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태어나자마자 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제 삶에서 장애를 안 가지고 있었던 적이 없었어요. 학교도 장애인 친구들이랑 다니지 않아서 살면서 성인이 될 때까지 본 장애인 친구가 10명이 안 돼요. 그런데 요즘은 장애인을 정말 많이 봐요. 하루에 5명은 보죠. 여전히 장애인 친구가 많지 않지만요. 그 말은 장애인이 세상에 뛰쳐나오기 시작했다는 거겠죠. 더 많이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어요. 더, 더 많이 나와서 세상을 모두의 것으로 만들면 좋겠어요."
어느덧 인디다큐페스티벌의 빈자리를 메우고 한국 신인 다큐멘터리 창작자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한 반짝다큐페스티발(반다페)이다. 백진이 감독은 내년 4회째를 맞이할 이 단편 다큐영화제 운영위원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제는 감독이란 표현이 제법 익숙해졌을 테다. 첫 작품 <우리가 만든 궤적>이 지난해 3회 반다페에서 상영되며 영화계에 제 존재를 알린 지 벌써 한 해가 흐른 것이다. 그동안 백진이는 작품을 상영한 감독을 넘어 함께 영화제를 만들어가는 영화인이 됐다. 그 당찬 행보가 또 어떤 작품으로 이어질지 기대하는 이도 제법 생겼다. 고백하자면 나 또한 그중 하나다.
<우리가 만든 궤적>은 내가 이 영화제서 본 여러 작품 가운데서도 제법 강한 인상을 남긴 영화다. 첫 회 때 만난 류승진의 <관>, 신나리의 < 8부두 >, 2회째 보았던 김예랑의 <그녀는 왜 사과를 따먹었을까>, 3회째 박슬희의 <웰컴 투 마이 홈>, 김아람의 <박멸의 공존>, 이한별의 <중년구직 분투기>, 최예린의 <숲, 틈>과 함께 백진이의 <우리가 만든 궤적>의 인상을 이따금 떠올리곤 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영화의 '오프닝', 나는 당시 내가 받은 충격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화면 가운데 놓인 어느 카페 몇 대의 키오스크, 화면 왼쪽 바깥에서 들어온 휠체어는 개중 한 대 앞에 멈춘다. 그리고 거기 탄 이가 손을 뻗어 주문을 하려는데, 손이 닿지 않는 것이다. 커피와 차, 디저트 따위를 구분하는 항목이 휠체어에 앉아서는 손에 닿지 않는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개중 아랫것을 건드리는 주인공. 그러나 또 가장 인기 있는 음료는 저 위 높이 매달려 있다. 뇌병변 장애를 가진 백진이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 <우리가 만든 궤적>의 출발이 이렇다(관련 기사 :
상상도 못할 걸요, 휠체어 탄 사람의 불편을).
▲우리가 만든 궤적스틸컷
백진이
체감하는 사회변화, 이제는 영화도 변해야
영화의 오프닝이 가져야 할 미덕이 관객의 정신을 붙드는 것이라면, 그를 위한 주요한 수단이 예상을 깨고 충격을 주는 것이라면 <우리가 만든 궤적>은 훌륭히 그 목적을 달성한다. 적어도 나와 같이 카페의 키오스크가 누군가를 아무렇지 않게 낙오시킬 수 있단 걸 모르고 지나쳤을 이에게 만큼은.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나다니는 거리의 풍경이 누군가를 배제하고 낙오시킬 수 있다. 영화계에 장애를 가진 이를 찾아보기 힘든 것도, 전체 인구 5%에 이르는 장애인을 주변에서 마주하기 어려운 것도 마찬가지. 이와 관련해 이달 10일, 장애를 가진 감독으로 막 날갯짓을 시작한 백진이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제가 가지고 있는 뇌병변 장애만 해도 촬영을 할 수 있는 몸 상태가 되는지를 계속 생각하게 돼요. 저도 처음 이 일을 도전할 때 그게 가장 걱정이 되었고요. 내가 카메라를 떨지 않고 들 수 있는 체력이 되는 걸까? 내가 인물로 등장한 카메라 안에서 필요한 동작을 취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작업을 도와줄 때 피해가 가지 않게 해낼 수 있을까? 그런 걸 계속 생각하다 보니 일을 처음 시작하는 것부터 망설이게 됐어요. 장애라는 신체적 한계가 정신적 한계가 되는 거죠. 그래서 도전을 망설이고 촬영 현장에서 계속 작아지는 거예요. 일을 지속한다는 건 그 한계점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가를 계속 생각하는 것이었죠."
