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바타 : 불과 재>(2025) 한 장면
20세기 스튜디오
'토루크 막토'에게 어울리는 것은 부족 전체의 역사
본디 <아바타> 시리즈는 기저에 여러 가지 담론이 깃든 영화다. 큰 틀에서는 생태와 문명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생명과 지성의 본질, 자본과 탐욕과 같은 거시 담론은 물론 가족애나 우정, 성장, 용기와 같은 미시 담론을 다루고 있기도 하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그 자신도 대가족의 일원으로 <아바타 2>부터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지만, 아바타엔 아바타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다.
'설리 가족은 성벽이다', '설리 가족은 포기하지 않는다' 같은 낯간지러운 다짐보다는 판도라의 대자연이 낳은 자연 지성과 인간의 탐욕이 빚은 인공 지성의 최종대결을 그려가는 것이 유사한 세계를 살아가는 지구인들에게 좀 더 생각 거리를 던져주는 일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끈끈한 가족애는 '아바타'가 아니어도 설명될 수 있지만 생태와 인간의 대결 같은 장은 '아바타' 시리즈에 최적화되어있으니 말이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도 그 점을 의식했는지, <아바타 : 불과 재>에서 전편의 가족 중심 서사를 다소 축소해 놓았다. 특히 결말에서는 <아바타> 1편의 웅장한 대혈투가 떠오르는 장면들이 반복된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마치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2003) 결말부를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지만 판도라 행성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진풍경들이 맞물려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 된다. 대자연에게 도륙당하는 인간을 보며 공포를 느끼는 게 아니라 도리어 응원하게 되는 일은 과연 <아바타> 시리즈만의 독특한 체험이지 않나.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극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바람 상인' 장면도 주목할 만하다. 판도라 행성 내의 원시 사회가 행성 규모의 교역망을 구축하며 '에이와'가 아닌 방법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인간이 무역과 교류로 문화와 사회를 발전시켜온 과정을 은유할 수 있다는 일련의 암시다. 다시 말해 아바타 내의 담론이 언제든지 더 큰 규모로 확장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담론이 커지면 표현의 스케일이 커지고, 이미지 역시 확장되는 경향이 있다. 고대 제국의 전쟁사를 다루는 영화들처럼 스펙터클을 강조하는 연출을 자연스럽게 내러티브에 녹여낼 수 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 역시 이 장면에 대해 언급하며 후속작에서도 '다양한 부족의 갈등과 교류'라는 역사적 맥락을 취할 것임을 내비친 바 있다.
요즘 영화 문법에서나, 관객들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에 있어 거시 담론을 확장하는 세계관은 트렌드에 역행하는 구석이 있지만, 사실 시대나 유행을 떠나 무엇을 취하느냐엔 정답이 없다. 영화는 잘 어울리는 것을 적재적소에 비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아바타는 '양육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제이크 설리'보다 '토루크 막토로 성장해 나가는 제이크 설리'의 서사나 이미지가 더 잘 맞는다고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잘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라는 의미다.
▲영화 <아바타 : 불과 재>(2025) 한 장면20세기 스튜디오
고로 <아바타 : 불과 재>는 잠깐 망가졌던 시리즈의 본질에 관해 어떤 질문을 던지고 이제 막 판을 깔아놓은 상태라고 할 만하다. 아주 환골탈태를 했다고 보긴 어렵고 엉성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아바타가 추구하는 시각적 충격, 생태학적 감동을 이어나갈 동력은 충분하다고 본다.
아바타 속에서 들여다보고 싶은 인간을 초월한 어떤 가치, 거대한 의지, 그에 걸맞은 이미지들. 우리가 이 영화에 기대하는 것은 그런 가치들이다. 차기작 역시 '아바타 맛'이 잘 우러나는 서사와 이미지로 스크린을 채운다면 영화 팬들의 기대를 조금은 더 만족스럽게 채워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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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 당선 후 이곳저곳에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