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계의 수치'로 불렸던 인상주의, 어떻게 세계를 열광시켰나

[리뷰] tvN <벌거벗은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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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印象主義, Impressionism)는 미술에서 빛과 분위기 또는 감정이 변화할 때 느낀 인상을 표현한 화풍을 의미한다. 인상주의 등장은 당시 서양 회화의 전통을 송두리째 뒤집고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켜 미술사에서 한 획을 그은 위대한 혁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은 현대 인류가 창조한 가장 경이로운 예술로 꼽히지만, 정작 초창기 인상주의에 대한 평가는 전혀 달랐다. 품위없고 외설스러우며 '예술계의 수치'라는 악평 세례까지 받던 인상주의는, 어떻게 대반전을 이뤄내며 재평가를 받게 되었을까.

11월 10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는 '마네 모네 고흐, 세계를 열광시킨 인상주의'편을 조명했다.

인상주의가 등장하기 이전, 유럽미술계에서는 대상을 최대한 실물에 가깝게 재현하는 엄격한 고전주의 화풍이 수백년간 이어져 왔다. 고전주의 작품들은 정확한 원근법 강조, 신화나 종교, 역사적 인물 등 중요한 의미를 지니거나 교훈적인 소재만을 다뤄야 한다는 등 엄격한 규칙을 지켜야 했다.

이러한 전통과 규칙에 저항하면서 등장한 화풍이 프랑스에서 시작된 인상주의였다. 에두아르 마네는 <피리부는 소년> <풀밭 위의 점심>같은 작품을 통하여 간략한 묘사, 원근법 무시, 일반인의 나체 묘사 등 고전 미술의 기준에 위배되는 파격적인 연출을 선보이며 '인상주의 예술운동의 창시자'로 꼽힌다.

당시 평론가들은 마네의 낯선 작품세계에 온갖 신랄한 악평과 조롱을 퍼부었다. 그럼에도 마네는 굴하지 않고, 당시 화가들의 정식 등용문으로 꼽히던 살롱전에서 또다른 문제작 <올랭피아>를 선보인다.

작품은 매춘부를 연상시키는 나체의 여인, 문란한 성생활을 의미하는 검은 고양이, 미술 작품에서는 잘 표현되지 않던 흑인 여성 등 당대의 금기로 꼽히던 파격적인 묘사들이 한꺼번에 대거 등장한다. 마네는 <올랭피아>를 통하여 당대 상류층 남성들의 이중성을 꼬집는 메시지를 남기며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다. 당시 파리 시민들은 마네의 그림에 욕설과 야유를 퍼부었고, 언론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수많은 조롱성 만평이 쏟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마네는 "현실과 동떨어진 우아하고 고상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위선적"이라고 생각했고 "사람들의 삶을 솔직하게 담아내는 것이 진정한 그림"이라는 확고한 소신이 있었다. 마네의 새로운 시도는 누구나 그림을 자유롭게 그려도 된다는 시각을 제시하며 수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줬다.

사진기의 등장, 자유로워진 화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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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는 <양산을 든 여인> 등의 작품을 통하여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인물이다. 재미있게도 모네와 마네는 처음에는 이름이 비슷한 서로를 싫어하던 앙숙사이였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보수적인 살롱전의 심사기준을 비판하면서 그림에 대한 서로의 철학이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의기투합한다.

19세기 들어 '사진기'의 등장은 미술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화가의 그림보다 더 정확하게 사물과 인간의 모습을 담아낼 수 있는 사진이 유행하면서 이제 화가들은 더이상 그림을 똑같이 그릴 필요가 없어졌다. 화가들은 이제 고전주의의 문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 또한 관리와 휴대가 용이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튜브 물감'이 등장하면서, 이때부터 화가들은 공간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그림을 그리는 게 가능해졌다.

마네, 모네를 비롯하여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에드가 드가, 폴 세잔, 카미유 피사로 등 기존 고전주의의 규칙과 틀에서 벗어난 개혁파 화가들이 모여 "우리만의 새로운 그림을 그려보자"고 다짐한다. 그들은 일상적인 사람들의 모습, 자연 그대로의 빛과 색채 등에 주목했다. 미술계에서 인상주의라는 화풍이 본격적으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또한 인상주의 화가들은 자신들의 주체가 된 최초의 독립 전시회를 개최하며, 기존의 살롱전 중심이던 미술계의 관행에도 도전장을 던졌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인상주의라는 정의는, 알고 보면 언론의 조롱에서 탄생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인상주의 화가들과 보수적인 주류 미술계 및 언론과의 갈등은 오랫동안 계속됐다. 미술계는 인상주의를 저급한 그림이고 예술 모독이라고 혹평하며 오늘날의 시각과는 전혀 다른 평가를 내렸다.

당시 고전주의 비평가들은 모네의 대표작 <인상, 해돋이>를 두고 완성된 그림이 아닌 '인상만 남겼다'며 비아냥에 가까운 악평을 날렸다. 하지만 정작 인상주의 화가들은, 순간적인 빛과 색채의 인상을 포착하는 그림 성향이 자신들의 예술관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인상주의라는 표현을 받아들이고 만족스러워했다고 한다.

