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고니아>의 한 장면.
CJ ENM MOVIE
<부고니아>의 가장 뛰어난 점은, 결말을 알고 있어도 영화가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 중심엔 미셸과 테디가 있다.
엠마 스톤이 연기한 미셸은 '정체가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의심하게 만드는' 독특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때로는 냉정하고, 때로는 공포에 질린 듯하지만, 그 모든 감정이 마치 계산된 움직임처럼 보인다. 관객은 테디의 광기를 비웃으면서도, 어느 순간 '혹시?'라는 의심을 품는다.
반면 테디는 이야기의 유일한 능동적 캐릭터다. 그는 비합리적이고 폭력적이지만, 그 행동 뒤에는 상처 받은 인간의 절규가 있다. 그래서 광인이면서 희극적이고, 폭력적이면서도 어딘가 짠하다. 플레먼스는 이 모순적인 인물을 자연스럽게 끌고 가며 영화의 중심축을 탄탄하게 붙든다.
원작이 장르적 실험과 코믹 요소에 더 집중했다면, <부고니아>는 인물과 메시지에 훨씬 무게를 둔다. 란티모스 특유의 기묘한 유머, 생경한 화면, 서늘한 감정의 결들이 더해지며 관객에게 두 가지 질문을 굵직하게 던진다. "우리는 정말 지구를 지킬 자격이 있는가?" "인간이 만든 문제를 인간이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건 과연 정당한가?"
테디가 외계인의 짓이라 믿었던 '꿀벌 군집붕괴 현상'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면 테디가 벌인 모든 행동은 결국 인간이 스스로 저지른 일의 또 다른 반복일 뿐이다. 그 아이러니를 확인하는 순간, <부고니아>는 단순한 리메이크가 아닌 지금 이 시대를 향한 날카로운 풍자가 된다.
<부고니아>는 원작의 틀을 가져오면서도 란티모스의 미학을 한껏 담은 작품이다. 황당한 이야기 안에서 인간의 모순과 시스템의 그림자를 건져 올리며 '영화란 이런 것'이라는 감독 특유의 감각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관객은 이 작품을 블랙코미디로 즐길 수도 있고, 사회 풍자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며, 인간의 무력함을 조명하는 우화로 느낄 수도 있다. 해석의 폭이 넓다는 것 자체가 <부고니아>라는 영화의 힘이다.
독특한 재미는 확실히 보장한다. 다만 특별함을 발견하는 일은, 영화가 아닌 관객 스스로의 몫이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부고니아>는 기괴한 코미디가 될 수도, 지금 시대에 꼭 필요한 메시지가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건 하나, 이 영화는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아 당신을 다시 되돌아보게 할 것이다.
▲영화 <부고니아> 포스터.CJ ENM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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