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초 여성 대통령 만들기, 고현정 내세운 '이 작품'

[드라마 보는 아재] 고현정-권상우 주연의 SBS 수목드라마 <대물>

<커맨더 인 치프>, <배틀스타 갤럭티카> 같은 미국 드라마에는 여성 대통령이 종종 등장하지만 실제 미국에서는 한 번도 여성 대통령이 배출된 적이 없다. 미국에서는 지난 2016년 45대 대통령 선거에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아내로도 유명한 힐러리 클린턴이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미국의 역대 첫 여성 대통령이자 부부 대통령을 노렸지만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에 밀리며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가 민주 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를 약 108만 표 차이로 꺾고 제18대 대통령이자 대한민국 헌정사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임 4년째가 되던 2016년10월 최악의 국정 농단 사건이었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2017년3월 파면이 결정됐고 역대 최초로 '파면된 국가 원수'라는 불명예를 썼다.

물론 세계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었던 아시벨 페론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비롯해 멕시코와 스위스, 온두라스, 수리남 등 여성 대통령이 재임 중인 나라도 있지만 여전히 여성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2010년에 방송됐던 고현정, 권상우 주연의 SBS 드라마 <대물>에서는 여성 아나운서가 정치인으로 변신해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당선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대물>은 실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기 2년 전,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였다.
<대물>은 실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기 2년 전,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였다.<대물> 홈페이지

방송국 오가면서 2년 연속 연기대상 수상

1989년 미스코리아 선에 입상한 고현정은 이듬해 KBS 농촌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1991년 MBC의 대작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 인민군 정치군관 한명지를 연기한 고현정은 1992년 SBS의 <두려움 없는 사랑>에 이어 1993년 MBC 주말 드라마 <엄마의 바다>에서 박근형 배우와 김혜자 배우의 장녀 김영서 역을 맡아 스타 배우로 도약했다.

그리고 고현정은 1995년 SBS가 방송국의 사활을 걸고 제작한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카지노 대부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카지노 사업을 물려 받는 윤혜린을 연기하며 '대세스타'로 군림했다. 그렇게 연기로도 인기로도 한창 정점을 찍었던 1995년, 고현정은 결혼과 동시에 연예계 은퇴를 선언하면서 대중들을 놀라게 했다. 짧았지만 화려했던 고현정의 배우 커리어 역시 결혼과 함께 조용히 막을 내리는 듯 했다.

하지만 고현정은 2003년 이혼 후 2005년 SBS 드라마 <봄날>을 통해 10년 만에 연예계에 복귀했고 <여우야 뭐하니>, <히트>에 출연하며 건재를 보여줬다. 그리고 2009년 데뷔 첫 사극이자 악역을 맡으며 화제가 됐던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미실 역을 맡아 시청자들의 극찬을 받았다. 고현정은 <선덕여왕>을 통해 MBC 연기대상 대상과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휩쓸었다.

고현정의 전성기는 2010년에도 계속 이어졌다. SBS 드라마 <대물>에서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는 아나운서 출신 정치인 서혜림을 연기한 고현정은 눈부신 열연을 선보이며 2010년 S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두 번째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고현정은 2013년 복귀작 <여왕의 교실>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2018년에 출연한 <리턴>은 제작진과의 분쟁 끝에 중도 하차하며 시청자들을 실망 시켰다.

그렇게 전성기가 저무는 듯 했던 고현정은 2023년 넷플릭스 드라마 <마스크걸>에서 이한별, 나나와 함께 주인공 김모미를 3인1역으로 맡아 건재한 연기를 보여줬다. 작년에는 갑작스런 건강 악화로 수술을 받으며 차기작 <나미브>의 제작 발표회에 불참했지만 지난 9월에 방송된 SBS 드라마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에서 감옥에서 자신을 닮은 모방 범죄를 목격하는 연쇄살인범 역을 맡아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성장 스토리-러브라인 잘 녹여낸 정치 드라마

 2009년 <선덕여왕>으로 MBC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한 고현정은 2010년 <대물>로 SBS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2009년 <선덕여왕>으로 MBC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한 고현정은 2010년 <대물>로 SBS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했다.SBS 화면 캡처

드라마 <대물>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스포츠 신문을 통해 연재됐던 박인권 작가의 4부작 만화 <대물>중 2부 <제비의 칼>을 원작으로 만든 드라마다. 원작 만화는 검사였던 친형을 잃은 주인공 하류가 인권 변호사 서혜림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세상에 복수한다는 스토리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권상우가 연기한 하도야는 원작 속 두 형제의 캐릭터를 합쳐 놓은 듯한 실질적인 드라마 오리지널 캐릭터에 가깝다.

