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얌섬> 스틸컷
필름다빈
03.
"여 섬 기운이 오묘한 것이 어여 뭍으로 나가는 것이 옳은겨."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초자연적이거나 완전히 비상식적인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단조로운 무인도의 시간을 의도적으로 오래 비추면서, 그런 반복과 흔적 속에 놓인 극 중 인물들이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더듬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어느 순간 자신이 아닌 존재로 탈바꿈하도록 만들고자 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창룡과 몽휘는 같은 시간을 함께 보냈음에도 서로 다른 시간선을 기억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또한 탈피의 또 다른 형태가 된다.
발톱을 먹은 쥐가 꺽쇠의 분신이 되어 나타난다거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성인 매화, 춘화, 도화(전희연 분, 1인 3역)가 등장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장면이 제시되기는 한다. 다만 이와 같은 민담과 설화에 기댄 사극 판타지의 외피를 이 영화가 마련하는 이유는 섬이라는 공간을 이승과 저승의 경계처럼, 또는 외부의 시간으로부터 완벽히 고립된 장소로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그렇게 환상과 상징, 해학과 비극 사이를 떠도는 동안, 바얌섬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처럼 느껴지며, 바깥의 시간은 더 이상 간섭할 수 없는 기묘한 공간이 된다.
04.
이러한 물리적 격리는 감정의 고립과 기억의 유예, 존재의 전이 등의 의미로 계속해서 확대되어 간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은 영화의 가장 깊은 정서라고 할 수 있는 '기억되지 않는 일'과의 연결성이다. 초반부에 등장하는 한 여인의 유골뿐 아니라, 섬에 표류한 세 인물이 원래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점차 잊어가는 일까지 섬의 모든 존재는 자신의 존재성을 잃어간다. 그 빈자리에는 말없이 존재하는 무형의 감각들이 대신 위치하게 되는데, 불빛이나 조류, 꿈과 같은 창룡, 몽휘, 꺽쇠가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다.
이야기의 말미에 등장하는 소복 입은 여인이나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이의 울음소리, 이미 언급한 바 있는 매화, 춘화, 도화 세 여인의 형상. 그리고 세 인물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면 결과적으로 영화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죽음에 가깝지만, 이는 애도의 과정을 그리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상실 그대로의 봉인과 방치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김유민 감독은 바얌섬이라는 공간을 존재 자체가 잊힌 이들의 세계에 대한 은유 혹은 자신이 완성한 망각의 체계 속에서 사라져갈 이들의 윤회를 위해 마련했는지도 모르겠다. 끝없이 허물을 벗은 끝에 닿게 될 공허의 전환이다.
▲영화 <바얌섬> 스틸컷필름다빈
05.
사실 이들의 관계를 단순한 상징으로만 읽는 것은 위험하다. 영화는 이들이 단순히 서로 다른 인물이 아님을 명확히 드러낸다. 세 사람이 모두 같은 뱀띠에, 같은 월일시를 공유한다는 설정은, 이들이 단일한 존재의 내면 파편이라는 사실을 보다 적극적으로 선언한다. 실제로 이들은 마치 하나의 인격이 셋으로 분열된 형태처럼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가장 나이가 많은 몽휘는 이미 모든 것을 겪은 과거의 자아로, 많은 활동량과 강한 의지를 보이는 창룡은 현재의 자아로, 마지막으로 충동과 불안정함을 안은 젊은 꺽쇠는 미래의 자아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이는 마치 한 사람의 시간적 분열이자 성격적 파편과도 같다.
영화 속 세 인물이 끊임없이 충돌하고 간섭하며 서로를 거부하면서도 필연적으로 서로를 필요로 하는 구조 안에 놓이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감독은 이 구조를 의도적으로 해체하거나 통합하지 않음으로써 끊임없이 반복되고 순환하는 영화의 리듬 속에서 이들 모두가 제자리걸음 하도록 만든다. 극적인 화해나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는 분명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허물'의 메타포와도 맞닿아 있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허물을 벗는 일을 '전환'으로 설명한 것은 허물이 다른 존재로 나아가기 위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단계이자 재구성의 매개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보자면, 결국 이들은 하나의 자아가 스스로를 나누고, 다시 합쳐지지 못한 채 떠도는, 감각의 해체 과정 그 자체처럼 작동한다.
06.
"이 섬이 보통 섬은 아닌 게 분명해유."
영화 <바얌섬>은 분명 이해하기 쉬운 영화가 아니다. 상업영화가 요구하는 기승전결의 서사, 명확한 인과관계, 인물의 성장과 회복 같은 구조적 기대를 의도적으로 거부한다. 대신 감독은 고립된 공간, 반복되는 몸짓, 침묵의 시간, 사라지는 인물들을 통해 관객을 '해석 이전의 상태'로 밀어 넣는다. 이는 이해를 방해하기 위한 난해함이 아니라, 익숙한 해석의 관성을 끊고 감각 자체로 직면하게 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이 영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의례이고, 형식으로 구축된 메타포이며, 끝내 설명되지 않을지도 모를 세계를 감각의 층위로 겹겹이 겹쳐 놓는다.
결국, 장르 너머에 위치한 영화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김유민 감독은 형식을 단순한 틀로 취급하지 않고, 그것을 존재론적 사유의 도구로 끌어올린다. 허물 벗는 뱀의 이미지, 셋으로 나뉜 존재의 이미지, 침묵하는 유골, 고립된 섬과 리듬적 편집은 모두 하나의 세계관을 품은 구조물이다. 이 영화는 스스로를 하나의 형식적 실험장으로 제시하면서도, 개념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감각적 유연함을 유지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어렵지만 건조하지 않고, 명확히 설명되지 않지만 의미로 충만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바얌섬>이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특별하고도 매력적인 면모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