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코리아>의 한 장면
디즈니플러스
또한 이 문서는 일제가 한국을 아시아·태평양 아편 공급망의 허브로 만들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만주·몽골·남태평양·중국에까지 마약을 공급하겠다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위해 1919년에 조선아편취체령을 제정했던 것이다.
그런 구상이 실현됐다면, 오늘날의 콜롬비아가 세계 최대 코카인 생산국이 되어 있는 것처럼 20세기 전반기의 식민지 한국은 세계적인 아편 생산국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 아편시장의 변화로 인해 그 구상은 성공하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의 시황을 근거로 수립된 일제의 정책은 대전 이후의 상황 변화로 인해 실효성을 잃었다. 위 조석연 논문의 설명이다.
"전쟁 발발 후 일시적으로 폭등했던 아편의 가격이 종전(終戰)의 여파로 다시 폭락하게 되었고, 이에 수납 아편에 대한 배상금도 자연스럽게 낮아져 조선의 앵속 재배자들이 경작을 포기하는 사태가 속속 벌어지게 되었다."
정책 실패로 인한 후유증은 고스란히 식민지 한국인들의 몫이 됐다. 한국의 양귀비 재배자들만 손실을 입은 게 아니다. 일제가 대량 생산을 부추긴 '메이드 인 코리아' 아편은 "내지·만몽·남양·지나 방면"이 아닌 한국 땅의 마약 소비를 부추기는 원인이 됐다.
위 논문은 세계 아편 가격의 폭락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1920년대 중반부터 일제의 아편 재고량은 계속 증가해갔다"라며 "이때부터 조선에는 아편 재고분의 부정매매가 성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많은 조선인 중독자들이 양산"됐다고 기술한다.
1925년 2월 20일자 <동아일보> 2면은 전년도 12월 말에 조사된 서울 인구가 29만 7465명이라고 보도했다. 그중 한국인은 21만 5960명이었다. 이 숫자의 4분 1 이상이 아편중독자였다는 신문 기사가 있다. 같은 신문의 1925년 2월 27일자 2면은 총독부 위생당국자의 발언을 기초로 이렇게 전했다.
"한번만 엇지하다 맛을 드려노흐면 땅을 팔고 집을 팔고 심지어 나종에는 자긔 안해와 아들딸까지도 팔아가면서 긔어히 먹기도 하며, 침도 맛다가 마츰내는 그로 인하야 생명을 빼앗기게 되는 아편쟁이가 경성 시내에만 오륙만 명을 내리지 안는다는데"
이 기사는 서울 시내 중독자의 99%가 한국인으로 추정된다고 알려준다. "더욱 긔막힌 일은 구활구부 가량은 모다 조선 사람들인 모양"이라고 말한다. 아편 때문에 땅을 팔고 집을 팔고 아내와 자녀까지 팔아넘기는 서울 시내의 한국인 중독자가 그처럼 많았던 것이다.
한국에서 아편을 생산해 일본과 중국·만주·몽골·남태평양에서 수익을 낸다는 조선총독부의 사업 구상은 이처럼 한국인 피해자만 대거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다. 마약 생산지는 언제든지 마약 소비지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 사례는 "만들긴 한국에서 만들지만 다 일본으로 수출하는 거야"라며 '애국'과 '수출역군'을 운운하는 <메이드 인 코리아>의 대사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