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이혼숙려캠프' 진행자 서장훈의 모습
JTBC
이혼은 중년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왔습니다. 통계청이 올해 발표한 2024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평균 이혼 연령은 남성 50세를 넘었고 여성 역시 40대 후반에 이르렀습니다. 연령별 이혼율은 남성은 40대 후반, 여성은 40대 초반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혼은 우리가 막연하게 떠올려온 '젊은 부부의 실패담'이 아니라, 중년의 삶 한가운데에서 누구나 마주칠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숫자로만 보던 변화는 어느 순간, 제 삶 가까이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에 부부가 등장해 자신들의 속사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장면, 이제는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프로그램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관심을 두지는 않았습니다. 제 삶도 버거운데, 남의 이혼 이야기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으니까요.
방송까지 나와서 왜 저럴까, '막장 부부'라는 편견
그런데 요즘 제가 가장 자주 보는 예능 프로그램은 JTBC <이혼숙려캠프>입니다. OTT로 1화부터 정주행하고 있지만, 매회 이해하기 힘든 장면들이 쉼 없이 이어집니다. 이른바 '막장 부부'라 불리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불편한 감정이 쉽게 가시지 않습니다.
"아니, 대체 왜 저러고 살아?"
<이혼숙려캠프>에 같이 출연한 같은 기수가 이런 말을 할 정도의 상황도 등장합니다. 방송을 보면서 저 역시 입에 달고 살던 말입니다. '가사조사' 과정에서 등장하는 장면들은 매우 적나라합니다. 카메라 앞임에도 서로 욕하고, 소리 지르고, 의심하고, 무시하며, 막말로 상처를 주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외도와 폭력, 거짓말, 가장의 경제적 무책임과 무능력까지, 관계가 바닥까지 내려간 모습이 여과 없이 드러납니다.
'왜 방송에까지 나와서 저러는 걸까. 출연료를 많이 주나?'
처음에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극단적인 감정 표현과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해 보이는 관계들. 화면 속 부부들을 보며 사실 안도했습니다. 적어도 나는 저 정도는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고성이 오가지도 않고, 서로를 공개적으로 모욕하지도 않습니다. 경제적 무능함, 외도와 폭력도 없는 괜찮은 결혼생활, 괜찮은 남편이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습니다.
과연 저는 저들보다 나은 사람이었을까요
"제가 제 모습을 화면으로 보니까 너무 심하더라고요. 몰랐어요. 보는데 정말 한심했어요."
가사조사에서 모니터를 통해 자기 모습을 본 한 참가자(남편)의 말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기 시작하고, 상대에게 문제가 있다는 마음에 변화가 이는 순간입니다. 회차를 거듭하며 이러한 장면을 자주 접하면서, '그나마 저들보다 괜찮은 결혼생활'이라는 생각이 저만의 착각이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과연 제가 저들보다 나을까요'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혼숙려캠프>에 나온 부부는 분명 문제가 많고, 때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 만큼 최악입니다. 며칠간의 합숙 프로그램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관계도 적지 않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가사조사, 심리상담, 부부 상황극, 최종 조정 과정을 거치며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들이 눈에 담겼습니다. 서로 이해하려고 애쓰는 장면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분명 희망의 불씨로 보였습니다. 그들은 적어도 자신의 결혼생활에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고, 해결을 시도해 보겠다는 의지로 공개적인 자리에 섰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민낯이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관계를 끝내기 전에 한 번은 노력해보겠다는 마음으로 방송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정말 몰랐어요. 남편이 저런 상처가 있는 줄… 가끔 얘기하긴 했는데,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거 같아요."
한 출연자의 아내가 남편의 상처를 보듬고 이해하기 시작하는 장면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그들은 분명 현명하고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방송 이후 공개되는 근황에서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선택 이후 달라진 부부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제를 마주하기로 한 용기와 도전이 만들어낸 변화입니다.
