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확인되지 않은 풍문과 괴담으로 사람들을 가두고 핍박했던 시절이 말이다. 옛 사람에게 들었다. 한센병을 앓는 이가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아이의 간을 먹으면 병이 사그라져서 그들이 아이를 납치해다 잡아먹었다는 이야기다. 수백, 수천 년 전이 아니라 불과 수십 년 전, 그러니까 일제로부터 막 해방된 시절에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며 그가 내게 전해주었던 이야기다. 그 속에는 어떤 여자가 제 치마폭으로 감싸 마주 오던 환자들로부터 아이를 지켜낸 이야기가 있었고, 그 비슷하게 극적인 이야기가 서넛쯤은 더 있었다.
한센병 환자들이 아이를 잡아 그 간을 빼먹는다는 건 한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악의적 괴담 중 하나다. 사람고기가 질병의 특효약이 된다는 건 현대과학에선 턱도 없는 일이지만, 그 과학이 자리 잡지 못한 지난 시대엔 얼마든지 퍼져나갈 수가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영향으로 한국에는 꽤나 오랫동안 한센인이 아이 간을 빼먹는다는 풍문이 돌았다. 실제로 그 풍문을 접하고 아이를 납치해 해한 환자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 괴담이 아이보다는 환자들을 훨씬 더 많이 해했으리란 걸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괴담을 아는 이들이 흔히 전하는 바, 돌아다니는 한센병 환자를 보면 마을 청년들이 몽둥이를 들고 뛰쳐나가 흠씬 패주었다는 소리가 흔하게 나도는 것이다. 보기에 흉한 한센병의 특성상 혐오의 대상인 이들이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밖에 없던 상황에서, 마을의 아이와 떠돌이 병자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많이 해를 입었을지는 보지 않아도 알 만한 일이다.
▲영생인스틸컷
픽처하우스
한센병 환자들의 아픈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김상훈 감독의 신작 <영생인>은 한센병 환자들에게 가해진 사회적 폭력을 떠올리게 한다. 76살이나 먹고도 스물 몇처럼 보이는 여성을 주인공 삼은 이 독특한 영화는 원자폭탄 피폭 이후 늙지 않는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기묘한 설정으로부터 시작한다.
영화는 일본 방송국에서 나온 다큐멘터리 촬영팀이 소위 '영생인'이라 불리는 이들 중 하나인 이예진(강서하 분)을 취재하는 이야기로 꾸려진다. 다큐 촬영팀의 카메라를 따라 관객이 이예진과 영생인을 둘러싼 진실에 다가서는 것, 그것이 이 영화의 줄기가 된다.
영생인은 원폭 이후 알 수 없는 현상으로 만들어진 존재들이다. 피폭된 이들 중 수백 명이 시간이 흘러도 늙지 않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낯선 것이 위험한 것으로 여겨지던 시대, 국가는 영생인을 한데 모아 가두고 가혹한 삶을 강요했다 전한다. 영생인들에겐 오랫동안 따라붙는 괴담 또한 있었다는데, 그건 이들이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 피를 빨아먹는다는 것. 그 혐오가 과학기술이 자리한 이 시대에도 끊어지지 않아서 영생인들은 한곳에 자리잡지 못하고 숨어서 지낸다고.
▲영생인스틸컷
픽처하우스
미스터리 판타지로 다가서는 혐오와 배제
다큐는 영생인을 둘러싼 오해를 바로잡고 그 진면목을 알리기 위한 목적에서 기획된 듯하다. 일본에서 온 PD가 직접 카메라를 잡은 채 통역사를 대동하고 나선 촬영에서 주된 이야기는 이예진의 일상이다. 많은 나이에도 여전히 젊음을 유지하며 모델이란 새로운 영역에서 도전을 멈추지 않는 모습, 수시로 이어지는 혐오와 배제에도 굴하지 않고 공원에서 쓰레기를 줍고 꾸준히 운동하는 일상 등이 촬영된다.
