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는 이가 나와 같다고 가정해보겠다. 나는 이제 막 40줄에 접어든 남성으로, 서울에서 태어나 지금도 서울에 살고 있다. 대학교까지 교육을 받았고, 군복무 시절을 포함하여 서로 다른 다섯 개의 직업을 가져보았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일을 즐기다가 스무 살쯤부터 관련한 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이곳에 영화평과 서평을 싣는 것도 그중 하나다.
이곳에선 평범해 보이는 특징들일 수 있겠다. 그러나 몇 가지 조건만 바꿔보자면 아주 특이한 일이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내가 한국이 아니라 저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항구도시 더반에 있다면 말이다. 항해사로 일할 적 더반에서 하루를 보낸 적이 있었는데, 도시 이곳저곳을 오가는 동안 한국인은커녕 단 한 명의 동양인도 보지 못하였다. 바로 그런 곳에서 누군가가 나를 제 지인에게 소개한다고 가정해 보자는 말이다. "아 걔? 동양인이야"
이런 소개를 살며 몇 번쯤 보고 겪기도 했다. 마치 우리 중 누가 우리 가운데 누구에게 외국인이나 이주민을 소개하듯이. "아 걔? 동남아 사람이야"라거나 "흑인이야"하는. 그것이 인종차별적 사고이고, 누군가는 그를 인종차별로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긴다. 내가 겪은 적잖은 나라에서 이는 명백한 인종차별로 받아들여진다.
▲안보영 프로젝트스틸컷
노영빈
인간에 앞서 장애를 꺼내는 건 무례함일까
사실 적시일 뿐이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잘생기고 못생긴, 똑똑하고 멍청한, 부자고 가난한, 선하고 악한 것과 같은 특징일 뿐이라고. 그러나 한 가지 특징을 빼내어 한 사람의 다양한 특성 앞에 세우는 일이 동시에 다른 특징을 지우기도 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혹여 그 특징이 역사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차별과 배제, 혐오 등 부정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도 고려해야 하겠다. 그리하여 그저 사실을 거론할 뿐임에도 인종을 한 사람의 주된 특징으로 거론하는 일을 지극히 무례하다고 여기는 문화권이 많은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는 어떨까? 인종이 아니라 장애를 한 인간의 가장 주된 특징으로 끄집어내는 일, 그런 일은 과연 마땅한 일일까?
<안보영 프로젝트>는 내가 올해 여러 영화제를 다니며 만난 수많은 작품 가운데서 손꼽을 만큼 특별한 영화였다.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각장애인과 마찬가지의 환경에서 영화를 보도록 전환적 실험을 감행한다는 것이 자못 인상적이었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눈을 뜨고 보았다 했고, 또 누구는 눈을 감고 보았다고 했다. 나는 눈을 떴다가 감았다가 다시 떴다가 감고서 보았다. 그 모두가 이 영화를 감상하는 방법이었는데, 백번 청각장애인의 영화 보는 법에 대해 듣는 것보다 이 한 번 경험이 더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안보영 프로젝트스틸컷
노영빈
빠지지 않는 이동권 언급, 그 중요성에 대하여
이 독특한 영화의 감독 노영빈을 지난달 20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2016년 제2회 신한은행 따뜻한 29초영화제 청소년부 대상을 받으며 영화작업을 시작한 그는 동의대학교 영화학과에 재학 중인 지금까지 벌써 다섯 편의 독립 단편영화를 연출하며 재능을 가다듬고 있다. <안보영 프로젝트>는 그 필모그래피 가운데 단연 주목할 작품으로, 제42회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오퍼레이션키노 우수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실제 시각장애인인 박안나 배우를 캐스팅해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시각장애를 돌아보도록 하는 작품을 빚어낸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자세가 인상적이다. 그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을까.
"(고민이 된 건) 자칫하면 장애를 도구로 이용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한 명의 캐릭터로 인해 같은 증상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일반화되거나 희화화될 수 있단 걸 알기에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실적으로도 장애인과 함께 촬영하며 신경 쓸 지점이 많았습니다. 단순히 어딘가로 이동하는 것만 해도 활동지원사를 동원해야 할지부터 판단해야 하고, 만약 혼자 이동한다면 '자비콜'과 같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했어요. 배차를 기다리는 시간도 적지 않게 소요됩니다. 이런 문제가 장애인이 영화현장에서 배제되는 문제를 만들지 않을까요?"
지난 <마루와 내 친구의 결혼식>의 이현빈 감독, 김경민 배우의 인터뷰에서도 수차례 언급된 이동권 문제가 또 한 번 지적됐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등 장애인 단체가 주된 투쟁으로 이동권 문제를 두고 있는 이유도 이와 연결돼 있을 테다. 장애가 있는 이들을 사회와 단절토록 하는 데 현실적이며 때로는 결정적 영향을 미쳐서다.
