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어떻게 '게임의 민족'이 되었나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온 더 라인> <굿게임(GG), 한국의 게이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온 더 라인> 스틸
<온 더 라인> 스틸㈜바른손이앤에이

1부에 해당하는 <세이브 더 게임>을 통해 1980년대부터 태동한 한국 게임산업과 문화가 어떻게 급성장하게 되었는지 살펴봤다. 수많은 개척자가 영욕을 거듭하며 20세기 후반 일정한 토대를 구축했다. 그리고 1997년 IMF 전후로 관련 지형에 대격변이 발생한다. 2부와 3부는 그때 이후로 변모한 지도를 다양한 각도로 살펴 나간다. (관련 기사 : 페이커 전에 이들이 있었다... 한국 게임의 기원 기록한 '세이브 더 게임')

미래의 징후는 언제나 물 밑에서 오래전부터 준비된다. 2부와 3부는 각각 1990년을 시초로 현재 시장을 장악한 온라인 게임 시장의 토대와 흥망, 한 세대를 초과한 한국 내 게임 이용자들에 관한 문화인류학 고찰을 진행한다. 후속편들은 게임산업의 경제·사회적 배경과 함께 민족사 관련 접근까지 병행된다. 점점 확장하는 담론은 과연 어떻게 귀결될 것인가.

2부 <온 더 라인>, 2000년대 온라인 게임 전성시대

1990년,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이 서울에서 대전 대덕으로 이전된다. 허허벌판 새 캠퍼스 주위엔 슈퍼도 식당도 아무것도 없었다. 단 하나, 기숙사 방마다 인터넷이 연결된 PC, 층마다 서버가 존재했다. 학생들은 할 게 없으니 종일 컴퓨터 앞에 붙어 있었다. 이들은 전공과 연계된 머드 게임에 빠져들었고, 게임 설계가 오픈소스 시절이라 이들은 초창기 게임 개발자로 변신한다. 그렇게 1996년 4월, 텍스트로만 플레이하던 머드 게임에 직관적 그래픽을 결합한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가 출시된다.

마침 1998년 시대 배경도 온라인 게임 번창에 최적화된 상황이 도래한다. <바람의 나라>에 이어 <리니지>가 선풍을 일으키며 국산 온라인 게임 전성기가 열린다. '길드', '혈맹'이란 용어가 널리 전파되며 게임 내에서 사회적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단순히 쏘고 부수던 기존 게임에서 탈피해 사회를 건설하고 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이 게임의 요체로 대두된다. 개발자는 그저 설계만 잘하면 끝나는 게 아니라, 이용자의 기대에 끝없이 부응하며 '서비스' 후속 활동에 복무하는 과제가 추가된다. 온라인 게임 내에 평행 세계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유저에게 권력을! 한국 게임 진화의 시작

 <굿게임(GG), 한국의 게이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스틸
<굿게임(GG), 한국의 게이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스틸㈜바른손이앤에이

온라인 게임은 눈부신 속도로 보급된 인터넷과 PC방 덕에, 대규모 인원이 동시 접속하며 확장된다. 몇 년 사이 춘추전국시대 경쟁 속에 다양한 도전이 감행된다. 롤플레잉 게임은 판타지 소설과 설정을 공유하고, 케이블 TV 게임 채널이 미디어를 담당하며 기반은 굳건해진다. 20여 년간 장수하는 <마비노기>처럼 세계관 중심 '초식'형 게임도 등장한다. 게임 엑스포가 개최되고 해외판매가 열린다.

하지만 진입장벽 높은 MMORPG 편중에 지친 이들을 위한 우회로도 필요한 법. 모바일 환경에도 구동하는 '캐쥬얼' 게임이 주식인 RPG 게임에 지친 이들에게 간식 노릇을 소화한다. 복고풍처럼 보이는 픽셀-스크롤 게임이 무대를 옮겨 부활한다. 반면 대형 개발사들의 '거함거포주의' 무제한 대작 개발 경쟁 탓으로 시장 전반에 수익 모델 창출 문제가 떠오른다.

