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기획 스트레이트>의 한 장면
MBC
- 그러면 이 아이템으로 결정하고 맨 처음 뭐부터 했어요?
"제가 이분들 이야기를 보도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며칠 뒤에 국가 상대로 하는 첫 손해배상 공판일이었어요. 그래서 피해자 선생님들이 서울에 올라오실 때부터 만나 뵙고 그날 공판 시작 전부터 하루 종일 따라다니면서 취재하는 게 제 아이템 취재의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 공부도 필요하지 않았나요?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피해 사실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이나 아니면 이게 왜 성폭행 피해라고 판단했는지 근거를 담은 보고서가 있어요. 그 보고서를 일단 다 읽어봤고, 이분들이 했었던 과거 인터뷰 혹은 국회 증언대회에서 하셨던 말씀을 먼저 읽어봤어요."
- 취재하며 새롭게 안 게 있나요?
"5.18 성폭력 피해가 어떤 상황에서 일어났는지를 새롭게 안 것 같아요. 제가 막연히 생각해 봤었던 성폭력 피해와 굉장히 다른 양상으로 이루어졌죠."
- 뭐가 달라요?
"군인들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공포죠. 그리고 실제로 군인들이 그 당시 자신의 이웃들 죽이는 경우를 이 사람들은 계속 목격했고요. 그런 최고의 폭행에 대한 압박 속에서 일어난 범죄였다는 게 제가 생각한 거와 달랐던 것 같아요. 성폭력 피해라고 했을 때 1 대 1로 있는 상황에서 비밀스럽게 일어나는 게 보통 생각하는 거죠. 근데 계엄군에 의한 성폭행 혹은 나중에 조사받는 과정에서 수사관이나 경찰로부터 받는 성폭행이라는 건 대개 공적인 업무를 하는 중에 일어나는 성폭행이잖아요.
또 이 사람이 그 피해를 안고 45년을 살아왔어요. 근데 그 피해 때문에 이 사람의 인생이 바뀌어 버린 게 완전히 많거든요. 한 사람의 인생을 짓밟았다고 표현하기가 죄송한 마음이 있어서 그 표현을 잘 안 쓰려고 했어요. 하지만, 성폭행 피해 당한 이후에 심한 우울증 그리고 가족에게 버려지는 경우라거나 오히려 폭력 받으면서 피해자들이 40여 년 살아왔단 말이에요. 그 사람들의 삶의 무게나 그 과정 과정에서 느낀 응어리진 한 같은 걸 말로 했을 때 제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던 것 같아요."
"서지현 검사 미투 보고 증언 결심한 피해자들 많아"
- 2018년 서지현 검사의 미투가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준 거 같아요.
"실제로 5.18 진상조사 위원회가 조사해서 16건의 성폭력 피해 사실이 있었다고 인정했는데 피해자 16명 중 12명이 서지현 전 검사의 영향 받아서 자신도 증언하게 됐다고 말했거든요. 서지현 검사의 발언도 그렇고 당시 우리 사회에 미투 운동이 있었잖아요. 당시 사회 분위기 때문에 이 피해자들이 말하게 됐던 것 같아요."
- 피해자 중 상당수가 암투병하는 것 같던데 성폭행과 관련이 있을까요?
"저는 의사가 아니라서 인과관계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암의 주요 원인이 스트레스이기도 하잖아요.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한이 있고 응어리져 있는 아픔들이 있거든요. 그게 조금이라도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사람들 몸에 계속 나타났었어요. 그래서 상당수가 암 투병 하시는 거와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죠."
- 인터뷰이 섭외하는 건 어땠나요?
"사실 저희가 이런 방송 취지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피해자 선생님들이 용기 내줘야 할 수 있는 부분이잖아요. 그분들이 결심해 줘서 방송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성폭행 피해자들 자조 모임인) 열매에서 간사를 하는 윤경회 전 팀장님이 있거든요. 이분이 5.18 조사위 때 이 성폭력 사건 담당하는 조사를 했던 팀장이었는데 윤경애 전 팀장님이 인터뷰 섭외라거나 아니면 어떤 식으로 보도했을 때 2차 피해가 되지 않을지에 대해 도움도 많이 주셨던 것 같아요."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의 한 장면.MBC
- 보도 보니 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에게 법은 없었던 거 같은데 취재하며 어떤 게 충격적이었나요?
"저는 다 충격적이기도 하고 마음도 아팠어요. 저는 1991년생인데 1990년대생이 생각하는 성 관련된 개념과 50, 60, 70대가 되신 분들이 성에 대해 생각하는 건 사회가 많이 달라졌잖아요. 그래서 그분들은 많이 힘드셨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 보도에서 어떤 피해자는 남편이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자, 폭력이 시작되었다고 나오잖아요. 저는 그게 이해 안 가더라고요.
"저도 이해가 안 가지만 그 당시에 어떤 사람은 성폭력 피해 당하고 왜 나에게 시집 왔냐고 생각됐던 거죠. 저도 그렇게 말하는 게 그 사람을 두둔하는 것 같아 말하기가 조심스러운데요. 성폭력 피해 당한 걸 피해자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당시 사회 분위기 때문에 피해자를 탓하고 폭행하는 거죠."
- 그러면 피해자는 더 힘들었겠네요?
