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브 더 게임> 스틸
㈜바른손이앤에이
2000년 전후로 스타트업 활성화와 대기업 투자 및 상장이 어우러지며 게임업계는 온라인 중심으로 전환한다. 한국 게임의 판도가 뒤집히던 시절, 초창기 개척자로 활약하던 게임 업체들은 '라스트 댄스'를 선보이지만, 결국엔 '번들'이라 불리는 부록 끼워팔기 벽을 넘지 못한다. 공들인 대작 게임이 1만 장 팔릴 때, 10배 이상 불법복제가 탄생하는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란 역부족이던 탓이디. 그렇게 한 시대가 저문다. 영화는 그 격동의 시대, 하지만 이제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들도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를 애정과 연민, 그리고 치열한 고증을 곁들여 조명한다.
이런 작업을 수행하려면 전통적인 기록영화 작업만으로 접근할 수 없다. 자신이 담고자 하는 상대에 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이 필수다. 그렇다면 최적화된 제작진의 존재가 1차 난제다. 다행히 영화는 최상의 궁합으로 출발한다. 한때 인기를 끌었으나 이젠 제작사도 업그레이드는 물론, 서버 관리조차 손을 놓은 RPG 게임 '일렌시아' 몇 남지 않은 잔존 이용자를 찾아 전국을 여행하며 그들이 왜 철 지난 데다 '버그' 투성이 게임을 떠나지 못하는가 탐구한, 본인부터 해당 게임의 '헤비 유저'인 박윤진 감독이 그 중책을 자임한다. 그 기행은 <내언니전지현과 나>(2020) 라는 다큐멘터리로 개봉에 이른다. 감독의 게임 아이디가 바로 '내언니전지현'이다.
게임 이용자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그들만이 공유하는 소우주를 나누고, 게임이 그저 시간 죽이기로 그치지 않는 어떤 원체험이자, 사방이 가로막힌 벽과 같은 현실을 극복하거나 위로하는 순기능이 있음을 보여준다. 단지 산업과 이윤에 국한되지 않고, 자체로 시대정신과 문화를 구축하는 게임이란 존재에 관해 공개적으로 개봉한 최초의 작업은 흥행 성적과 별개로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며 거대 산업이 되었지만, 갈등과 분열이 일상화된 업계 내에서도 화두가 된다. 작품 속에서 질타와 비판의 대상으로 포화를 맞던 게임 제작사가 자성의 움직임과 더불어 ESG 경영 흐름에 활용하고자 TF를 구성해 손을 내민다. 30년이 훌쩍 넘은 기업 역사를 돌아보며 게임 흥망사를 기록하는 작업을 제안한 덕분에 <세이브 더 게임>이 탄생한다.
장대한 3부작의 출발이자 잊힌 보물창고와 같은 작업
넥슨의 지원으로 탄생한 <세이브 더 게임>은 1편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 게임의 탄생과 초창기 흥망사를 담은 1부 성격인 본 작업에 이어 2000년대 온라인 게임 전성시대와 함께 벌어진 '화양연화'를 회고하고, 대중화한 게임의 사회적 의미를 돌아보는 <온 더 라인>이 2부, 게임 제작사와 개발자의 반대편에 선 게이머들의 탄생과 활약에 대한 3부 <굿게임(GG), 한국의 게이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가 연달아 완성되었다.
게임 애호가들에게 애증 대상인 굴지의 대기업이 자신들의 기원과 변천사를 다룬 기록물에 투자하면서 개별 기업 자화자찬에만 기울지 않는 창작자의 자율성을 크게 훼손하지 않은 작업을 완성했다는 건 유의미한 변화다. 물론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아쉬움이 남을 수 있지만, 소싯적 게임에 빠져 청춘을 보내본 중장년이라면 <세이브 더 게임> 3부작은 추억의 일기장이나 사진첩을 우연히 이삿짐 꾸리다 발견하고 감회에 젖는 체험 마냥 다가올 테다.
업계 위주의 수치와 업적 홍보로 그치지 않고, 게임 애호가의 시각으로 제작진 역시 청춘의 일부분으로 간직하던 게임을 역사이자 문화로 탐구하는 태도 역시 주목할 만하다. 정치나 전쟁 같은 거대 역사가 아닌, 일상에 새롭게 진입해 어느새 문화로 자리한 대상을 생활사로 풀어내고자 하는 도전은 근래 한국 대중문화와 사회 탐구에서 중요한 주제로 떠오른 '복고(RETRO)' 열풍을 단순한 상술이 아니라 학문적 연구 주제로 삼는 흐름과도 일맥상통한다.
처음엔 그저 '그땐 그랬지' 추억팔이로 그만일 뿐 같지만, 보고 있자면 개인의 회고를 초과해 사회변화가 물밑에서부터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 장구한 과정과 함께 사회가 어떻게 정교한 순환을 거쳐 변모하는지, 마치 <아바타> 속 배경인 판도라 행성의 순환과 자정 작용을 주관하는 '에이와'처럼 작동하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 도래한다. 1부에서 감회에 젖었다면, 2부와 3부로 망설이지 않고 좌표를 잡으면 된다.
<작품정보>
세이브 더 게임
2024|한국|다큐멘터리
2025. 12. 29. 공개(넷플릭스)|80분|전체관람가
감독 박윤진|PD 이원일
기획 / 제작 ㈜사이드미러
제공 재단법인 넥슨재단
배급 ㈜바른손이앤에이
▲<세이브 더 게임> 포스터㈜바른손이앤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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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