수익성을 확장하려던 과금 시도는 '한국적 모델'로 귀결된다. '리니지'가 확립한 월정액 체제는 캐쥬얼 게임에선 자리를 잡지 못하고 기본 구동 무료, 아이템 판매로 수익을 내는 '부분 유료화'가 대세로 등극한다. 격동 속에 게임 속 세상은 점점 현실 사회를 닮아간다. 게임에서 친목을 도모하다 실제 결혼에 골인하는 사례가 화제가 될 정도로 온라인 이용자 네트워크는 성장과 진화를 거듭한다. '크레이지 아케이드'나 '카트라이더' 같은 유명 게임이 등장힌다.

개인 승부 대신에 '팀전'이 활성화되며 '헤비', '라이트' 이용자 모두 협력을 통한 '조별과제' 쾌감을 깨닫는다. 팀 승부 중시 조류와 함께 현실 승부 '끝판왕' FIFA 같은 스포츠 게임도 유행한다. 온라인 게임 매출은 2002년 4000억에서 2005년 1조 원으로 상승세다. 그야말로 게임 '르네상스' 시대로 그 시절을 회고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쟁쟁한 인터뷰 대상자들은, 그때가 다양한 도전이 가능했던 시기라는 데 입을 모은다.

2000년대 '화양연화', 안갯속의 풍경으로

당시 게임 시장 척도는 PC방 인기 게임 순위였다. 하지만 가정용 인터넷 보급은 시장의 변화로 이어진다. PC방에선 주목받지 않던 <메이플스토리>가 변화의 신호탄으로 떠오른다. 마침 BIG 3 개발사 간 과도한 경쟁에도 성과가 변변하지 않자 위기론이 등장한다. 구글과 애플 등 거대 해외 플랫폼이 국내 이용객에 관심을 끌고 모바일 기반 게임이 늘어난다. 역시 불과 몇 년 사이 벌어진 변화다.

시장 조정에 들어선 업계는 자신의 작업에 자긍심을 지키던 개발자 vs. 경영과 이익 확보에 집중하는 '사장님'으로 분리된다. 물론 대세는 후자다. 수익성에 방점이 찍히자 기존 게임 다수가 업데이트 중단과 서버 종료라는 비운에 놓인다. 신규 개발은 유지해도, 창의적 아이디어만으로 착수하던 시절은 끝났다. 빈자리는 해외 사례 분석에 입각한 기획안이 좌우하게 된다. 그와 함께 팽창기에서 조정기로 접어든 게임 회사는 신규 콘텐츠 제공 못지 않게 기존 게임 서비스 제공, 즉 A/S 비중이 늘어간다.

물론 다년간 이용자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해 고락을 나누던 숱한 게임 서비스가 문을 닫는 건 피할 수 없다. 서버 종료 순간까지 게임에 접속해 있던 충성파 이용자들의 채팅 내용은 애잔한 슬픔으로 가득하다. 그렇다고 개발자가 침체기에 모든 이용자의 소망을 지켜줄 수도 없는 노릇. 누군가는 자신이 처음 개발했던 것과 십여 년이 지나 자신은 이미 한참 전에 손을 뗀 채 신규 관리자와 다수 이용자에 의해 변모한 지금의 게임이 외관은 이어져도 뜯어보면 판이한, 마치 '테세우스의 배'와 같다고 소회를 전한다.

물론 장수 게임의 폐쇄는 그저 아련한 향수로만 끝날 일이 아니다. 기성세대는 게임에 몰입하는 이들을 탐탁하지 않게 봤지만, 초기 이용자들은 그 가상현실 안에서 오랫동안 기억과 문화를 축적해 왔다. 이제 중장년이 된 이들의 청춘에서 이전 세대와 달리 게임은 빠질 수 없는 상징이 된 것. 거대한 전환은 되돌릴 수 없다.

3부 <굿게임(GG), 한국의 게이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게임의 민족 연대기

 <굿게임(GG), 한국의 게이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스틸
<굿게임(GG), 한국의 게이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스틸㈜바른손이앤에이

불과 한 세대 만에 한국은 전체 인구 중 7할이 게임을 즐기는 나라가 되었다. 세계적으로도 한국인 게이머는 경외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받는 '규격 외' 집단으로 인정받는다. 그야말로 '게임의 민족', '세계 최고 수준 게이머 양성소'로 등극한 셈이다. 그 미스터리에 다가서는 게 3부가 도맡는 역할이다.

