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티넨탈 '25스틸컷
M&M 인터내셔널
이는 또 다시 전에 다른 이와 나눈 다른 대화와 맞닿는다. 오르숄라의 제자였던 프레드(아도니스 탄타 분)와 만난 어느 날, 그가 그녀에게 영상 하나를 보여준다. 우크라이나가 날린 드론에 피격된 뒤 수류탄을 터뜨린 러시아 병사의 모습이다. 프레드는 드론에게 당하게 되면 고통스럽게 죽거나 장애를 얻게 되는 탓으로, 병사들이 드론에게 발각되면 아예 수류탄을 머리 가까이 준비하곤 한다고 전한다. 실제로 그가 보여준 영상엔 드론의 공격을 받고 몇 초 뒤 수류탄이 터지는 모습이 담겨 있다. 그녀가 끔찍하다 말하자 프레드는 학살자인 러시아 병사인데 뭐가 어떠냐고 응수한다.
병사는 어찌할 수 없는 공격과 마주해, 아마도 저를 극도의 고통으로 내몰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스스로 죽기를 선택한다. 수류탄을 제 머리 앞에서 터뜨려버리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노숙자의 죽음을 떠올린다.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에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아니, 그것이 저와 완전히 단절된 저 멀리 TV나 영상 속 무엇일 때만 관심을 보인다. 그 관심의 대가가 충분히 선택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이기 때문일 테다. 영화 속 노숙자에게 지폐를 건네는 이들은 제 삶 가운데로 그를 끌어들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노숙자가 저를 고용해달라고 청하지만 그저 지폐를 건네고 빨리 보내기를 선택할 뿐이다.
뿐인가. 오르숄라와 만난 친구는 고통을 토로하는 그녀에게 제 집 앞 주차장에 자리 잡고 사는 노숙자에 대해 말한다. 그가 그곳에 수시로 똥을 싸서 그 냄새 때문에 창문을 열 수 없을 정도라고. 그가 안 되었기는 하지만 그 냄새를 감당할 수 없어 차라리 죽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고. 그러나 그 겨울을 노숙자는 어찌어찌 견뎌냈다고 했다. 난방비를 아끼려 17도에 맞춰놓은 제 집도 추운 데, 영하 17도인 바깥에서 어찌 그를 견디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라며 말이다. 그를 쫓아내고픈 마음과 그런 제 마음에 가책을 느끼는 마음이 어수선하게 섞인 채로 그녀는 지난 겨울 그를 경찰에 거듭 신고했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사라졌던 그가 며칠 전 돌아왔다고. 다시 그 똥냄새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한 사람들, 그리고 나
그렇게 말하던 그녀가 제가 후원하고 있는 빈민단체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다분히 블랙코미디적이다. 루마니아의 가난을 구제하는 단체에 매달 꾸준히 돈을 보내는 그녀가 오르숄라에게도 후원을 권한다. 극심한 빈곤에 놓인 아이들이 이 나라에 여전히 있다며. 오르숄라와 그 친구가 아무렇지 않게 두 대화를 오가는 동안, 프레임 밖에서 그 대화를 보고 있는 관객은 자연히 죽은 노숙자와 쫓겨난 노숙자, 그리고 그들의 후원을 받는 스마트폰 화면 속 가난한 이들의 차이를 따져보게 된다.
< 콘티넨탈 '25 >는 인간의 위선을 다분히 노골적인 방식으로 드러낸다. 오르숄라가 친구에 이어 만난 엄마는 오르숄라와 마찬가지로 헝가리 출신이다. 그녀는 루마니아가 트란실바니아를 망치고 있다며 분개하는데, 오르숄라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을 지지하는 헝가리의 독재자를 맹렬히 비판하며 맞선다. 엄마는 오르숄라에게 '루마니아는 제가 가꿀 수도 없는 것을 가져간다'고 비난하는데, 막상 그들이 대화하는 탁자와 뒤 선반엔 아프리카 유물 모형들과 잠비아 국기와 국명이 인쇄된 시계가 올려져 있는 것이다.
