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불은 양면적이다.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파괴적인 힘을 가졌지만, 동시에 어둠을 밝히고 추위를 녹이는 온기가 되기도 한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시리즈는 태생적으로 조화와 자연스러움을 아야기해 왔다. 1편부터 이어온 자연의 섭리와, 숲과 바다를 짓밟으며 그 조화를 깨뜨리려는 인간의 잔혹함은 이번 3편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무자비하게 자연을 초토화하는 인간의 탐욕은 관객으로 하여금 깊은 분노를 자아내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는 그 분노 속에 머무르지 않는다. 파괴자들 사이에서도 조화를 꿈꾸는 좋은 인간들이 존재하며, 그들 역시 혼란을 겪고 있다는 점을 조명한다. 이번 작품의 부제인 '불과 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같은 분노와 전쟁이 지나간 자리, 남겨진 재와 같은 상실감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다시 심어야 할까. 영화는 이 질문을 던지며, 각기 다른 위치에서 흔들리는 인물들의 내면을 파고든다.
[첫 번째 감정] 로아크의 고독한 죄책감
▲영화 <아바타: 불과 재> 장면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형 네테이얌(제이미 플래터스)을 잃은 상실감은 둘째 아들 로아크(브리튼 달튼)를 옭아매는 가장 큰 족쇄다. 형을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는 여전히 10대이고,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충동적인 청소년이다. 그래서 관객의 입장에서 로아크의 돌발 행동들은 때로 답답함을 유발하기도 한다. 하지 말라는 짓을 골라서 하고, 위험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미운 오리 새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위태로움은 그가 아직 성장 가능성이 무한한 존재임을 증명한다.
로아크에게서 발견되는 가장 빛나는 지점은 바로 듣는 능력이다. 기성세대나 다른 어른들이 무시해버리는 자연의 미세한 목소리를 그는 감지한다. 전편에서 툴쿤 파야칸과 교감했듯, 이번에도 그는 남들이 듣지 못하는 숲과 불의 언어를 이해하려 애쓴다. 이것은 단순한 능력이 아니다. 어쩌면 아버지 제이크 설리가 가지고 있던,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판도라의 영혼과 조화를 이룰 줄 알았던 그 선함과 감수성을 가장 짙게 물려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로아크는 아버지에게 가장 격렬하게 반항하지만, 그 누구보다 아버지의 발자취를 닮아가고 있다. 제이크가 그랬듯, 로아크 역시 규율보다는 자신의 신념을 믿고, 무모해 보일지라도 옳다고 믿는 길을 향해 몸을 던진다. 지금 겪는 그의 방황과 고독은 그가 제이크를 넘어선 또 다른 영웅으로 거듭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뜨거운 성장통인 셈이다.
[두 번째 감정] 쿼리치의 흔들리는 정체성
▲영화 <아바타: 불과 재> 장면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가장 흥미로운 변화를 겪는 인물은 단연 쿼리치(스티븐 랭)다. 1편에서 보여줬던 절대악의 위세는 여전하지만, 3편에 이르러 그는 이전보다 훨씬 유한 모습을 보인다. 나비족의 육체를 입고 생활하면서, 그의 내면에는 군인의 기억과 판도라의 본능이 충돌하며 끊임없는 고민과 망설임이 피어오른다. 단순히 임무를 수행하는 기계 같았던 그에게 감정이라는 균열이 생긴 것이다. 이야기가 계속된다면, 쿼리치 역시 결국 인간성을 버리고 완전한 판도라의 부족으로 동화되지 않을까 하는 묘한 기대감마저 들게 한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아들 스파이더(잭 챔피언)가 있다. 제이크의 가족들이 서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모습, 그리고 자신을 부정하면서도 끌어당기는 스파이더의 존재는 쿼리치에게 가족이라는 결핍을 자극한다. 그가 제이크처럼 온전한 영웅이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누군가의 아버지로서 혹은 어딘가에 소속된 존재로서 그 따뜻한 울타리 안에 들어가고 싶은 욕망을 품게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번 영화에서 그는 재의 부족을 이끄는 바랑(우나 채플린)이라는 새로운 존재와 만난다.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성향의 재의 부족은 쿼리치와 닮아있는 구석이 많다. 그래서 두 인물이 더 강력하게 결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연 그가 그들과 동화되어 파괴의 길을 걸을지, 아니면 스파이더를 통해 느낀 감정의 씨앗을 틔워 독자적인 노선을 걸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흔들리는 악당은 확신에 찬 악당보다 훨씬 더 입체적이고 매력적이라는 사실이다.