남성 캐릭터 하도야가 아닌 여성 캐릭터 서혜림을 주인공으로 드라마를 진행 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역시 고현정이라는 배우가 가진 연기력과 존재감 덕분이었다. 고현정은 방송국 아나운서에서 여당 국회의원과 부대변인, 무소속 도지사, 신당 초대 당대표, 원양어선 피랍사건 대통령 특사, 대통령 후보,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평범한 곰탕집 안주인이 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고 다이나믹하게 보여줬다.

사실 <대물>에 앞서 KBS에서는 <추노>를 만든 곽정환PD, 천성일 작가 콤비와 정지훈, 이나영, 다니엘 헤니 등이 출연하는 < 도망자 PLAN.B >가 일주일 먼저 방송을 시작하며 기선 제압에 나섰다. 여기에 <대물>보다 3주 늦게 시작한 김혜수, 황신혜 주연의 MBC 드라마 <즐거운 나의 집>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대물>은 최고 시청률 28.3%를 기록하며 경쟁작들을 멀찍이 따돌렸다(닐슨코리아 시청률 기준).

사실 중년 이상의 남성이 주요 시청층인 정치 드라마는 시청률 경쟁에서 불리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대물>은 정치적인 이야기는 물론이고 서혜림의 성장 과정을 인간적으로 잘 묘사했고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러브라인도 놓치지 않으면서 다양한 시청자들의 지지를 얻었다. 특히 서혜림에게 반지를 내밀며 "이게 세상에서 제일 작은 수갑이야"라는 하도야의 고백은 기존 정치 드라마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대사다.

<대물>은 <뉴하트>를 썼던 황은경 작가의 각본과 <째즈>, <피아노> 등을 만든 오종록PD의 연출로 시작했지만 각본은 5회부터 드라마의 초안을 작성했던 유동윤 작가로, 연출은 7회부터 김철규·조현탁PD로 교체됐다. 드라마에서 PD나 작가가 교체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방영 도중에 PD와 작가가 모두 바뀌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럼에도 <대물>은 흔들리지 않고 종영까지 꾸준히 높은 시청률을 유지했다.

'세차 후 폭우' 밈 만든 분노전문 배우

 <대물>에서 보여준 차인표의 분노 연기는 '세차 후 폭우'라는 밈으로 드라마 종영 후에도 꾸준히 쓰이고 있다.
<대물>에서 보여준 차인표의 분노 연기는 '세차 후 폭우'라는 밈으로 드라마 종영 후에도 꾸준히 쓰이고 있다.SBS 화면 캡처

2003년 <천국의 계단>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린 후 <슬픈 연가>와 <못된 사랑>, <신데렐라 맨>의 시청률이 나란히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슬럼프에 빠지는 듯 했던 권상우는 <대물>의 하도야를 통해 부활에 성공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서혜림과 인연을 가지고 그녀를 남몰래 짝사랑했던 하도야는 서혜림이 정치인으로 성장하고 대통령이 되기까지 큰 공을 세운 후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친 서혜림과 결혼했다.

원작이 있는 드라마들은 각색 과정에서 특정 인물의 비중이 커지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는데 원작 만화에서 비중이 작았던 강태산은 차인표라는 배우를 만나면서 비중이 커진 대표적인 캐릭터다. 집권 여당의 3선 국회의원이자 서혜림을 정계에 입문 시킨 강태산은 서혜림이 신당에서 대표로 취임한 후 정치적 연적이 됐다. 강태산은 차인표 특유의 분노 연기를 만나면서 더욱 입체적인 캐릭터로 변모했다.

지난 11월25일 향년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고 이순재 배우는 <대물>에서 서혜림의 전임 대통령 백성민 역을 맡아 진중한 연기를 보여줬다. 강태산의 정치적 스승이자 하도야의 아버지를 청와대 조리장으로 부르며 하도야와도 인연이 있는 백성민 대통령은 하도야에게 아버지의 곰탕 맛을 재현해 보라는 미션을 줬다(하도야는 그 과정에서 익힌 아버지의 곰탕 비법으로 훗날 곰탕 맛집 사장님이 됐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안정된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 장영남은 <대물>에서 수십 명의 국회의원과 도지사, 지자체장을 당선 시킨 베테랑 정치 컨설턴트이자 서혜림의 참모 왕중기를 연기했다. 왕중기는 "공약은 실천용이 아니라 당선용"이라고 할 만큼 계산적이고 냉철한 인물이지만 서혜림이 정치를 시작하고 국회의원, 도지사, 신당 대표, 대선 후보를 거쳐 대통령이 될 때까지 서혜림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했다.
드라마보는아재 대물 고현정 권상우 차인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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