"장애인과 접할 기회가 없어 편견이 있던 시절의 저는 장애를 다루는 건 매 순간 어려움의 연속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영화를 만들게 되면서 결국 모든 작품이 어떤 소재든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이고 장애도 다른 문제와 다르지 않은 해결해야 할 지점 중에 하나일 뿐이란 거였어요. 장애가 있는 배우를 장애인이라고만 인식하는 태도가 그들을 현장에서 배제하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먼저 지레 겁먹고 어려워하며 멀리하게 되는 거죠. 막상 부딪쳐 보면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이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말이에요."
단절과 고립은 배제와 오해, 심지어 혐오로 이어진다. 장애가 있는 배우가 실제로는 충분한 자질이며 역량을 가졌더라도 판단하는 이에게 내재된 장애란 특성에 대한 인식이 모든 것을 뒤덮어 다른 요소를 고려치 않게 된다. 발음이 조금 불명확하다거나 표정이 다소 경직됐다거나 하는 특징은 다른 요소를 함께 고려할 여지를 두면서도 장애에 대해서는 절대적 특징으로 이해하는 태도가 얼마나 흔한가를 굳이 영화판이 아니더라도 쉽게 깨달을 수 있지 않나. 노영빈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안보영 프로젝트스틸컷
노영빈
장애만 부각해선 안 되는 이유
노영빈 감독은 영화가 장애를 다루는 태도가 부정적 인식을 강화한다고 말한다.
"작품 안에서 장애를 도구화하는 모습이 너무 많아요. 시각장애를 공포스러운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처럼 장애로 인해 드러나는 행동을 1차원적으로 활용하고 심지어 희화화하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발견합니다. (상대방이) 장애를 가진 줄 알았는데 사실은 아니었다거나 해서 안도하는 설정들도 장애를 가진 입장에선 배려받지도 존중받지도 못한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또 장애를 가진 캐릭터라고 해서 장애만 부각하는 건 정말 아쉬워요. 장애는 그 인물의 아주 많은 특징 중 하나일 뿐인데 그것만 강조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평생 고민해도 정의하기 힘든 게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너무 쉽게 틀 안에 가두는 건데 장애인에 대해서만 유독 그런 태도에 관대하다고 느낍니다. 장애를 한 인물의 특징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도구화하거나 그 특징만 부각시키는 건 창작자 스스로부터 지양해야 합니다."
그런 작품이 너무나 많다. '씨네만세'가 수차례에 걸쳐 다룬 바 있는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 시리즈 속 청각장애인 캐릭터나 <맨 인 더 다크> 속 시각장애인처럼 장애를 장르적 도구로 활용한 사례가 떠오른다. 장애가 제약이며 부정적 특징이라 할지라도 별다른 고민 없이 그를 오로지 속박과 무력감의 상징으로 쓰는 경우는 또 어떠한가. 장애가 사라지는 것이 작품 가운데 복으로 작용한다면, 또 벌로써 장애를 내리는 설정을 두고 있다면, 그런 작품을 대하는 장애를 가진 이의 마음은 어떨까. 장애가 없는 인식에는 영향이 없을까.
▲안보영 프로젝트포스터노영빈
장애를 다루는 무감각한 태도
이 시대 한국에서 제작되는 작품 중에서도 장애를 이와 같이 활용하는 작품이 여럿이다. 그럴수록 더욱 주목해 마땅한 건 전과 다른 시각, 표현을 시도하는 몇몇 작품이다.
"여전히 체감하는 변화가 많지는 않지만 2022년 방영했던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실제 발달장애가 있는 배우가 직접 연기를 했던 건 인상적이었어요. 한국 영화계에서도 이러한 캐스팅이 더 활발해지면 좋겠습니다.
동시에 장애인들이 영화 관람에도 더 제약 없이 다가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선 시각이나 청각 장애인들이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드는 시간을 다른 이들이 기다려줄 수 있는 인내와 배려가 필요합니다. 미국은 콘텐츠를 제작할 때부터 배리어프리 버전을 함께 제작하게 되어 있다고 아는데 한국에서도 도입되면 좋겠어요."
올해 제작된 장애를 다룬 상업영화는 줄줄이 비장애인을 주요 장애인 배역에 캐스팅했다. <얼굴>과 <달팽이 농구단>과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처음부터 장애인 캐스팅은 고려되지 않았다. 한국영화가 전성기를 맞은 21세기 초부터 언제나 그래왔다.
<오아시스>의 문소리, <말아톤>의 조승우처럼 전설이 된 배역들 뒤로 비장애인 배우가 장애를 맡는 일의 문제를, 영화계가 장애를 말하는 작품에서조차 장애를 배제하는 현실을 지적하는 이가 없었다. 이제라도 그를 말해야 하는 이유다. 장애를 새롭게 대하는 노영빈 감독의 시도들, <안보영 프로젝트>와 차기작 <살아, 간다>가 더 많은 주목 받길 고대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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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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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만 앞세워 말하지 않는 것의 당연함, 이 감독의 연출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