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매체, 또 창작물에도 지켜야 할 윤리가 있다. 그 윤리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
한때 영화 속에 등장하는 동물을 죽이는 건 아무렇지 않은 일이었다. 식물이며 곤충, 새, 닭과 돼지, 소와 개를 죽이는 장면이 스스럼없이 등장한 때가 길었다. 현실세계에서도 얼마든지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이유로, 현실을 반영하고 모방하는 연출의 영역에서도 살생이 아무렇지 않게 이뤄졌다.
한국에서 지난 2022년 일었던 사극에서 말을 넘어뜨리는 연출이 불러온 논란도 그 연장선에 있다. 더 현실적이고 매력적인 영상을 얻기 위해 살아 있는 동물에게 무리한 동작을 하도록 하고, 그 결과로 큰 부상이나 죽음을 불러오는 사례가 지속됐단 사실이 대중 앞에 알려진 것이다. 한국보다 앞서 할리우드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먼저 있었다. 관련 규정이 미비하던 2013년 <호빗> 촬영과정에서 말과 염소 등 동물 27마리가 죽은 사실이 확인됐다거나 명작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도 출연한 호랑이가 거의 익사위기에 놓일 때까지 촬영을 감행했다는 얘기가 폭로된 게 대표적이다. 이로부터 관련 단체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하는 업계가 그 기준을 받아들여 불필요한 동물 살상을 막는 모범적 변화가 이뤄져왔다.
▲덱스터스틸컷
쇼타임
선배 연쇄 살인마 뒤쫓는 연쇄 살인범
미국 케이블TV 드라마 명가 중 하나로 불리는 '쇼타임'의 대표작은 <덱스터>다. 지난 2006년부터 최근까지 본 시즌과 리부트까지 모두 11개 시즌이 제작된 명작으로, 12번째 시즌이라 할 수 있는 '레저렉션' 시즌2가 내년 공개를 앞두고 있다. 'HBO'와 함께 유료 케이블 드라마 시장을 양분하며, 양질의 드라마는 유료 시청자를 충분히 모을 수 있음을 증명한 성공례다. 특히 폭력적이고 잔인하거나 야하고 파격적인 소재를 능란하게 활용하는 쇼타임의 작품군은 한국에 비해 표현의 자유가 법과 문화 양면에서 폭넓게 유지되는 미국의 문화계를 보여주는 사례이자 충성도 높은 시청자가 채널 구독을 유지하도록 이끈 결정적 요인이다.
주지하다시피 <덱스터>는 범죄자, 그중에서도 살인자를 주로 처단하는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이야기다. 주인공 덱스터 모건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이로, 형사인 해리에게 입양된 뒤 자라서 미국 마이애미 경찰청 최고의 혈흔분석가이자 실력 있는 법의학자가 되었다. 그런 그에게 비밀 한 가지가 자리하고 있는데, 그게 바로 덱스터 자신이 연쇄살인마란 사실이다. 어릴 적부터 사이코패스적 성향에다 살인충동을 드러낸 그를 해리는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대신 걸리지 않고 엄격한 규칙에 따라 대상을 정해 살인하도록 훈련한 것이다. 유능한 형사였던 해리의 교육은 그렇게 살인마 덱스터를 빚어냈다.
<덱스터> 시즌4는 시리즈 전체에서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이야기는 저보다 훨씬 먼저 연쇄살인을 시작한 삼위일체 살인마를 쫓는 덱스터의 이야기다. 지난 시즌2에서 활약한 FBI 요원 프랭크 런디(키스 캐러딘 분)가 은퇴 뒤 마이애미로 돌아와 현업 때 잡지 못한 삼위일체 살인마를 쫓으며 덱스터를 긴장케 한다. 그러나 수사 중 런디가 총에 맞아 죽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와 내연 관계였던 덱스터의 동생 데브라(제니퍼 카펜터 분)까지 부상을 당한다. 분노한 덱스터는 삼위일체 살인마를 더욱 가열차게 뒤쫓는다.
▲덱스터스틸컷
쇼타임
나올 때마다 벗는 배우, 아무 문제 없는 걸까?
시즌4는 덱스터가 삼위일체 살인마를 쫓는 이야기를 중심 얼개로 몇 가지 보조적 줄기를 가동한다. 그중 하나를 책임지는 게 지역 신문기자 크리스틴 힐(코트니 포드 분)로, 미모를 앞세워 마이애미 강력반 형사들에게서 뉴스거리를 빼내는 영악한 인물이다. 이 시즌에서 크리스틴에게 주로 정보를 제공하는 건 데브라의 파트너인 형사 퀸(데스몬드 해링턴 분)으로, 그녀를 경계하면서도 그 매력에 함락돼 관계를 끊지 못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흥미로운 건 바로 그를 표현하는 드라마의 태도에 있다. 앞선 시즌들에서도 수많은 베드신을 연출했던 드라마다. 첫 시즌에선 데브라와 아이스트럭 살인마의 관계를, 두 번째 시즌에선 런디와 데브라, 또 덱스터와 라일라가 관계 맺는 장면을 수차례 연출했다. 이들만이 아니라 드라마는 여러 주조연 인물들이 저마다의 상황에 따라 성행위에 이르는 모습을 그려낸다. 그러나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쇼타임 채널 드라마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절제된 연출을 보여주곤 했었다. 적어도 시즌4 이전까지는.