[세 번째 감정] 제이크의 중년 가장으로서의 고뇌
▲영화 <아바타: 불과 재> 장면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이크 설리(샘 워싱턴)는 여전히 이 거대한 세계관의 중심축이다. 인긴에서 나비족이 되었고, 이방인에서 영웅이 되었던 그는 조화와 수용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가족이 늘어나고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지면서, 그의 강철 같던 의지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특히 인간도 나비족도 아닌 양아들 스파이더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는 복잡한 감정이 서려 있다. 이는 마치 현실에서 외국으로 이민 간 가장이, 문화적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자녀를 보며 겪는 딜레마와 겹쳐 보인다.
이번 영화에서 제이크는 유독 약해 보인다. 전작들처럼 앞장서서 적을 쓸어버리는 모습보다는, 아내 네이티리와 갈등하고 쿼리치를 설득하려 애쓰는 등 타협적인 태도를 취한다. 누군가는 이를 답답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이는 제이크가 나이 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진짜 가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녀들의 안전과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나의 신념을 관철하는 것보다 내 아이가 오늘 밤 무사히 잠드는 것이 더 중요한, 중년의 고뇌가 그의 축 처진 어깨와 깊어진 주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쿼리치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부성애를 발견하고 그를 설득하려는 장면이다. 적에게조차 공감과 연민을 느끼는 제이크의 모습은 그가 육체적으로는 약해졌을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훨씬 더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더 이상 전쟁 영웅이 아니라, 상처 입은 가족을 끌어안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는 우리 시대의 모든 아버지들을 대변한다.
재가 된 마음 위에 다시 피어나는 생명
냉정하게 말해 <아바타: 불과 재> 속 캐릭터들의 행동은 완벽하지 않다. 제이크의 가족들은 몇 번이나 인질로 잡히며 위기를 자초하고, 반복되는 구출과 탈출의 구조는 관객들의 속을 터지게 만들기도 한다. 1, 2편에서 봐왔던 서사 구조가 반복된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여전히 호소력을 가지는 이유는, 이 답답한 과정들이 캐릭터들이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도기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는 모든 인물이 각자의 갈림길에서 치열하게 흔들리는, 가장 인간적인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이러한 서사의 빈틈을 꽉 채워주는 것은 역시나 제임스 카메론의 압도적인 연출력과 배우들의 명연기다. 샘 워싱턴은 고뇌하는 가장의 무게를 묵직하게 표현했고, 조 샐다나의 모성애 연기는 스크린을 뚫고 나올 듯 강렬하다. 스티븐 랭과 시고니 위버 역시 대체 불가능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반드시 극장에서, 그것도 3D로 관람해야 한다. 단순히 화려한 볼거리를 넘어서, 재가 흩날리는 공기의 질감과 불길의 뜨거움까지 체험하게 만드는 3D 효과는 관객을 판도라 행성 한복판에 데려다 놓는다.
이전 시리즈에 비해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작품임은 분명하다. 사이다 같은 해결보다는 고구마 같은 갈등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잿더미가 되어야만 비로소 새로운 싹이 틔울 수 있듯, 이 영화는 다음 이야기를 위한 거름이 되기에 충분하다. 화려한 액션 뒤에 숨겨진 인물들의 처절한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들의 찌질함마저 사랑하게 될 것이다.
결국 <아바타: 불과 재>는 상처 입은 관계에 대한 거대한 은유다. 불타버린 숲에서도 생명이 다시 자라나듯, 서로 할퀴고 상처 입힌 마음 위에도 언젠가 이해와 용서라는 꽃이 피어날 것임을 영화는 묵묵히 보여준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잿빛으로 변해버린 당신에게, 이 영화가 전하는 뜨겁고도 서늘한 위로가 닿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아바타: 불과 재> 관람객은 300만이 넘었다. 글로벌 수익은 5천 억이 넘었다. 비록 과거 시리즈보다 뛰어난 수준은 아니지만, 여전히 강한 흥행세를 보이고 있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 또 다시 천만 관객을 넘길 수 있을지는, 연말을 지나면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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