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열정 불태운 '영원한 현역' 이순재 별세현역 '최고령 배우'로 활동해온 배우 이순재가 별세했다. 향년 91세. 유족에 따르면 이순재는 25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이순재는 최근까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와 KBS 2TV 드라마 '개소리' 등에 출연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사진은 2006년 MBC 일일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제작발표회에서 극중 아버지 역을 맡은 탤런트 이순재.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이순재 연기 세계의 전환점은 70대에 찾아왔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그는 기존의 근엄한 가부장 이미지를 바탕으로 코믹 연기를 선보였다. '야동 순재' 캐릭터는 어린이 팬층까지 만들어냈다. 기존 작품활동을 통해 축적된 가부장 이미지에 안주하지 않고 낯선 영역으로 과감히 진입한 결과였다. 연기 뿐만 아니라 예능에서도 그는 도드라졌다. 팔순에는 예능 <꽃보다 할배>에서 지치지 않는 체력과 도전정신으로 '직진 순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순재는 다방면으로 활동했지만 이런 기록들만으로는 배우 이순재를 쉽게 설명할 수는 없다. 250편에 가까운 작품에 참여한 왕성한 활동력도 있겠지만, 그는 생방송 시대의 열악함을 경험했고 흑백 TV에서 컬러 TV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는 모든 기술적 변화를 온몸으로 통과한 증인이다. 그는 한국방송연기자협회를 설립했고, 회장을 3회 역임하며 후배 배우들의 환경 개선에도 힘썼다.
그의 존재는 한국 방송사 그 자체였다. 한 달에 30편의 작품에 출연하던 시대, 생방송으로 드라마를 찍던 시대, 사극 전성시대, 가족드라마의 황금기, 시트콤의 부상, 디지털 시대의 도래까지. 그는 모든 시대를 관통하며 그 시대가 요구하는 연기를 해냈다. 이것이 그를 그저 '국민배우'라는 표현이 아니라 '한국 방송사의 살아있는 교과서'로 부를 수 있는 이유다.
구순을 앞두고도 이순재의 도전은 계속 됐다. 2021년 출연한 연극 <리어왕>에서는 200분 공연 동안 이어진 방대한 대사량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이는 관객에 대한 예의인 동시에 배우로서의 자존심이었다. 대사를 외울 수 있을 때까지는 연기하고 싶고 매 작품이 유작이라는 생각으로 임한다는 그의 말에선 배우로서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2024년 5월 백상예술대상 무대에서 그는 평생을 했는데도 아직도 안 되고 모자라는 데가 있는데 연기에 완성이 없다는 얘기가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잘할 순 있어도 완성은 아니라는 그의 연기철학은 완성을 전제하지 않았기에 끝없이 도전할 수 있었고, 90세에도 현역으로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그가 남긴 유산을 오래 기억할 수 있기를
▲연기 열정 불태운 '영원한 현역' 이순재 별세현역 '최고령 배우'로 활동해온 배우 이순재가 별세했다. 향년 91세. 유족에 따르면 이순재는 25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이순재는 최근까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와 KBS 2TV 드라마 '개소리' 등에 출연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사진은 2003년 연극 '리어왕: KING LEAR' 연습실 공개 및 간담회에서 주요 장면 시연하는 배우 이순재. (연합뉴스 자료사진)연합뉴스
이순재의 마지막 무대를 떠올린다. 지난해 말 KBS 연기대상,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시청자들을 향해 "평생 신세 많이 졌습니다"라고 했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인사였다는 걸 그도 알았던 것일까.
이순재가 각별한 의미를 갖는 건 뛰어난 연기력이나 긴 필모그래피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직업인으로서 오래 살아남은 배우가 아니라 70년 한국 방송사 그 자체를 살아낸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연기에 완성은 없다"는 신념을 90세까지 실천으로 보여준 마지막 장인이었다.
70대에 시트콤으로 변신하고, 80대에 예능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90대에 200분짜리 연극 대사를 외우던 그 집요함. 그것은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아니 삶 자체에 대한 태도였다. 그가 떠난 자리를 상상해본다. 1950년대 생방송 스튜디오의 아수라장과 2020년대 디지털 촬영장의 정교함이 공존하는 공간. 그곳에서 이순재는 여전히 대사를 외우고 있을 것이다. 그가 떠나도 그가 직접 보여준 장인정신은 새로운 세대의 배우들 속에서 다시 살아날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일용직 노동자 겸 플랫폼 노동자. 음악-영화-책 감상이 유일한 취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