장애를 가진 영화인의 어려움에 대해 묻자 그 자신을 극복하는 일에 대한 답이 돌아왔다. 신체의 장애가 정신적 한계로 이어지고,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하는 저 자신과 부단히 맞서 싸워야 했다는 이야기다. 장애인이 스스로 한계를 정하고 자신을 옭아매기까지 사회가 미친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10년 전만해도 제가 자란 도시에서 번화가에 나가면 저를 무슨 동물원에 동물 보듯이 보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어요. 나이도, 성별도, 인종도 안 가리고요. 그냥 모든 사람들이 다 쳐다봤던 거 같아요. 그래서 친구들이 사람들과 많이 싸우기도 했고요.
근데 요즘은 달라진 걸 느껴요. 쳐다보더라도 휠체어가 특이해서 쳐다보는 정도랄까요. 한국 사회에서 장애가 그다지 이상하거나 눈에 띄는 게 아니란 인지가 되어 있다는 긍정적 신호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인지하고 있다는 것과 어떻게 인식한다는 건 다른 이야기죠.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장애는 민감한 주제예요. 비장애인이 묘사한 장애인의 모습들을 보면 무겁게만 바라본다는 느낌이 들어요. 장애가 희화화되거나 조롱거리가 되면 안 된다는 건 이미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그 너머의 적정선을 찾아야 하는데 아직은 못 찾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우리가 만든 궤적스틸컷
백진이
장애보다 먼저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
장애인은 무력하고 쓸모없다거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 또 극복해야만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건 장애인 스스로의 자기인식을 부정적으로 내면화하도록 이끈다. 이 중 어느 하나가 특정한 시점에 사실에 가깝다 하더라도 언제나 그렇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장애인을 묘사하는 여러 작품이 장애를 고정적이고 확정적으로 다루고는 한다. 그리고 이는 그저 비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가 제 장애를 다루는 방식부터가 그랬던 것 같아요. 사춘기에도 방황을 많이 했어요. 그땐 거의 염세주의자였죠. 제가 제 장애를 온전히 생각해 보게 된 건 정말 얼마 안 된 일이에요. 영화를 촬영하면서부터였죠. 원래는 장애아동의 학교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거든요. 그래서 제 학창 시절을 떠올렸는데, 기분이 너무 안 좋은 게 정말 몇 달을 가더라고요. 그때야 깨달았어요. '아 나부터가 소화가 안됐구나, 나부터 소화를 시켜야겠다' 하고요. 그게 영화가 되었지요.
그제야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기 시작했어요, 제가 좋은 사람들을 만난 영향도 있겠지만, 저를 생각할 때 장애보다는 '진이'라는 사람 자체를 떠올려주더라고요. 전 저라는 사람을 생각하면 장애밖에 안 떠올랐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더 신기했어요. '나만 나를 장애인으로 생각하는구나' 했죠. '나만 나를 미워하는구나' 하는 것도 그때야 알았어요."
백진이 감독에게 영화는 어떤 의미였을까. 무얼 위해 결코 쉽지 않은 영화찍기를 감행해야 했을까. 세상을 향해, 또 자기 자신을 향해서.
