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 대학교에 재학 중인 최상류층 학생들의 비밀 사교 모임 '라이엇 클럽'에서 벌어지는 방탕한 파티를 그린 문제작 <포쉬(POSH)>가 돌아왔다. 2023년 초연과 앙코르 공연에 이어 올해 재연으로 돌아온 <포쉬>는 2026년 1월 11일까지 서울 종로구 링크아트센터 드림 4관에서 관객과 만난다.
라이엇 클럽의 회원만 해도 10명, 여기에 파티가 열리는 펍의 사장, 사장의 자식, 그리고 파티에 초대된 의문의 손님까지 총 13명의 인물이 무대에 오른다. 대학로에서 진행되는 연극에 이렇게 많은 등장인물이 출연하는 것도 이례적인데, <포쉬>가 공연되는 극장의 규모도 비교적 작아 강렬한 에너지를 가까이서 느끼기에도 좋다.
<포쉬>는 상류층의 위선과 방탕함이라는 날카로운 주제 의식 외에도 전 배역을 성별 구분 없는 '젠더 프리' 캐스팅으로 구성하며 화제를 모았다. 원작은 라이엇 클럽 회원들과 펍의 사장을 남성으로 설정하고, 사장의 딸과 의문의 여성을 등장시켰다. 기존의 설정을 그대로 이어가되 라이엇 클럽 회원들과 펍의 사장을 여성으로 재구성하고, 사장의 아들과 의문의 남성을 등장시키는 시도를 추가로 감행한 것이다.
▲연극 <포쉬> 공연 사진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최상류층 학생들의 우스꽝스러운 파티
예로부터 지금까지 소위 말하는 영국 사회 엘리트의 적지 않은 수가 옥스퍼드 대학교 출신이다. 연극 <포쉬>는 옥스퍼드 대학교 내에서도 최상류층 학생 10명으로 구성된 비밀 사교 모임인 '라이엇 클럽'을 다룬다. 라이엇 클럽 회원들은 자신들의 계급적 지위를 과시하면서 우월감에 도취되어 있고, 자신들이 장차 사회를 이끌 것이라는 자만도 가득하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라이엇 클럽이란 걸 감춘 채 '청년 사업가 모임'으로 위장해 모임을 이어간다. 연극의 배경이 되는 이들의 파티도 교외의 펍에서 비밀스럽게 진행된다. 이들은 파티에서 상류층의 오래된 예법을 따라하며 자신들이 상류층임을 스스로 재확인한다. 이들이 예법을 따르는 건 그저 상류층의 예법을 따라하는 놀이에 불과하다. 이들의 예법은 그 자체로 의미있다기보다 계층 간 구분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듯 보이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는 순서, 건배하는 방법을 비롯하여 라이엇 클럽 회원들이 행하는 파티 군데군데에서 상류층의 예법이 확인된다. 하지만 신입 회원 마일즈는 예법이 익숙하지 않은 탓에 먼저 클럽에 들어온 휴고로부터 지속적으로 조언을 받는다. 하지만 본래 예법이란 갑자기 학습되는 게 아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에 따르면 계층과 여기서 비롯되는 사회문화적 환경에 따라 행동 양식과 사고 방식, 취향 등이 형성되고 내면화된다. '아비투스'가 바로 그것이다. 이에 따르면 상류층의 예법은 어려서부터 체화되어 자연스럽게 나타나야 하는 것이지, 어느 순간 학습할 수 없는 것이다. 라이엇 클럽 회원들의 예법이 그저 우스꽝스러운 놀이처럼 보이는 까닭이다.
뿐만 아니라 예법은 매너의 발달과 맥을 같이 해왔다. 하지만 예법을 중시하는 라이엇 클럽은 매너와는 거리가 멀다. 이들의 파티는 성적으로 문란하고, 누군가에 대한 비교 우위를 거듭해서 확인하는 말과 행동으로 점철되어 있다. 클럽 외부, 즉 자신들보다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우위를 드러내는 것은 물론 클럽 내부에서도 미묘한 서열 다툼이 계속된다.
▲연극 <포쉬> 공연 사진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위선과 방탕함을 고발한다
라이엇 클럽의 파티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차기 회장 선거다. 차기 회장을 노리는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다른 회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고투한다. 이들의 노력은 가상하지만, 결코 아름답지 않다. 가이의 노력은 한 치의 실수로 인해 빛을 잃어버리고, 드미트리(여성일 때는 발렌티나)의 노력은 그저 돈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사는 데 그치며, 해리(여성일 때는 해라)의 방식은 성적으로 문란하고 폭력적이다.
이들의 파티는 누군가에 대한 우위를 확보하고, 이를 끊임없이 재확인하는 치졸한 권력욕의 발로다. 사회를 이끌겠다는 포부는 때론 자신감과 꿈을 향한 의지일 수 있겠지만, 라이엇 클럽 회원들의 포부는 허황된 자만에 불과하다. 이들은 자신들이 자부하는 것과 달리 실제 능력이라곤 초라하기 짝이 없다.
클럽을 이끄는 리더 제임스가 파티에 지각한 이유는 인턴십에 필요한 시험에 응시했기 때문이다. 세계를 이끈다고 반복해서 말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들의 파티는 시간이 지날수록 거칠어지는데, 이를 반복해서 제지한 펍의 사장 크리스(여성일 때는 케이트)를 폭행하기까지 한다. 그러다 크리스(케이트)의 상태가 악화되자 이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바쁘다. 애당초 이들에게 사태를 해결할 능력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특히 알리스터는 지속해서 외부의 적을 상정하고 분노한다. 상황이 자기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마다 중산층을 탓하고, 누군가를 멸시하며 온갖 분노를 쏟아낸다. 이 역시 권력욕은 있으나 능력과 책임 의식은 없는 위선자의 모습이다. 여기에 더해 연극은 침묵과 동조, 책임 없는 쾌락의 문제까지 통렬하게 꼬집는다.
▲연극 <포쉬> 공연 사진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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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류층 학생 파티에서 벌어진 일... 젠더 프리 연극 '포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