앞서 정교회 신부는 오르숄라와 대화하는 동안 저를 자꾸만 따라오는, 아마도 아이가 조종하고 있을 장난감 자동차에 심하게 짜증을 낸다. 그러다가 지나가는 행인과 시비까지 붙고 마는데, 좀처럼 물러서려 들지 않는다. 사랑과 용서를 말한 예수를 섬기는 이로서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싶을 만큼 민망한 일인데도, 그는 조금도 부끄러운 기색이 없다.
어디 개인만이 위선자일까. 국가며 사회 또한 사실을 왜곡하고 합리화하곤 한다. 앞선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국가적 위선이 그대로 드러난다. 루마니아 사람인 그녀는 헝가리계인 오르숄라를 볼 때마다 가책을 느낀다고 말한다. 저들이 사는 트란실바니아가 본래 루마니아의 땅이었다고 말하지만, 이곳의 오래된 건축물들이 죄다 헝가리 전통양식으로 지어지지 않았느냐는 것. 심지어는 거리에 선 동상조차 헝가리 인물들이 태반인데도 루마니아는 이곳이 본래 루마니아, 즉 과거 로마의 것이었다고 말한다.
위선을 겨냥하는 치열한 시선
▲라두 주데베를린영화제서 각본상 격인 은곰상을 수상했다.베를린국제영화제
< 콘티넨탈 '25 > 가운데 가장 강렬한 장면은 역시 오르숄라의 일탈이다. 그는 제자인 프레드를 불러내 잔뜩 취한 뒤 공원에서 격렬한 정사를 나눈다. 앞서 여행을 가기 전에는 괴롭다며 저를 더듬는 남편을 거부했던 그녀가 아닌가. 그러고는 젊은 제자와 공원에서 정사를 나누고, 뒤탈이 나지 않도록 다잡는 과정이 황당하기까지 하다. 가정에 충실하겠다며 귀찮게 하지는 말라는 그녀가 세상 흔한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그렇게 나쁜 여자는 아니란 사실을 이미 관객은 수없이 보고 느꼈기에 더욱 놀랄 밖에 없다. 이쯤되면 감독이 인간의 위선, 그 약함과 비겁함을 얼마나 집요하게 겨냥하고 있는지 감탄하게 된다.
오르숄라는 노숙자가 묻힌 무연고자 묘지를 찾을 것이다. 그의 무덤 앞에 꽃을 둘 것이고, 가족을 뒤따라 여행을 따라갈 것이다. 그리스에서 기다렸던 유람선을 타고 다이빙도 할 테다. 영화를 보기 전이라면, 또 얼마 보지 않은 상태라면, 우리는 그녀를 좋은 사람, 적어도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여길 수 있겠다. 그러나 영화를 다 본 뒤엔 어떤가. 그녀가 무덤에 놓는 꽃은 제 마음의 불편을 더는 수단일 뿐이다. 무연고자들은 그 묻힌 곳에서마저 저들을 죽도록 한 자, 적어도 제 어려움을 외면한 자의 위선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오르숄라는 위선자, 수많은 노숙자가 추운 겨울 바깥에서 덜덜 떨게끔 하는 부조리와 불의의 동참자다. 법이, 제도가 자본에 점령돼 없는 자를 더 없게 하고 있는 자의 배를 불린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구태여 싸우려 들지 않는 이다. 저는 퇴거를 늦추어주었다며 선한 척을 하는 이다.
스탈린이 그에 대항하지 않은 무고한 사람들을 처형했단 소식을 접한 브레히트가 잠깐의 침묵 뒤 '그렇다면 잘 되었다'고 답했다는 일화를 오르숄라의 입을 통해 뱉도록 한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한 연출이다. 불의의 시대에 맞서 싸우지 않는 자는 불의 앞에 희생돼 마땅하다는 것, 라두 주데가 오늘의 루마니아, 나아가 세계에 고하는 외침이 이러하다.
< 콘티넨탈 '25 >는 아직 일부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나는 한국 영화팬들이 이 영화 만큼은 이대로 보내선 안 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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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