"제가 영화로 하고 싶었던 말은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꼭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 다른 하나는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는 거예요. 세상은 확실한 걸 좋아하죠. 그래서 흑백논리로 작동되는 게 많고요. 저도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 난리치던 순간이 있었는데요. 그 난리를 잠시 멈추고 영화로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세상에 드러내니 제 세상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저는 인지적인 문제가 없어서 특수반 수업을 받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른 장애인 친구들이랑 어울리지 않고 통합반에 있게 됐죠. 근데 친구들이랑 있으면 저는 장애인이라서 안 놀아주고 특수반에 가면 자폐나 발달장애를 가진 다른 친구들을 챙긴다고 전 늘 찬밥 신세였어요. '넌 좀 걷는 시늉이라도 하니까 장애인이 아니야'라는 말까지 특수교사 선생님께 들은 때도 있었죠. 근데 비장애인 친구랑 있으면 전 여지없이 장애인이잖아요. 거기에서 오는 괴리감이 너무 견디기 힘들었어요. 나는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라서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다고 생각했죠.
근데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그냥 저는 저예요. 그 인식을 하고 나니 너무 편해졌어요. 장애를 어떠한 대단히 특수한 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태도가 조금이나마 사회 전반에 깔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저를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해요. 저는 사람들이 (자기들과 다른 사람인 것처럼) 쳐다보지 않는 게 너무 감사해요. 그냥 길을 편하게 다닐 수 있고 그런 것부터가 진짜 좋아요."
▲우리가 만든 궤적스틸컷
백진이
장애를 넘어 찍은 영화가 나를 구했다
영화, 백진이 감독이 세상으로 나오기로 결심한 영화찍기가 그 자신을 구했다. 저를 저 자신으로 바라보는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줬고, 그로부터 저 자신을 충실히 들여다보도록 이끌어준 때문이다.
"전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걸 무서워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제 장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늘 무서웠어요. 내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을 해야 할지, 말한다고 그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상대가 힘들어하지는 않을지, 내가 또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닌지, 생각만 계속 하다가 주저할 때가 많았죠.
처음으로 영화를 만드는 거니까 더 무서웠어요. 모르는 사람을 제작 기간 동안 수도 없이 만나야 하잖아요. 보통 여기저기 엘리베이터나 경사로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럼 저는 수도 없이 제가 무서워하는 상황들과 마주해야 해요. 작업하면서 실제로 현장이나 작업실, 회식장소에 모두 계단이 있었거든요. 그럼 저는 고집스럽게 누구한테 업히는 대신 휠체어로 멀리 새 장소를 찾아 가겠다고 했죠. 그럴 때마다 아무도 저에게 업히기를 강요하거나 느리다고 면박을 주거나 아예 빠지라고 하거나 하지 않았어요. 10분이든 30분이든 얼마가 되든지요.
모두가 존중해줬다는 게 중요했어요.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죠. 잊고 싶지 않아요. 내가 나임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과 있다는 것, 그게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큰 위로이자 버팀목이 됐어요. 그래서 작품활동을 하면서 다른 건 불편하지 않았죠. 모두 감사한 기억밖에 없어요."
백진이 감독은 희망을 본다. 과도기를 겪고 있지만 한국사회가 조금씩, 마침내 장애인을 세상 바깥으로 끌어내 맞이할 수 있으리란 믿음이다. 여전히 장애인의 사회진출을 가로막는 요소가 산재해 있고, 가능성을 억누르는 편견과 배제가 작동하지만 말이다. 장애인의 영화계 진출이 앞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묻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답한다.
"네, 당연히요. 저도 했는걸요? 그럼 다 할 수 있는 거겠죠. 그랬으면 좋겠어요.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나 자신의 눈치도 보지 않고서 꿈꾸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제 인생에서도 제 가능성을 제한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제가 그 사람들의 말을 다 들었다면 제가 이렇게 살면서 지금 인터뷰를 할 일도 없겠죠? 안 되는 건 진짜 안 되는 게 아니라 되는 방법을 몰라서 그런 경우가 더 많은 거 같아요. 된다고 알려주면 될 일이에요. 특히 장애인들의 생각보다 세상에는 되는 일이 더 많아요."
▲백진이 감독제3회 반짝다큐페스티발에 참여한 백진이 감독.반짝다큐페스티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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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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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나를 장애인으로 생각했다" 영화감독 백진이의 솔직한 고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