"그 선생님 같은 경우도 힘드셔서 술을 많이 드셨죠. 근데 그게 술이 좋아서 마셨다기보다 삶이 괴로우니까 잊고 싶어서 술을 찾게 되셨던 것 같아요."
- 보도 보니까 가해를 인정한 군인은 한 명도 없다고 나오던데 40년이 지났고 법적 처벌도 하기 어려울 텐데 왜 반성 안 하는 걸까요?
"5.18 조사위에서 이 조사를 진행하셨던 분들도 가해자가 한 명이라도 이번 조사를 통해 사과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계셨다고 했거든요. 그게 법적으로 처벌 하는 게 목적이라기보다 자신이 저질렀던 범죄에 대해서 사죄하면 그 사람에게 피해 당한 분의 경우에도 그렇지만 같은 피해 당하신 피해자분들 치유에 도움이 되는 거니까 그런 방향으로 가해자 특정할 수 있을 때 최대한 특정해서 조사 했던 경우가 꽤 있었거든요. 근데 반성 안 했어요. 제가 가해자들은 안 만나봐서 모르겠어요."
-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이 있었잖아요. 피해자들은 다시 트라우마에 시달린 것 같은데.
"작년 계엄이 열매 선생님들을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했던 하나의 계기였던 것 같아요. 저는 취재하기 전에는 트라우마가 발현되면 어디로 숨고 싶어진다든지 더 소극적으로 변한다든지 우울하다든지 하는 식으로 나온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막상 취재해 보니까 열매 회원분들은 훨씬 적극적이시더라고요.
기사에도 써놨는데 성수남 선생님 같은 경우 혼자 몇 걸음 못 걸으시거든요. 재판한다고 용산역 처음 올라오셨을 때도 화장실 가시는 거 제가 옆에서 부축해 드릴 정도예요. 근데 그분 같은 경우에도 계엄 소식 듣자마자 택시 타고 옛 전남도청 앞 금남로로 가셨다는 거예요. 그때 일이 똑같이 재연될까 봐서요. 그날 나와 있던 광주 시민들에게 고맙다고 말씀하시면서 인사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선생님들이 훨씬 계엄 이후 트라우마도 트라우마인데 그날의 상황일 때 적극적이셨던 것 같아요. 이런 계엄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인데 왜 2024년에 또 나왔을까 하는 문제의식 때문에 계엄에 의한 국가 폭력의 실체를 조금 더 알려야겠다는 의견도 모이셨고요."
- 그래서 12월 12일에 맞춰서 국가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소장 접수하신 거로 알아요, 소송은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지난 7일에 첫 재판이 열렸고요. 다음 재판은 1월 16일에 있어요."
- 취재하며 느낀 점이 있을까요?
"기록으로 드러나지 않은 다른 피해자들이 많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기록에 남아 있어도 진상 규명으로 가려고 하면 조사 과정에서 진술하는 게 필요하잖아요. 근데 그 과정까지 원치 않으시는 분들도 있고요, 그러니까 5·18 성폭력 피해가 더 클 수도 있겠다고 생각 하게 됐고 그리고 이게 현재 진행 중인 피해라고도 볼 수 있잖아요.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이 막 시작했으니까요.
근데 1심 때 국가 측 변호인이 나와서 했던 말이 피해자들을 화나게 했어요. 국가가 그때 나와서 했던 말이 '사실관계 일부를 다투겠다'나 '공소시효가 지나서 배상이 불가능하다'는 주장 했거든요. 사실 관계를 일부 다투겠다는 말은 5·18 진상 조사 규명위원회에서 3년 넘게 조사했던 과정 자체를 신뢰하지 않겠다는 말처럼 들리죠. 하지만 피해자분들은 이걸 조사하는 과정 자체가 되게 쉽지 않았거든요. 안 하겠다고 하는 걸 여러 조력자가 설득해서 피해 진술 했던 과정이었는데 국가 측에서 나와 사실관계 다투겠다고 주장을 하면 그거는 피해자분들한테 또 다른 상처를 줄 수 있는 일이죠.
또 공소시효가 지나 배상이 불가능하다는 말도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분들에게 국가가 또 다른 상처를 주지는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강했어요. 그래서 2차 재판이 내년 1월 16일에 시작인데 그때 피해자분들의 피해를 고려한 재판 과정이 진행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더라고요."
- 어려운 점은 뭐였나요?
"취재하면서 제가 피해자 선생님들에게 피해 사실을 말하게 하는 과정이 있잖아요, 때문에 그 부분이 죄송하죠. 이걸 모르신다는 분들도 많잖아요. 그런 분들 생각하면 그날의 이야기를 해야 되죠, 저는 계속 그날의 그 사건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지만 공론화하면서 그 피해자분들이 그날의 상처를 다시 생각하게 하잖아요. 그게 너무 어려웠어요. 그것 때문에 지금도 마음이 많이 무거워요.
그리고 보도 만들면서도 이걸 보고 피해자 선생님들이 또 상처를 입으시면 어떡하지란 생각도 있었어요. 실제로 2018년에 김선옥 선생님이 처음으로 5·18 성폭력 피해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몸 팔아서 배상받으려고 하는 거냐'는 비인간적인 댓글이 달렸고 그 댓글 때문에 너무 힘드셔서 광주를 떠나 계시기도 해서 이분 삶에도 영향을 미쳤단 말이에요. 저희 보도 보고 2차 가해가 있으면 어떡하지라는 제작자로서의 무거움이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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