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안세영
TVN
"침대 끝 허리에 앉아서 혼자 지난 경기를 복기하며 '왜 이걸 못해봤어', '뭐가 무서웠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진 경기를 다시 보는 게 가장 힘들지만, 그 속에 답이 있으니까 볼 수밖에 없다. 스스로 찾아서 하고 스스로 찾아야지만 자신의 것이 되니까. '계속 해야지, 계속 나아가야지, 할 수 있지'라고 생각해야 그냥 덤벼볼 수 있다."
11월 19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는 배드민턴 여제 안세영이 출연했다.
세계랭킹 1위 등극과 함께 한껏 성숙해진 모습으로 돌아온 안세영은 "코트와는 다르게 사복도 입어보고 머리도 풀고 왔다"며 미소를 지었다. 배드민턴은 1년 내내 12개 이상의 대회가 이어지는 강행군이다. 안세영은 10월 프랑스 오픈을 마치고 잠깐의 재정비 시간을 거쳐 11월 18일부터 열린 호주 오픈(2025 BWF 월드투어)에 출전중이다.
현재 진행중인 월드투어를 포함하여 안세영은 올해 참가한 13개 국제대회에서 무려 9번이나 우승을 차지했고, 63승 4패로 승률은 94%에 이르렀다. 2002년생으로 23세에 불과한 안세영은 아직도 기량이 한창 성장중인 시기다.
"운동도 열심히 하게 되고, 동기부여가 생겨서 좀 더 잘하게 되는 것 같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스스로가 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됐다. 앞으로 세계랭킹 1위라는 위치에서 제가 어느 정도 퍼포먼스를 더 보여줄지 되게 설레고 기대되는 게 좀 더 크다."
"컨디션 좋으면 공이 느리게 보이더라" 물오른 안세영의 기량
지난 10월 프랑스 오픈 세계랭킹 2위 왕즈이(중국)와의 배드민턴 단식 결승에서는 불과 42분 만에 초고속으로 압승을 거두며 최근 안세영의 물오른 기량을 증명했다.
"요즘은 부상도 많이 없어져서 컨디션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자신감이 많이 커졌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공이 느리게 보이더라. 가끔 코트에 들어갈 때 '오늘 이기겠구나'라는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그럴 때일수록 더 차분하게 하려고 한다."
안세영은 올해 가장 기억에 남은 경기로 '79샷 랠리'로 화제가 된 지난 3월 전영오픈을 꼽았다. 당시에도 상대는 왕즈이였다. 2세트 6-6 동점 상황에서 두 선수는 장장 1분 28초 동안 79번의 랠리를 주고받았고 최종적으로 안세영의 득점으로 끝났다. 랠리 종료 후 두 선수의 기진맥진한 장면은 이 대회의 최고 명장면으로 남았다.
이 랠리는 '배드민턴 여자 단식 역사상 가장 긴 랠리'로 기록됐다. 또한 이 랠리 이후 경기흐름을 바꾼 안세영은 승리와 함께 전영오픈 챔피언까지 차지했다.
"너무 힘들기도 했었는데, 이 랠리할 때 이번만 포기하지 않고 넘기면 제 흐름으로 가져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 생각으로 버텼다. 경기 후 왕즈이 선수에게 '다음에는 이런 랠리 하지 말자'고 그랬다. 알아들은 것 같더라(웃음)."
배드민턴이라는 스포츠의 진정한 묘미는, 마치 바둑을 두듯 속고 속이는 수싸움의 향연이라는 데 있다. 안세영의 이번 시즌 상승세 중심에는 비장의 기술인 '크로스 헤어핀'이 있다. 안세영 특유의 질식수비로 상대를 지치게 하다가, 허를 찔러서 상대의 네트 바로 앞에 셔틀콕이 떨어지게 하는 정교한 기술로 머리핀 모양의 궤적이 특징이다.
헤어핀은 배드민턴에서 많은 선수들이 사용하는 기술이지만, 안세영의 헤어핀이 더 무서운 이유는, 상대 선수의 움직임과 셔틀콕의 방향과 각도를 모두 속이는 크로스 공격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상대방과의 끊임없는 수싸움에서 우위를 점해야만 가능한 플레이였다.
"어느 순간에 제가 이 기술을 쓰면, 상대에게 더 압박을 주고 득점을 할 수 있을지 타이밍을 알게 되더라. 저는 헤어핀을 되게 잘한다고 생각한다. 경기 전날 상대방 플레이를 모니터링하며 스타일과 수를 꼼꼼하게 분석하고 준비한다. 그래서 경기 중에 예측을 빨리할 수 있다."