대화가 사라진 관계, 조마조마한 휴화산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서로 등 돌리고 사는 부부의 모습
Pixabay
저는 19년의 결혼생활 동안 <이혼숙려캠프>에 나갈 만큼 극단적인 상황까지 치달은 적은 없습니다. 사이가 좋은 편이어서가 아니라, 문제를 계속 외면해 왔기 때문입니다. 대립을 피하기 위해 대화를 줄였고, 싸우지 않으니, 겉으로 드러나는 갈등도 없어 보였습니다. 대신 서로의 불편한 감정은 조용히 쌓여갔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해결이 더 어려워진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터질 문제를 덮어둔 채 살아왔을 뿐입니다.
아내와 저는 성격, 생활 방식, 감정을 다루는 방식도 정반대입니다. 결혼 초반에는 상호 보완처럼 보이던 차이가 시간이 흐르며 반복되는 트러블이 되었습니다. 상처를 주고받지 않기 위해 싸우지 않는 쪽을 택했고, 갈등을 피하고자 감정을 접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조용한 상태는 평화라기보다, 폭발 직전의 휴화산에 가까웠습니다.
반면 <이혼숙려캠프> 속 부부들은 소리를 지르고 울부짖습니다. 엉망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만큼 아직 상대에게 기대가 남아 있다는 외침처럼 보입니다. 대화 자체가 사라진 관계에서는 어떤 기대조차 할 수 없으니까요.
정답은 없다, 모든 부부의 선택은 존중 받아야
▲'이혼숙려캠프'에 등장했던 일명 '투견 부부'의 모습
JTBC
"대화를 해야 해. 대화를. 상담 받아봐. 나도 남편이랑 1년 넘게 상담 받고 좋아졌어."
한 친구가 제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부부마다 처한 사연은 다릅니다. 섣불리 재단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물론 대화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혼숙려캠프>의 가사조사에서 보듯, 남편과 아내의 입장은 전혀 다른 평행선을 달립니다. 서로가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피해자로만 여기고 있다면 대화는 해결이 아니라 또 하나의 전투가 됩니다.
저 역시 아내와 대화를 시도해 본 적이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기에, 잠시 단절을 선택했습니다. 화해를 거부해서도, 당장 이혼을 결심해서도 아닙니다. 다만 지금의 침묵이, 서로를 다치게 하지 않는 최소한의 거리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 선택이 옳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솔직한 선택이라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전문가의 조언과 타인의 경험이 관계를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 역시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이혼숙려캠프>도 부부 당사자만의 시선에서 벗어나, 전문가의 분석과 다른 부부들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과정을 거치니까요. 이 과정이 누군가에게는 관계를 회복할 실마리가 되기도 합니다.
다만 모든 부부가 같은 결말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모두가 이혼을 선택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게 되는 것도 아니며, 때로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부부의 삶을 정리하는 선택이 더 나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혼숙려캠프>가 보여주는 것은 이혼을 무조건 유예하는 과정이 아니라, 부부가 각자의 현실을 직시하고 어떤 선택이 자신들에게 더 나은 결정인지 고민하는 시간에 가깝습니다.
남남이 함께 산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기적
▲지난한 세월을 함께 했을 노부부의 뒷모습Pixabay
부부란, 전혀 다른 두 사람이 같은 방향을 보며 살아가야 하는 관계입니다. 자란 환경, 사고방식,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다른 두 사람이 매일 마주하며 살아간다는 건 기적에 가깝습니다. 그 기적이 흔들릴 때, 누군가는 소리를 지르고 누군가는 침묵을 택합니다. 해결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이혼숙려캠프>를 오랫동안 시청하면서 부부 문제는 잘잘못의 크기보다 상황에 대처하는 태도의 차이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문제를 드러내고 마주하려는 선택도 있고, 조용히 외면하는 선택도 있습니다. 정답이 없기에,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선택도, 각자의 길을 선택하는 결정도 모두 쉽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이 더 정답이냐가 아니라, 그 선택이 당사자에게 얼마나 솔직하고 책임 있는 결정이었는지일 것입니다.
부부의 일은 그들만의 시간과 방식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이혼 앞에서만큼은, 누구도 명쾌한 답변을 내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왔고, 각자의 결정을 스스로 감당하며, 그 안에서 저마다의 힌트를 찾아야 하니까요. 어느 부부의 어떤 결정이든 존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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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경험을 소중히 여기는 직장인,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아빠, 매 순간을 글로 즐기는 기록자. 글 속에 나를 담아 내면을 가꾸는 어쩌다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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