혐오와 배제의 맥락을 좇아 과거 수용소가 있던 곳으로 향하는 것도 있지 않는다. 촬영팀과 함께 한 강원도 깊은 산골마을에선 군대를 동원해 영생인을 모조리 잡아 가두었던 아픈 역사가 자리한다. 군이 철수한 뒤에도 국가가 마을 주민들을 고용하여 핍박했다는 옛 이야기가 전해지는 가운데, 올림픽을 앞두고 국제적 비난을 받을까 두려웠던 정부가 마침내 수용소를 폐쇄한 것이 이예진과 같은 영생인이 보통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가게 된 결정적 이유가 됐다고.
국가에서 따로 영생인을 관리하지 않고 관련 자료를 폐기한 듯 보이는 탓으로, 취재는 다른 이들과의 접촉 없이 오로지 이예진만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취재팀에게 한 통의 제보가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영생인스틸컷
픽처하우스
믿음을 뒤흔드는 제보 한 통
제보자는 이예진의 동생이라고 주장하는 남자다. 그는 이예진의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그녀가 말하는 과거는 조작된 것들이며 실제로 그녀는 훨씬 위험하고 거짓된 사람이라는 것. 영화는 취재팀이 그를 검증해나가는 과정을 뒤따르며 이예진이 제공한 정보 가운데 여럿이 사실과 맞지 않는단 점을 보여준다. 대체 진실이 무엇이란 말인가.
<영생인>은 전형적 모큐멘터리, 혹은 페이크 다큐멘터리라 불리는 장르로 구분할 수 있는 작품이다. 모큐멘터리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관객으로 하여금 현장감 있는 상황으로 쉽게 몰입하도록 한다는 것일 테다. 다큐가 가진 사실적 특성을 차용하는 효과적 방안으로써 모큐멘터리를 채택하는 이유가 곧 이것이다.
<영생인>의 선택 또한 그 효과가 충분하다. 보는 이는 실제로 이예진을 좇는 제작팀과 함께 다큐를 찍는 듯한 현장감을 맛볼 수 있다. 중간에 계획이 어그러지며 혼란에 빠진 제작팀의 딜레마도 그대로 관객의 것으로 전환된다. 무엇이 사실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진실을 향하는 제작팀의 노력이 곧 극적 긴장과 해소의 쾌감, 반전의 자극으로 이어진다.
▲영생인포스터픽처하우스
한국이 소수자를 대하는 태도
그러나 영화는 그저 극적 재미로만 끝나지 않는다. 담고 있는 이야기, 곧 영생인을 둘러싼 국가폭력과 사회적 혐오며 몰이해가 실제 현실세계와 역사로부터 동떨어져 있지 않은 때문이다. 2년 전 비교적 볼 만한 한국 작품이 여럿 경쟁했던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 장편 후보'로 경쟁했던 <영생인>이다. 김성환의 <만분의 일초>, 김병준의 <위험사회> 등에 밀려 아쉽게 수상에 실패했으나 그 시도에 박수를 보낸 이들이 적지 않았다.
감독 김상훈은 연출의도를 통해 "'영생인'은 '한센인'들을 모델로 한다"며 "일개 병자일 뿐인 한센인들은 수십 년간 강제로 사회에서 격리된 채 '낙태강요' 등의 참혹한 인권유린을 당했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이는 명백히 국가가 저지른 폭력이며, 사회 구성원들도 책임을 나눠야 할 부분"이라며 "우리 사회는 소수자를 배격하는 방식으로 공동체의 질서를 확립해왔다"고 강조했다. <영생인>은 차별과 배제의 방식으로 소수자를 다뤄온 한국사회의 현실을 고발하고 대응의 전환을 촉구하는 제언으로 이 시대에 유효한 물음을 던진다.
어디 한센인뿐일까. 장애인과 도시빈민, 부랑자와 범죄자를 격리하고 착취한 역사를 한국 현대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때로는 이주민에 대하여, 또 혼혈이며 성노동자에 대한 배제와 혐오가 작동한 사례도 수두룩하다. 우리는 관동대지진 이후 벌어진 일본에서의 조선인 학살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만보산 사건 뒤 빚어진 화교에 대한 집단폭력과 살해에 대해선 외면한다. 한국사회가 여전히 다수와 다른 소수자에 대하여 혐오와 배제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것은 우리 역사가 지난 시간 이처럼 이중적 잣대로써 세상과 사건을 바라봐왔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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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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