1980년대, 동네마다 '오락실'이 들어선다. 아이들은 학교와 집 통학 길에 비밀기지로 이곳의 잠재력을 파악한다. 동전 하나로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가 또래 사이에서 권위와 인정의 척도가 된다. 이들은 개별 오락실의 영주에서 점차 동네 제패를 위해 경합에 나선다. 그랬던 이들의 후예가 2000년 밀레니엄 전후로 번성한 PC방에서 이제 전국 제패를 걸고 24시간 내내 혈투를 치른다. 온라인 게임의 거대한 가상공간은 이 사이버 검투사들이 승부욕을 불태우는 투기장으로 전환한다.

한국인 게이머는 세계적으로 '대상혁(세계구급 게이머 '페이커'의 별명)'을 필두로 집요함과 근성, 지독하게 잘한다는 이미지로 유명하다. 이들은 개발사가 적어도 반년은 걸릴 거라 자신하던 최상위 '레이드(공격)' 대상을 단 6시간 만에 격파할 정도다, 게임의 민족이 아니고선 설명하기란 불가능한 지경이다.

여기에서 제작진은 문화심리학자를 등장시켜 한민족의 게이머 천성을 해설하기 시작한다. 고대부터 '투호' 같은 피지컬 게임은 물론, 전쟁을 방불케 하는 바둑이나 장기 등 전략·전술 게임, 아날로그 시뮬레이션 게임이라 봐도 무방한 조선 시대 양반 선비들의 보드게임 '승경도'까지 듣고 있자니 정말로 게임을 즐기는 게 본성인가 싶을 정도다.

전문가의 게임 사회학 강의는 계속된다. 이용자 취향과 선호에 따라 각각 승부라는 도파민에 몰두하는 '킬러' 유형, 목표 달성에 총력을 기울이는 '성취' 유형, 협력과 소속감, 커뮤니티 활동에 집중하는 '사교' 중시형, 사회적 집단화보다 나 홀로 여행을 즐기는 '탐험가' 유형으로 4분단면을 입체적으로 설정해 한국 게이머들을 분류한다.

극소수 전업 게이머 외에도 4대 유형 중 승부와 행동주의 경계선에 속하는 이가 가장 많다는 건 복잡한 해석을 요할 부분이다. 자기중심적 공격성이 외국 이용자에 비해 강하단 특징, 일본 'N4' 세대처럼 현실 사회생활 대신에 게임으로 만족하며 커뮤니티 중심 온라인 게임보다 1인용 콘솔 게임이 다시 기지개를 켠다는 사례는 게임을 넘어 한국 사회 지형분석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업의 역사를 넘어 문화 콘텐츠의 가치를 탐구하는 기획

특정기업의 30주년 기념으로 출발한 기획인데도 <세이브 더 게임> 3부작은 자사의 성과를 자화자찬하는 흔한 오류에 빠지지 않고, 자신들이 발 딛은 역사에 관해 백서를 편찬하려는 태도를 견지한다. 세대가 바뀌면 금방 휘발되고 마는 구전되는 기억을 하나의 사료로, 그것도 대중적 접근성이 월등한 영상 실록 형태로 제작한 건 중요한 사료로 오래도록 유용할 테다.

투자 및 지원 측도, 제작진도 게임 문화에 긍정적인 태도를 견지하기에, 흔히 요즘 세대가 '린저씨(리니지+아저씨)'라 부르는 직전 세대의 과거 미화라 불릴 접근법은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 존재하는 특정 세대가 자신들의 청춘을 추억하는 문화 코드로 초기 게임 역사를 기록하는 건 그들의 권리로 이해할 만하다.

물론 초창기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의 명암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바츠 해방전쟁' 등 몇몇 사건이 빠진 건 아쉬운 일이다. 게임을 향유하며 애정을 가진 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본격 게임 역사서라 여기면 딱 맞는 작업이다. 어쨌건 첫술에 배부를 순 없는 노릇. 이젠 대중문화의 엄연한 일부가 된 게임의 사회적 영향에 관해 더 풍부한 논의를 기약하면 될일이다.

<작픔정보>

온 더 라인 / 굿게임(GG), 한국의 게이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2025|한국|다큐멘터리
2025. 12. 29. 공개(넷플릭스)|72분/34분|전체관람가
감독 박윤진|PD 이원일
기획 / 제작 ㈜사이드미러
제공 재단법인 넥슨재단
배급 ㈜바른손이앤에이
라인 굿게임 한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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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