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 시대, 살기 위해 '여장'한 두 음악가의 사연

[안지훈의 뮤지컬 읽기] 연말연시에 어울리는 쇼 뮤지컬 <슈가>

대공황이 세계를 강타하고, 금주법이 시행되던 1931년 시카고. 사람들은 곳곳에서 마음을 졸인 채 밀주를 즐기고, 거리에선 총성이 울려 퍼진다. 대공황은 음악가들에게도 가혹했다. 베이스를 연주하는 '제리'와 색소폰을 부는 '조'에게 연주 기회를 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당장 생계를 위해 두 남자는 10달러를 받고 악보를 나르는 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악보를 나르던 중 밀주업자 '스패츠'의 살인 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제리와 조는 스패츠 일당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둘은 남자 음악가로 특정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때 여자 음악가들로 구성된 밴드에서 베이시스트와 색소포니스트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제리와 조는 살기 위해 여장을 하고 밴드에 지원한다. 스패츠 일당의 감시를 피하는 동시에 일자리 얻을 수 있는 기회이다.

범죄 조직과 두 남자 간의 추격전, 그리고 밴드에서 '슈가'라는 이름을 가진 사랑스러운 가수를 만나면서 생기는 각종 해프닝을 그린 뮤지컬 <슈가>가 한국에 상륙했다. 마릴린 먼로 주연의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Some Like It Hot)>을 토대로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만들어진 쇼 뮤지컬로, 연말연시를 맞이하여 국내 관객과 첫 만남을 갖고 있다.

 뮤지컬 <슈가> 공연 사진
뮤지컬 <슈가> 공연 사진PR컴퍼니

정통 코미디, 빈 곳을 채우는 퍼포먼스

시대 배경은 암울하고, 제리와 조가 처한 상황도 긴박하다. 하지만 뮤지컬 <슈가>는 범죄 드라마가 아닌 코미디를 자신의 장르로 설정한다. 그리고 정통적인 코미디 문법을 빌린다. 덕분에 새롭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웃음은 확실히 보장한다.

살기 위한 수단으로 여장을 선택하고, 밴드 내에서 정체를 들킬 위기를 수차례 경험한다. 시카고를 떠나 마이애미로 온 밴드를 따라 스패츠 일당도 마이애미에 당도해 제리와 조는 여전히 쫓기는 신세다. 하지만 작품 전반에 긴장감이 흐르기보단 유쾌함이 묻어난다.

여장을 한 두 남자 곁에는 매력적인 가수 슈가가 있다. 제리와 조는 슈가에게 매력을 느끼지만, 정체를 들킬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랑을 고백할 용기는 없다. 조는 잔머리를 굴려 슈가에게 구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조와 슈가의 사랑이 이어지는 동안 제리는 의도치 않게 다른 남자에게 고백을 받는다. 백만장자 노인 '오스굿 필딩'은 제리에게 끊임없이 구애한다.

정통 코미디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빈 부분을 채우는 건 화려한 퍼포먼스다. 작품 속 밴드의 공연이 수시로 펼쳐지고, 제리와 조를 쫓는 스패츠 일당은 탭 댄스를 선보인다. 오케스트라 연주가 배경에 깔리지 않아도 스패츠 일당은 탭 댄스를 통해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낸다. 빠른 탭 댄스 템포에 맞춰 쏟아내는 대사에도 유머와 패러디가 가득하다.

 뮤지컬 <슈가> 공연 사진
뮤지컬 <슈가> 공연 사진PR컴퍼니

자력으로 구원받을 수 없는 이들의 코믹한 생존기

시카고는 추운 땅이다. 또 제리와 조가 살아남기 벅찬 도시다. 그렇게 공간적 배경은 마이애미로 옮겨진다. 마이애미는 시카고와 대비되는 곳으로, 따뜻하고 일자리도 있으며 범죄 조직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시카고를 떠날 당시만 해도 제리와 조는 마이애미를 '기회의 땅'처럼 여겼을 것이다.

물론 상황이 개선되긴 했어도 마이애미가 제리와 조를 온전히 지켜주지는 못한다. 가까스로 얻은 일자리는 정체가 밝혀질 경우 잃게 된다. 제리는 '다프네'라는 이름으로, 조는 '조세핀'이라는 이름으로 정체를 속인 채 살아가야 한다. 또 스패츠 일당도 마이애미에 도착해 제리와 조를 추적한다.

제리와 조는 더 이상 자력으로 상황을 개선하기 힘들다. 정통적인 코미디에는 위기에 빠진 주인공을 구원해주는 영웅이 있는 법이다. <슈가>에는 우스꽝스럽지만 순수한 사랑을 갈망하는 백만장자 노인 오스굿 필딩이 있다. 제리와 조, 그리고 슈가가 위기를 모면하는 데에는 비대칭적인 능력을 가진 오스굿 필딩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뮤지컬 <슈가>는 자력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었던 이들의 코믹한 생존기로 읽힌다. 살아남기 벅찬 시카고에서 희망이 있는 마이애미로 향했지만, 결국 마이애미에서도 희망을 누리지 못한 채 새로운 희망을 찾아 떠나야 하는 공간적 은유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편 <슈가>는 2026년 2월 22일까지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슈가 역에 솔라·양서윤·유연정, 조 역에 엄기준·이홍기·남우현·정택운, 제리 역에 김법래·김형묵·송원근이 출연한다.

 뮤지컬 <슈가> 공연 사진
뮤지컬 <슈가> 공연 사진PR컴퍼니
공연 뮤지컬 슈가 한전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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