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로맨스만 보여줄 건가, 한계에 봉착한 '태풍상사'

[리뷰] 드라마 <태풍상사> 13~14화에서 드러난 이야기의 약점들

* 이 글에는 드라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강태풍(이준호)과 오미선(김민하)은 햇살 가득한 바닷가에서 서로의 이마를 맞대며 둘 사이의 로맨스를 전면적으로 드러냈다. 300만 개 수술용 장갑이 전소된 창고 화재, 일주일 내 납품 불가 통보, 부도 직전의 절박한 위기를 이제 막 넘긴 직후의 풍경치고는 지나치게 평화롭다.

물론 이러한 온도차는 이야기의 위기를 극복한 이후 숨고르기에 가깝지만 <태풍상사>가 14화까지 쌓아온 서사적 균열을 드러내는 징후가 보인다는 점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반복되는 위기 공식, 누적되는 피로

 드라마 <태풍상사> 스틸.
드라마 <태풍상사> 스틸.tvN

표현준(무진성)은 차선택(김재화)을 협박해 태풍상사가 납품할 장갑 보관 장소를 알아내고 고의로 창고에 불을 지른다. 장갑을 생산하는 미국 본사는 3개월 뒤에나 생산이 가능하다고 통보하고 설상가상 조달청은 납품 연기를 불허한다. 강태풍은 뒤늦게 표현준이 이미 2주 전에 동일 물량을 선주문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치밀한 음모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최근 에피소드의 위기 구조다.

문제는 이러한 위기 패턴이 <태풍상사> 전체를 관통하는 공식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표상선(표박호)이 사전에 시장을 장악하거나 물량을 선점하고, 태풍상사는 뒤늦게 이를 발견해 급하게 대응한다. 베트남 원단 에피소드, 안전화 수출 건, 그리고 이번 수술용 장갑까지. 위기의 발생 메커니즘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해결 방식 역시 태풍의 순발력과 미선의 지원, 그리고 막판 반전 카드(차용증 블러핑, 조달청 행정소송 등)로 수렴된다.

14화까지 진행된 드라마에서 위기 에피소드의 다양성은 부족하다. IMF 시대 중소기업이 마주하는 난관은 환율 변동, 자금 경색, 인력 이탈, 기술 격차, 신용 문제 등으로 복합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난관은 표상선이라는 단일한 적대자와의 단순한 대결구조로 압축되며 갈등 구조를 단순화된다. 구명관(김송일)의 복귀나 조달청 입찰 같은 새로운 국면이 열리긴 하지만, 이들은 위기의 질적 변화보다는 해결 수단의 추가에 가깝다. 서사는 점점 더 예측 가능해지고 태풍상사가 겪는 고난은 '또 한 번의 위기'라는 양적 누적으로만 체감된다.

캐릭터의 매력과 서사의 추진력 사이에서

 드라마 <태풍상사> 스틸.
드라마 <태풍상사> 스틸.tvN

<태풍상사>의 가장 큰 자산은 배우 이준호와 김민하다. 두 배우는 각각 서투르지만 기발한 아이디어와 열정을 가진 청년 사장, 똘똘한 주임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구현한다. 그리고 그들의 로맨스는 시청자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드라마가 두 캐릭터의 로맨스에 지나치게 기대기 시작할 때, 서사는 제자리를 맴돈다.

표현준이 아버지 표박호를 컨테이너에 가두는 전개는 자격지심이 폭발하는 극단적 순간을 보여준다. "강태풍이 내 아들이었어야 했다"는 표박호의 말은 표현준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강태풍을 향한 열등감과 아버지를 향한 인정욕구가 극에 달하자, 표현준은 아버지마저 공격한다. <태풍상사>가 반복되는 위기 극복 서사를 넘어서 아버지-아들 간 극명한 대비를 보이면서 진정한 부자관계에 관한 이야기로 충분히 확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복합적 주제들은 충분히 발전되지 않고 더 강력한 위기를 초래하는 악역을 만들기 위한 기능적인 서사로 그치는 듯 하다. 이야기는 다시 강태풍과 오미선의 로맨스로 돌아가거나 반복되는 위기 공식으로 회귀한다.

시청자들은 이미 <태풍상사>의 공식을 학습했다. 새로운 변주 없이 반복되는 위기, 그리고 이런 패턴을 보완하기 위한 로맨스 서사의 교차 편집이 그것이다.

위기를 넘어선 위기를 만들어야 할 시점

 드라마 <태풍상사> 스틸.
드라마 <태풍상사> 스틸.tvN

하지만 단 2회 만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표상선과의 대결 구도를 넘어선 새로운 층위의 갈등을 만들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조달청 입찰이나 안전화 수출 같은 소재들이 있지만, 이들이 단순히 '또 다른 위기'가 아니라 태풍상사와 캐릭터들을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돼야 한다. 구명관의 복귀, 차선택의 배신, 표현준의 폭주 같은 요소들도 단발적 사건이 아니라 서사의 복잡성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활용돼야 한다.

로맨스 서사 역시 마찬가지다. 태풍과 미선의 관계는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이것이 위기 서사와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과정이 조금이라도 어긋난다면, 이 두 캐릭터의 로맨스는 반복되는 서사 위기의 미봉책으로 활용되는 데 그칠 수 있다.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신들은 로맨스만을 위한 게 아니라 두 사람이 앞으로 마주할 더 큰 선택들, 요컨대 개인의 행복과 태풍상사의 생존 사이의 갈등을 예비하는 장면이 돼야 한다.

<태풍상사>는 여전히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 드라마다. 이준호와 김민하의 케미, 레트로 트렌드에 편승한 1990년대 감성, IMF 위기를 극복하려는 소시민들의 소박한 정서는 분명한 강점이다. <태풍상사>가 어떤 마침표를 찍을 지 그 선택의 순간이 도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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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직 노동자 겸 플랫폼 노동자. 음악-영화-책 감상이 유일한 취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