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는 자신의 몸을 오랫동안 '대상화'한 채 살아온다.
TV조선
이들이 이렇게 된 이유
이들의 태도는 분명 '여적여'의 편견을 뒷받침하는 모습들이었다. 그런데 정말 '여자들은 원래 그래서' 이런 행동들을 했을까? 이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다 사연이 있다.
먼저 미숙은 홀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엄마다. 미숙의 남편은 가정을 지키기는커녕 미숙이 벌어 둔 돈까지 모두 들고 중국으로 가버린다. 미숙은 모바일 쇼호스트로 일하며 딸을 키우지만, 이런 남편과 이혼을 하려 하자 벽에 부딪히고 만다. 엄마의 직업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양육권을 뺏기게 된 것이다. 미숙은 번듯한 직장이 절실했고, 이에 쇼호스트로 취업을 해 악착같이 살아남고자 한다.
미숙은 이런 자신의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도 부자인 것처럼 행동하고, 강한 모습만 보이려 한다. 이는 부모의 자질보다는 경제적인 능력만을 보는 자본주의적 시선, 그리고 강하고 독립적인 것만이 좋은 것이라는 가부장적인 시선을 내면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어릴 적부터 비만했던 예나는 자신의 몸을 남성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살이 찐 자신은 사랑받을 수 없다고 여긴 예나는 살을 빼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폭식을 하고, 이를 다시 토해내는 폭식증을 앓다가 결국 성형수술을 받는다. 하지만, 날씬해진 후에도 살이 찔까 봐 굶다가 장끼리 붙어버려서 수술을 받기도 한다. 이렇게 자신의 몸을 도구화하면서까지 자본주의적 '성공'을 원했던 예나는 정식의 성추행이 불쾌하면서도 저항하지 못한다.
경선은 '형편없는' 남편 정식으로부터 가정을 지키기 위해 독하게 일해온 인물이다. 11회 고백하듯 경선은 신혼 때부터 정식의 문제들을 덮어주지만, 문제는 점점 더 커지기만 한다. 경선은 이런 아빠로부터 딸을 지키기 위해, 그러니까 '범죄자의 딸'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이를 악문 채 자기 자신을 희생시킨다. 이는 경선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는 게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전통적 사고에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미숙, 예나, 경선의 이런 모습들은 이들이 모두 내면화된 가부장의 통제를 받고 있음을 의미했다.
가부장적 시선을 벗어 던질 때
하지만 이들은 바로 이 내면화된 가부장으로부터 벗어나면서 스스로를 지켜내기 시작한다.
6회에는 중국에 있다던 미숙의 남편이 불쑥 나타나 딸을 데려가려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때 이 장면을 목격한 나정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미숙의 딸을 구해낸다. 이후 미숙은 나정에게 솔직해진다. '강한 모습'으로 포장했던 것을 버리고 '나약함'을 드러내자 나정은 미숙이 회사에 남을 수 있도록 자신의 비법을 전수해주기도 한다. 미숙 역시 나정의 도움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강해야만 한다'는 가부장적 시선을 거둬들인 미숙은 나정과 서로 돕는 사이가 된다.
예나 역시 자신이 스스로를 대상화 해 온 늪이 얼마나 깊은지 깨달은 후, 그 늪에 빠져나온다. 누구보다 성공하고 싶었던 예나는 프라임 타임 방송을 준다는 경선과 정식의 미끼를 물고 다른 성추행 피해자인 선민이 정식을 고발하는 일을 모른 척한다. 하지만 선민이 자살을 시도하자,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프라임 타임'을 줬으니 자신과의 2차를 거절하지 말라는 정식의 행위에 드디어 분노를 표현하기 시작한다. 나정이 이 장면을 목격하고 예나를 도와주자, 마침내 자신이 괴로웠음에도 성공하고 싶어서 눈감아 왔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용기 내 증언해 선민을 돕고, 스스로를 구해낸다. 더 이상 '대상'이 아닌 '주체'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경선 또한 남편에 대한 분노를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분노를 참아왔던 것이 결국 '자기기만'이었다고 고백하며 나정에게 사과한다(11회). 사실, 나정과 미숙이 취업하게 된 '경단녀 재취업' 프로그램을 만든 건 경선이었듯, 일하는 여성들을 응원하고픈 마음 만큼은 늘 품고 있었을 것이다.
▲경선은 자신이 남편을 참아준 것들이 결국 '자기기만'이었음을 깨닫는다.TV조선
이처럼 '여적여' 프레임을 보여주던 이 드라마의 여성들은, 내면화했던 가부장적 시선을 걷어 내면서, 연대의 길로 나아간다. 여성들이 서로 질투하고 시기하고, 경쟁하는 것은 '여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경쟁에서 이겨 성취하고 위계의 꼭대기에 올라가는 것만이 '성공'이라 이야기해온 사회의 영향을 받은 탓이 크다. 이는 비단 여성들에게 해당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성공하기 위해, 더 많은 권력과 부를 쥐기 위해 경쟁을 넘어 암투와 술수가 난무하는 일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늘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프레임에 갇혀 있을 때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없는 점이다. 미숙도, 예나도, 경선도 강한 척하거나 스스로를 대상화하면서 살아남으려 하지만, 그럴수록 '진짜 나'는 점점 사라져갈 뿐이었다. 하지만, 가부장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약함을 인정하고 도움을 청하며 연대하는 길을 선택하면서 이들은 '자기 자신'을 되찾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늘 깨어 내면화된 가부장을 인식하고 이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드라마의 제목처럼 '다음생은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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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