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워너 인수, 할리우드 지배자 탄생할까

엔터테인먼트 산업 독점 우려... 트럼프 "심사에 관여할 것"

세계 최대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가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이하 워너브러더스)를 인수하기로 합의하면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지각 변동을 예고했다.

넷플릭스는 5일(현지시각) 워너브러더스의 영화·TV 스튜디오와 스트리밍 서비스 'HBO 맥스' 등 사업 부문을 720억 달러(약 106조 원)에 인수하는 최종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이 계약이 성사되면 넷플릭스는 워너브러더스의 방대한 영화·TV 콘텐츠와 스튜디오 사업에다가 스트리밍 플랫폼 'HBO 맥스'까지 합쳐 4억2천만 명이 넘는 가입자를 보유한 '미디어 공룡'으로 거듭나게 된다.

로이터통신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인 워너브러더스가 스트리밍 선구자 넷플릭스에 넘어가는 초대형 계약"이라고 평가했고, 뉴욕타임스는 "넷플릭스가 할리우드를 공식적으로 지배하게 된다는 의미"라고 규정했다.

초대형 '미디어 공룡'에 긴장하는 할리우드

 미국 LA의 넷플릭스 사옥 앞 로고
미국 LA의 넷플릭스 사옥 앞 로고AFP/연합뉴스

워너브러더스는 스트리밍 서비스에 진출한 이후에도 영화 제작과 극장 개봉이라는 전통 방식을 지켜온 할리우드 주요 스튜디오 중 하나였다. 그러나 넷플릭스가 인수함으로써 이 모델이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또한 넷플릭스가 콘텐츠 제작, 라이선싱, 유통까지 모든 과정에서 압도적인 통제력을 확보하면서 독립 창작물의 시장 진입 장벽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할리우드의 노동시장 구조까지 흔들 수 있다.

영화관 협회와 배급사, 배우·작가 조합 등 할리우드 업계가 이번 계약을 "전례 없는 위협"이라며 반대하고 나선 까닭이다.

미국 3만 개가 넘는 영화관을 대표하는 시네마 유나이티드는 "글로벌 극장 산업에 전례 없는 위협이 될 것"이라며 "이번 인수의 부정적 영향은 미국과 전 세계의 대형 체인 극장에서부터 소도시의 독립 극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극장에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작가조합도 "반독점법은 세계 최대 스트리밍 업체가 가장 거대한 경쟁사를 삼키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일자리가 사라지고, 소비자 가격이 인상되며, 콘텐츠의 양과 다양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 제인 폰다는 '위헌 논란'까지 들고 나왔다. 폰다는 성명을 내고 "넷플릭스의 워너브러더스 인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라며 "단순한 기업 인수가 아니라 헌법상의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어 "할리우드 업계 리더들이 우리의 생계, 스토리텔링, 헌법상의 권리까지 희생하면서 정부의 요구에 순응하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라며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그 권리를 팔아넘길 수는 없다. 우리가 굳건히 맞서 싸워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생존 위한 승부수인가, 위험한 독점인가

넷플릭스의 워너브러더스가 인수가 몸집 불리기를 넘어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영화·TV산업의 성장이 정체되어 있는 가운데 인공지능(AI)이 동영상 제작 장벽이 무너지며 공급이 무한대로 늘어나고, 틱톡이나 유튜브가 내세우는 '숏폼'과의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서 넷플릭스가 '프리미엄 엔터테인먼트'로 승부를 걸었다는 의미다.

투자 전문가 데이비드 턱웰은 "넷플릭스는 지난 10년간 미디어 유통 엔진을 구축했으나, AI는 모든 사람이 그 엔진을 모방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며 "이번 인수는 40분짜리 명품 드라마보다 12초짜리 저품질 콘텐츠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넷플릭스가 아무도 모방할 수 없는 세상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반면에 로이 프라이스 아마존 스튜디오 전 대표는 "할리우드는 끊임없이 스스로 혁신하며 발전해 왔지만, 하나의 태양을 공전하는 시스템으로 전락할 것"이라며 "두 기업의 합병이 할리우드를 파괴하지는 않겠지만,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단일 기업의 통제 속에 놓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이 계약이 최종 성사되려면 까다로운 반독점 심사를 넘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날 기자들에게 넷플릭스의 워너브러더스 인수전 승리가 "정말 대단한 성과"라면서도 "그 결정에 관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수 찬반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내가 아니라 경제학자들이 말해줘야 할 부분"이라며 "막대한 시장 점유율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2023년 미국 법무부가 만든 지침에 따르면 시장 점유율이 30%를 넘을 경우 경쟁사 간 합병은 불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유튜브, 틱톡과 같은 무료 동영상 플랫폼도 스트리밍 시장에 포함하면 이를 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생명줄 위협 받는 극장들

이번 인수가 당장 영향을 미칠 분야로는 극장 업계가 꼽힌다. 워너브러더스가 넷플릭스를 따라 스트리밍에 더 집중할 경우 향후 콘텐츠의 극장 개봉 기간이 줄어들거나 아예 생략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뉴욕타임스는 "극장주들은 넷플릭스가 사람들에게 극장에 가는 것보다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이 더 낫다고 설득함으로써 극장 산업을 약화시켰다고 믿는다"라며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도 넷플릭스 영화에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을 주지 않으면서 암묵적인 거부감을 보였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넷플릭스가 극장 개봉을 계속하겠다는 약속을 지킬지 궁금해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아바타: 불과 재> 개봉을 앞둔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넷플릭스의 약속은 엉터리 미끼"라며 "그들은 아카데미 후보작 규정을 맞추기 위해 열흘만 개봉하며 극장을 이용했다. 정말 끔찍하다"라고 비판했다.

영화 <아노라>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 감독 숀 베이커도 "극장을 건너뛰고 바로 스트리밍으로 넘어가면 영화의 중요성이 떨어질 것"이라며 "영화를 세상에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느냐가 매우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실제로 극장에 가보면 젊은 관객이 많이 온다"라면서 "그들이 함께하는 경험의 가치를 깨닫고, 다른 것에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영화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너무 좋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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