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허들> 스틸컷
(주)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04.
"니가 나보다 잘해서가 아니라 불쌍해서잖아."
실제적인 현실과 미래의 침탈은 어른들의 사정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 중심에 친구이자 경쟁자인 민정(권희송 분)이 있다. 영화가 처음부터 가난을 이유로 군청의 지원을 받으며 운동을 이어가는 선수로 그려내는 인물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보다 실력이 좋은 서연을 제치고 군청 실업팀 선수로 내정되는데, 여기에는 자신들의 도움으로 성장해 가는 선수의 스토리가 필요하다는 군청 관계자들의 부정(不正)한 요구가 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실업팀 소속이 되고자 버텨왔던 서연에게는 또 하나의 장애물이 된다. 그들은 이 계획을 성사시키기 위해 서연이 선발전에 나서지도 못 하도록 은근한 압력을 가한다.
굳이 구분해서 살펴보고자 한 건 서연과 민정의 관계 자체가 처음부터 악의적인 구도로 놓여 있는 것은 아니어서다. 오히려 두 사람은 서로의 삶을 온전히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서로를 응원하는 거리로 그려진다. 이분법적인 선악 구도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저 민정은 오랫동안 이어진 가난 속에서 서류상으로 그 상황을 인정받게 되었을 뿐이고, 서연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한 어려움을 정책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두 사람 모두 제도 안에서 각자가 인정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그 불행에 맞서고, 또 증명해 온 생존자인 셈이다.
문제는 그것과 별개인 트랙 위 경쟁의 문제가 확실한 스포츠로서의 승부가 아닌, 어떤 상처가 제도에 의해 더 인정받을 만한 것이고, 어느 쪽이 더 설명하고 홍보하기에 용이한 서사인가로 인해 판단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구조가 서연과 민정 두 사람 모두를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얼굴을 갖게 만든다. 그리고 영화가 이 지점에 다다르게 되면, 정말 이 작품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한 개인의 절망에 있는가 하는 물음을 갖게 된다. 그보다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공백으로 남던, 그 자리를 지나쳐가는 제도와 공동체의 역할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된다. 아빠의 긴급한 수술을 앞두고는 보호자가 될 수 없다던 병원의 태도가 자의적 퇴원과 관련한 서류 앞에서는 어떻게 그렇게나 쉽게 누그러질 수 있었을까.
05.
지금까지 이야기해 온 여러 지점의 전환은 영화가 가진 운동성의 재현과 이전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는 허들이라는 종목과 소재를 가족 돌봄 청년과 결부시켜 이야기를 진행시키고자 한 목적과도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중적 의미를 트랙 안팎에서 재현해 내고, 운동선수가 보여줄 수 있는 운동성을 단순한 외연적 에너지만이 아닌 내면의 응축된 감정으로까지 발화시킬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서연이라는 인물을 연기한 최예빈 배우의 존재감이다. 서사의 절반 이상을 홀로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의 모습에서는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쌓아온 지난 필모그래피 속의 모습과는 또 다른 단단함이 엿보인다. 눈물이라는 쉬운 선택이 있음에도 이를 의도적으로 제한하는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감독의 의지 속에서도 드러내야 할 것을 분명히 전달해 내고 마는 마음과 같은 것이다.
▲영화 <허들> 스틸컷(주)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06.
"그럼 저는 누가 보호해 줬어야 해요?"
후반부에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사건 이후 영화는 서연을 법정에 세운다. 한 가족의 기구한 사연에 대한 옳고 그름을 가리기 위함은 아니다. 그보다는 누가 이 가족을, 서연을 이 자리에까지 끌고 오게 만들었는지를 들여다보고자 함에 더 가깝다. 결과적인 의미의 책임과 처벌과는 별개의 문제다. 극 중 모든 어른이 서연의 어려움을 모른 척한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한 명이라도 적극적으로 나서 도와주거나 막아줄 수 있었다면 지금에 이르지 않았으리라는 것이 영화의 주장이다. 이를 위해 이 작품의 법정 신은 선악을 판결하는 영웅적 서사의 장소로 쓰이지 않는다. 관객 모두는 이미 그 과정을 지켜본 이후고, 감독은 그들과 함께 마치 늦어버린 응답과도 같이 사회가 제때 개입하지 못한 실패의 기록을 이 작품 위에 남겨두고자 한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문구가 나타난다. 구체적인 사건 하나가 지칭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 담긴 가족 돌봄 청년 문제는 여러 사례를 통해 분명히 우리 사회 안에 존재한다. 영화의 초점을 서연의 모습으로부터 떼어 놓지 않는 한상욱 감독의 선택과 시선은 이 문제가 무거운 사회 고발극 형식이 아니라 한 인물이 자신의 시간을 버텨내는 과정을 지켜보게 만드는 쪽으로 옮겨 놓는다. 적어도 스크린 앞에 앉아 있는 시간 정도만큼은 관객이 가족 돌봄 청년들이 마주하게 되는 복지의 사각지대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마주할 수 있도록 말이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영화 <허들>이 넘고 싶은 마지막 장애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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