인 부부 감독이 입증한다. 나는 <고스트라이트>가 명성대로 대단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고스트라이트 포스터
고스트라이트포스터필름다빈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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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