시즌4에서 크리스틴은 수차례에 걸쳐 상반신을 모두 노출하고 등장한다. 앞서 라일라를 연기한 제이미 머레이도 그런 경우가 몇 차례 있었으나 크리스틴을 연기한 코트니 포드는 거의 모든 베드신에서 상반신 노출을 카메라를 전면에 두고 노골적으로 감행한다. 이는 아예 배우 캐스팅부터 노출을 전제로 접근하고 계약한 결과인데, 시청률 상의 명확한 이득이며 배우의 동의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연출이 마땅한 것인가에 이야기할 밖에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같은 노출신들이 서사적 전개와는 거의 무관하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덱스터스틸컷
쇼타임
효과는 분명하지만 서사에는 불필요한
이 작품을 통해 사실상 배우인생의 전기를 마련한 코트니 포드조차 약간의 불편감을 언급한 적이 있다. 코트니 포드는 미국 영화전문지 < Collider >와의 인터뷰에서 "당황스런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편안하기만 한 건 아니다. 촬영할 때는 노출이 없는 척 생각하고 해야만 한다(I have that feeling of, "Oh, my god!" I'm not the most comfortable with it, but I have to put it out of my mind and pretend it's not happening)"고 언급했던 것. 그와 같은 노출로부터 "매우 취약해진 기분이 들기도 한다(It makes you feel very vulnerable)"고 말한 코트니 포드이지만, 이 시즌에서의 선택은 빛 든 적 없던 그녀의 필모그래피에서 기적적 변화를 일으켰다. 많은 무명 배우들이 캐스팅 전제로 노출을 요구하는 작품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우리는 생각해봐야 한다. <덱스터> 시즌4가 코트니 포드의 상반신 탈의를 보여주는 모든(앞서 언급한 제이미 머레이의 몇몇 노출은 드라마상 필요했다고 이해할 여지가 있다) 장면이 드라마상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말이다. 주변 인물일 뿐인 킨이 매력적인 여기자에게 빠졌다는 사실은 그저 그들의 대화나 데이트, 또 한 번의 제한된 베드신으로 충분히 표현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작품은 그 이상을 노골적으로 연출했고 극중에선 불필요했으나 순간 시청률에선 분명하고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냈다. 그렇다면 그건 마땅한 것일까.
요컨대 코트니 포드의 대다수 노출은 서사를 위해 불필요한, 오히려 사족에 가까워서 이야기를 늘어지게 하는 요소다. 그러나 해당 드라마의 주된 시청층인 성인 남성에겐 대단히 매력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노출은 서사를 전개하는 수단이 아닌 자극이자 구경거리로 쓰일 뿐이다. 긴장을 풀기 위한 농담이나 액션영화에서 군더더기로 등장하는 피와 죽음이 그러하듯.
▲덱스터포스터쇼타임
윤리적 논의의 지점이 존재한다는 사실
중요한 건 필수가 아닌 부수적 요소란 점에 있다. 필수가 아닌 부수적 요소라면 효과에 우선하여 윤리적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를 돌아봐야 한다. 노출신이 담고 있는 윤리적 문제는 없을까. 그저 연출상의 게으름이며 말초적 자극이 불러오는 단기적 효과에 기대는 안이함 이상의 문제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코트니 포드는 그저 약간의 불편을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를 벗어난 수많은 사례, 특히 출연 배우에게 기적적 전기를 마련해주지 못하여 도리어 솔직한 응답을 얻어낸 경우엔 전혀 다른 답을 얻고는 한다. 더 나쁜 경우엔 촬영과정에서 노출을 감행하는 배우를 배려하지 못하고 트라우마를 안기는 사례도 있다.
'전라노출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에 울면서 촬영을 감행했다는 <왕좌의 게임>의 에밀리아 클라크 사례는 수많은 비슷한 경우의 대표주자라 할 만하다. 에밀리아 클라크 만큼 인기를 얻지 못한 이들은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잡지 못한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성년자이던 올리비아 핫세가 <로미오와 줄리엣> 촬영 당시 노출을 강요받았던 사례, 스타가 아닌 조연 배우가 과도한 노출을 감행하는 수많은 작품들이 하나같이 그렇다. 개중 정말로 노출이 필요한 경우가 몇이나 되는가. 배우가 현장에서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하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등 새로운 직역을 두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되기도 했으나 반영되는 경우는 지극히 일부일 뿐이다.
무엇보다 창작단계에서 노출이 누군가의 존엄을 훼손하거나 적어도 위협하고 자아가 취약한 기분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인식을 보다 무겁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더는 더 좋은 장면을 위해 생명을 해하지 않는 세상이다. 이제는 남성 관객을 자극하는 효과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하거나 과다한 노출은 구분하고 포기할 수 있는 세상이 와야 하지 않을까. 필요한 노출과 불필요한 노출의 명확한 구분은 고단하고 어쩌면 영영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수록 인간은 고민하는 만큼 더 윤리적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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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