이러한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화가 중 한 명이 바로 빈센트 반 고흐였다. 이전까지 어두운 색채와 분위기의 화풍을 지녔던 고흐는, 파리로 와서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접하고 매료되면서 그림 스타일이 크게 변하게 된다. 고흐는 후기작인 <밤의 카페 테라스>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의 걸작을 통하여 살아 숨쉬는 듯한 생동감을 담은 화려한 원색, 거칠고 역동적인 붓 터치를 선보였다. 또한 고흐는 인상주의 스타일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가미하여 변주시키면서 '후기 인상주의' 화가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조롱받던 인상주의, 세계를 휩쓸게 된 원동력

당대에는 크게 인정받지 못했던 인상주의가 시간이 흘러 세계를 휩쓸게 된 원동력은 무엇일까. 아트 딜러(미술품을 구입하여 고객에게 판매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판매경로가 된 갤러리와 화가들의 개인전이 활성화된다. 이제 화가들은 아트 딜러들 덕분에 더이상 기존 살롱전에 의존하지 않고 자유로운 창작활동이 가능해졌다.

막강한 자본력을 지닌 아트 딜러들은 인상주의 화가들을 후원해주기도 하고, 아트 딜러들간의 경쟁구도가 구축되며 인상주의 작품들의 가격은 급상승하기 시작한다. 한때 비웃음을 받던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은 높은 가격에 거래되었다. 인상주의가 무시받던 비주류에서 명실상부한 미술계의 대세로 거듭나는 시점이었다.

또한 인상주의가 가장 사랑을 받은 무대는, 기원인 프랑스가 아니라 오히려 멀리 떨어진 미국이었다. 당시 미국은 경제적으로는 급성장했지만 문화는 아직 유럽에 비하여 뒤쳐져 있었다. 미국의 부유한 신흥재벌들을 중심으로 유럽 귀족 문화에 대한 동경이 높아지면서 미술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미국의 재벌들 간에는 인상주의 수작들의 컬렉션을 수집하는 경쟁이 유행처럼 펼쳐졌다. 또한 이렇게 미국으로 흘러들어간 인상주의 작품들을 소유하게 된 부유층들은, 자신의 사회적 명예를 높이기 위하여 미술품을 다시 박물관에 기부하는 관행이 자리잡았다.

미국에서 인상주의 열풍에 가장 불을 지핀 화가로는 단연 고흐를 빼놓을 수 없다. 고흐와 동생 테오 형제가 모두 사망한 이후, 테오의 아내였던 요한나는 "세상에 형의 작품을 알리고 싶다"던 남편의 유언에 따라, 고흐의 작품을 뉴욕에 가져와서 전시했다.

대공황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미국인들은 고흐의 작품은 물론이고, 역경 속에서도 평생 예술에 모든 것을 바쳤던 고흐의 인생 서사에 공감하고 매료됐다. 뉴욕에서 열린 고흐 회고전이 대성공을 거두고, 미국 재벌들과 미술관에서는 고흐의 작품을 구매하려는 열풍이 일어났다고 한다. 고흐는 사후에 뒤늦게나마 미국에서 '비운의 천재 화가'로 재조명받게 된다.

미국이 인상주의 열풍에 빠져 있을 때 정작 본고장인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에 휘말려있었다. 모네는 자신의 대표작인 <수련> 연작을 국가에 기증할 것을 선언하며 전쟁의 비극을 겪은 프랑스 국민들을 위한 평화와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

2차 대전을 전후하여 프랑스에서는 인상주의에 대한 재평가 열풍이 일어나게 된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미술 애호가였고 인상주의로 대표되는 현대미술을 퇴폐미술이자 불손한 저항으로 여기며 혐오했다. 히틀러는 프랑스를 정복한 이후 인상주의 작품들을 강제로 약탈하여 파괴했고, 일부는 '퇴폐미술전'을 개최하면서 모욕을 가했다. 이에 연합군 측은 문화재 보존을 위한 특별부대인 '모뉴먼츠맨'을 창설하고 나치에게 약탈당한 다수의 문화재 탈환 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전후 프랑스 정부는 되찾은 인상주의 작품들을 국가적 보물로 지정하고 루브르와 오르세 등 국립미술관에 전시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또한 인상주의 그림 속 모델이 된 실제 장소나, 작가들의 생가까지 그대로 보존하거나 복원하고 관광코스화하는 정책도 추진했다. 한때 자국에서조차 외설적인 삼류미술로 취급받던 인상주의는, 오늘날에는 국가적 지원과 보호 속에서 당당하게 '프랑스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예술에 정답은 없으며 유행은 변화를 거듭한다. 21세기 현재 인상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관련된 미술시장의 규모만 약 1조 3000억 이상으로 추정될 만큼 여전히 뜨거운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처럼 인상주의는 기존의 관습에 안주하지 않고 혁명적인 변화를 주도한 예술가의 노력, 전 세계의 사랑을 받은 세기의 걸작들을 통하여 오늘날까지 현대인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로 대역전극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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