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건너 붉은 벽돌집> 스틸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탄핵이 결정되자 시국의 안정과 가족의 평안을 꿈꿨던 감독은 번민에 빠진다. 극우 시위대의 행태는 도무지 정이 가지 않는다. 가족이 누렸던, 본인도 어릴 적에 경험한 공권력의 제어가 그리울 지경이다. 하지만 스스로 환호하던 '정방향' 시위와 혐오스러운 '저들'의 시위는 똑같이 헌법에 보장된 시민의 권리다.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고 할 순 없는데, 동의할 수 없는 시위 소음은 참고 감수하던 연대의식을 갉아먹고, 개인의 이해관계를 내세우게 만든다.
다음 대통령 선거가 다가온다. 가족에겐 남들과 조금 다른 화제가 생겼다.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운 것이다. 정치적으론 썩 와닿지 않는데, 이 공약만큼은 5년간 시달린 가족에겐 '거부할 수 없는 제안'과 다를 바 없다. 참 곤란한 상황이다. 그렇게 남들에겐 말하지 못할 고민이 내내 이어진다. 마침내 선거 결과가 나왔다. 공약은 이행되고, 감독은 할머니 손을 잡고 개방된 청와대 구경에 나선다. 수십 년 넘게 지척에 살았지만, 실제로 '이웃집(?!)'을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가족들은 신기하다며 곳곳을 돌아다닌다.
하지만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던 극우 시위대는 사라진 게 아니라 장소를 옮겼을 뿐이다. 퇴임한 대통령이 귀향한 양산으로 시위를 옮겼다고 한다. 가족은 이 상황이 이해되진 않지만, 아무튼 보이지 않으니 안도감에 금방 지워진다. 오랜만에 평화가 돌아왔다. 청와대는 문화예술 공연 무대로 탈바꿈했다. 그래서 간혹 소음이 터지긴 해도 이만하면 견딜 만하다. 세상은 온통 아우성으로 가득한데, 가족의 삶은 역설적으로 태평성대다. 참 기구한 사연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의 평화가 무너진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시도에 맞선 시민들의 저항이 시작된 것. 하지만 서로 교대하듯 광장을 채우던 이들이 이번엔 동시에 출현한다. 소음의 결이 더 복잡해진다. 가족은 이 모든 걸 바라볼 따름이다. 그리고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고, 시국은 다시 5월 대선으로 전환된다. 이번엔 유력 후보가 청와대 복귀를 공약으로 내세운다. 이 가족만 공유할 수 있는 고민과 시름은 깊어만 간다. 운명의 투표일이 다가온다. 그리고 결과가 도래한다.
감독은 기록자인 동시에 화면 안에서 카메라에 노출되는 행위자로 멀티 플레이에 임한다. 그는 단순히 관찰자로서 가족을 피사체로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족회의를 확장한 형상처럼 끊임없이 개별 구성원에게 생각을 묻고 질문을 던진다. 자신도 카메라 앞에서 자주 생각을 밝히고 걸러지지 않은 속내를 표출하기도 한다. 가족이란 상대적으로 접근이 편리한 대상에 적극적으로 행위나 반응을 주문한다. 심각하고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대하는 접근법으로선 이색적인 풍경이다.
미시사와 거대사의 낯설지만 흥미로운 연결
▲<청와대 건너 붉은 벽돌집> 스틸㈜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영화는 감독과 가족의 일상 브이로그가 격동의 한국 현대사와 조응하는 형태를 취한다. 자신의 주변 배경을 '뽀샤시'하게 담는 콘셉트가 특별한 조건 덕에 역사 기록의 독창적 구성으로 순식간에 변환 가능해진 셈이다. 지금껏 해당 소재를 다루는 주된 방식과 확연하게 다른 시도다. 그 낯선 감각이 본 작품의 결정적 차별화가 될 테다. 굳이 정치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봐도, 압축 근대를 경험하며 가족 안에서도 세대 차이가 격심한 한국 사회에서 3대가 어울려 사는 소우주의 자전 궤도를 엿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관찰로 기능한다.
아마 1차 목표는 단순하게 가족이 처한 남들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 법한 고충을 남겨보자는 의도였을 게다. 그런데 기록을 거듭하다 보니 어느 순간에 골격이 드러나고 '건수'가 된다는 판단이 벼락처럼 뇌리에 박혔을 법하다. 그 시점부터 평범하게 서술하던 가족사는 정치사 연대기와 교차하며 복합적 지층을 형성해 나간다. 가족들이 무심코 툭 던지는 듯 들리는 한 마디가 시대의 무게감과 결속되면 자연스레 해석의 재미가 배가된다. 성실한 기록 자체가 복잡한 설계를 초월해버린다.
관객이 경험하지 못한 낯선 접근법의 '마성'은 정제 과정을 거치며 조금 파격성이 줄어들지만, 그 대신에 지적 흥미가 추가된다. 무엇보다 열심히 시위에 참여하던 이들의 머릿속에 간혹 스치던 질문, 우리가 목소리를 높이고 길을 메울 때 이 동네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품을까? 관한 답변 예시 확인할 수 있다는 게 본 작품만의 가치를 부각한다. 인스타그램 '갬성'으로 치우칠 뻔 아슬아슬한 찰나도 종종 노출되지만, 용케 선을 넘지 않으면서 신선한 감각을 유지하는 방향감을 고수한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오랫동안 험난한 과정을 걸쳐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시대에 새로이 닥친 시련, 나의 권리가 존중되려면 (볼테르의 금언처럼) 동의하지 않는 타인의 주장도 권리로 인정하고 침해받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게 보통 난제가 아니다. <청와대 건너 붉은 벽돌집>은 집터를 조금 별나게 잡은 어느 가족의 연대기를 통해 분주하게 사느라 전체 숲을 조망하기 힘든 우리들의 시야를 확장해 준다.
거기에다 추가로 한국 사회가 당면한 극단적 대립의 일상화란 지반을 통찰하며 영화 속 가족의 고뇌를 자연스레 관객 모두의 화두로 승격시킨다. 혼자 심각하게 보기보다 친구나 가족과 함께 보고 나서 왁자지껄 수다를 떨다 보면 어느새 의미 있는 토론으로 변하는 체험을 제공해줄 작업이다.
<작품정보>
청와대 건너 붉은 벽돌집
2025|한국|다큐멘터리
2025.12.24. 개봉|72분|12세 관람가
감독 안소연
출연 안백순, 심복덕, 안성철, 박진령, 안소연
배급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제공 프로나운스미,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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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