8세부터 시작한 배드민턴... 세계랭킹 1위의 숙명
▲유퀴즈안세영TVN
한편으로 안세영이 세계랭킹 1위가 되면서 이제는 상대 선수들도 그만큼 안세영의 장단점을 철저히 분석하여 경기에 나오고 있다. 안세영도 "플레이하다가 당황할 때가 있다"고 털어놓으며 "그만큼 빨리빨리 순발력있게 대응하려고 한다"며 세계랭킹 1위로서의 숙명을 이야기했다.
"상대가 잡고 있는 그립 방향이라는 게 보이는데, 그 부분의 반대로 칠 때도 있고 정면으로 칠 때도 있다. 상대가 라켓의 각도를 트는 순간, 그 찰나가 보이니까 공 스피드를 좀 더 빠르게 준다든가, 템포조절이라는 게 있다. 이 타이밍에는 빠르게 와야 하는데 제가 천천히 친다든가, 그런 걸 많이 노린다. 저희는 상대를 속이고 속이는 운동이니까."
8세에 배드민턴을 처음 시작했던 안세영은 셔틀콕과 함께하는 동안 벌써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안세영은 배드민턴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당시 부상의 순간을 꼽았다.
"계속 부상을 달고 가야 하다 보니까, 저도 좀 많이 예민해져 있고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전을 하다가 점프했을 때 무릎에서 소리가 나면서 그때부터 계속 통증이 왔다. 배드민턴을 하면서 그렇게 심한 통증을 처음 느껴봤다. 슬개골 부분 파열이었다. 내가 남은 세트를 풀어나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겁을 많이 먹었다."
하지만 고통을 참아내며 경기를 이어나간 안세영은 결국 극적인 금메달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또한 2024 파리올림픽 결승전에서도 안세영은 부상을 이겨내고 또다시 금메달을 따내는 투혼을 발휘했다.
"부상이라는 게 예기치 못하게 올 때가 있지만, 이겨내는 과정에서 제 자신이 좀 많이 흔들리더라. 그래도 그럼으로써 스스로 좀더 단단해지는 계기가 됐다."
코트 위에서는 누구보다 강인한 배드민턴 여제지만, 안세영 역시 내면은 또래의 20대 여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안세영은 대인관계에서 겪는 외로움과 부담감이라는 고민도 솔직히 털어놓았다.
"제가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단식 선수이다보니까 혼자 하는 거에 익숙한데, 다른 사람들한테 말 한번 붙이기도 조심스럽고 이분의 시간을 뺏는 건 아닌가 싶어서, 사람을 대하는 게 어렵더라."
그럼에도 안세영은 "혼자가 익숙하다"며 챔피언의 길을 홀로 묵묵히 감당해내고 있었다. 때로는 혼자 지난 경기를 복기하면서 스스로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는 시간을 가진다고. "스스로 찾아서 하고 스스로 찾아야지만 자신의 것이 된다.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게 23살 안세영이 찾아낸 결론이었다.
한편으로 안세영은 1위의 자리를 지키는 게 더 어렵다는 고충을 털어놓았다. "떨어질 때의 느낌을 뭔가 알 것 같으니까. 이 느낌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더 힘들게 해내야 하니까"는 게 이유였다.
정상을 지키는 것은 어렵지만, 동시에 안세영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도 정상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안세영은 "당연히 우승이다. 가장 행복하다. 힘든 훈련을 이겨내고 또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이런 결과도 가져올 있다는 건 저에게 가장 큰 행복이지 않나 싶다"고 밝혔다.
올해에만 9번이나 정상에 오르며 누적 상금이 10억을 돌파한 안세영이지만, 정작 스스로를 위하여 쓰기 보다는 가족이나 주변 지인들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경우가 더 많다고. 안세영은 "제가 뭘 사고 싶다거나 이런 건 많이 없다 남한테 선물했을 때 더 기쁨을 느낀다"며 미소를 지었다.
'아직 내 전성기는 오지 않았다'던 안세영이 생각하는 자신의 진정한 전성기와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일까.
"제가 정말 완벽하게 플레이할 때가 전성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세상에 완벽한 건 없으니까. 꾸준하게 좋은 성적을 내는 게 제 목표다. 앞으로도 다치지 않고 앞에 있는 대회부터 차근차근 계속해서 우승을 쌓아가다보면 어느새인가 제가 또 '기억에 남는 한 챕터'를 만들지 않을까. 3년 전 20세의 나에게는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앞으로 좋은 일이 더 많을 거니까. 힘든 일 있어도 잘 이겨냈으면 좋겠어'라고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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