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스트라이트> 스틸컷
필름다빈
03.
먼저 이 영화가 극장과 연극을 삶의 도피처 정도로만 이용하고자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처음 댄은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지 못하고 진실한 소통에 실패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문제는 남겨진 가족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회복과 재건을 원한다는 사실. 딸 데이지는 친구 아나스타샤의 경우를 예로 들며 가족 모두가 함께 상담받고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길 원한다. 아내 샤론 역시 먼저 부부관계 회복을 위한 행동을 보여주는가 하면 아들이 세상을 떠난 자리로 추정되는 마당 한구석을 생명력이 넘치는 공간으로 꾸미고자 하는 의욕을 내비친다. 하지만 댄은 그에 응하지 못한다.
'자살'이라는 단어가 환기하는 비극성, 아니 그보다 가족을 둘러싼 사회적 공기까지 바꿔버리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그가 의도적으로 상실에 대한 애도를 연기하고 회피하고 있다고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책임을 이양받아야만 하고, 사건에 대한 설명을 강요당하며, 주변의 시선을 감당해 내야 하는, 무엇보다 자신의 잘못은 무엇인지 스스로 검열하게 만들 상황들이 말을 막고 행동을 멈추게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후반부에서 극단 멤버들에게 자신이 겪은 사건을 말하며 일부 설명하는 장면이 주어진다.)
그런 그에게 주어지는 지역 공동체의 연극이란 완벽한 구원이라기보다는 잘 연습된 한 편의 공연처럼 약속된 대사와 동선, 루틴과 같은 기술에 가깝다. 다시 말해, 거창한 계기를 통한 회복과 각성이 아니라 일상의 반복을 다시 구현하고 시도해 봐도 좋을 공간의 확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과거의 사실을 없었던 일처럼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꺼지지 않는 어둠을 인정하고 고통을 지우고 잊기보다 '고스트라이트'와 같은 작은 밝기의 불빛 하나를 남겨두는 일이 될 것이다. 비극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속의 연습과도 같은 반복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버텨지는 것이니까.
04.
"아무런 노력도 안 하다가 주인공 행세만 하면 다야?"
다시 정리하면, 영화 <고스트라이트>는 '치유'와 '회복'이라는 단어를 쉽게 쓰지 않기 위해 연극을 선택하고 있는 셈이나 다름없다. 자연스럽게 두 번째 물음이 떠오른다. 왜 <로미오와 줄리엣>이어야만 했나? 여기에는 다시 세 가지 이유가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첫 번째는 '가정(假定)'이다. 셰익스피어의 대표 비극 가운데 하나인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 이야기 이전에 오해가 연쇄적으로 거듭되는 서사적 구조를 갖고 있다. 관계의 실패와 비극이 한순간에 결정되고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지점의 엇갈림이 누적되며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들 브라이언과 그의 전 여자 친구 크리스틴(리아 쿠빌레트 분) 사이에서 공모된 일련의 자살 사건과 깊은 연관이 있다. (두 인물이 놓인 상황이 로미오와 줄리엣과 다소 유사하게 디자인된 측면도 있다.) 댄의 입장에서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만이 생존한 사실이, 하필 그 대상이 아들이 아니라는 점 등의 측면에서 상실을 경험한 가족이 하게 되는 가정을 되풀이하게 된다.
▲영화 <고스트라이트> 스틸컷
필름다빈
05.
두 번째는 오해(誤解)다. 무대 위에서 연기될 로미오와 줄리엣의 운명처럼 작품 속 댄과 그의 가족에게도 두 가지 오해가 생긴다. 댄이 아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회피하려 한다는 것. 그리고 극단 멤버인 리타와 외도를 한다는 것. 두 가지는 모두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지 않고 적극적인 대화에 나서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시작된다. 결과적으로는 후반부에서 해소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비극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다른 결말을 맞는 차이점이 있지만, 그 계기가 댄이 '로미오'를 연기하게 되는 순간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영화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처럼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선택과 아들 브라이언과 크리스틴의 선택이 닮아 있는 바, 댄은 로미오의 역할을 연기하는 동안 조금이나마 그를 이해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 선택은 유효하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용서나 완벽한 이해는 결코 아니다. 그가 갖는 태도는 여전히, 마지막 무대 이전에 대사와 결말 모두를 수정하기 원하는 모습에 가까울 것이다. 예정된 증언 녹취 신과 마지막 연극 무대 신에서 그가 보여준 태도에서 이를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연극이라는 매체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우회하며 경험했을 여러 감정과 상황들이 어떤 여력을 만들어주었을 것은 분명하다. 특히나 감정적으로 과장이 극대화된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은 현실에서 표현할 수 없었던 것들을 무대 위에서 토해내도록 만들며 감춰져 있던 것들이 제 모습을 찾아 세상에 드러나도록 만들어주었을 것이다. 과장된 언어를 통해 숨겨진 진짜 감정을 조심스럽게 마주하도록 말이다.
▲영화 <고스트라이트> 스틸컷필름다빈
06.
"불가능하다는 걸 알지만, 가족을 되찾고 싶어요."
영화 <고스트라이트>는 분명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슬픔에 관여할 수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무조건적인 예술 찬가는 아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예술은 상실로 무너진 감각을 조금씩 조율해 나가고 다시 맞추는 체계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 체계는 하나의 연극을 위해 필요한 모든 시간과 연습, 구조와 동선, 사소한 실수까지도 모두를 아우른다. 그렇게 어제의 실수가 오늘의 연습이 되고, 오늘의 연습이 내일의 무대가 되는 것처럼 상실 이후의 삶 또한 미끄러지고 넘어지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의 반복에 가깝다고 말한다.
슬픔을 극복하거나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이야기가 이 영화 속에서 생동하고 있는 셈이다. 환한 구원이 아니라, 꺼지지 않게 남겨두는 최소한의 빛. 그런 빛을 만드는 것은 장황한 설명과 거창한 상징이 아니라 두 감독이 마지막까지 유지하는 절제된 톤이라는 생각도 남겨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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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잃은 아버지, '로미오' 연기하며 깨닫게 된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