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이비걸> 스틸컷
메가박스중앙㈜
05.
영화가 로미라는 인물을 철저히 양분하며 바라보는 시선 또한 '세대 간 여성 욕망의 단절'이라는 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회사에서 젊은 인턴과 윤리적 금기를 넘는 여성과 두 딸 이사벨과 노라의 엄마로서의 경계다. 그는 딸들과 함께 있을 때 매우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며 어른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딸이 옷차림이나 연애, 자기표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노골적으로 비판하거나 막아서진 않지만, 그 태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정작 자신은 가정의 신뢰를 깨뜨리면서까지 성적 판타지를 쫓고자 함에도 말이다.
때마다 모녀 관계가 하나의 프레임 속에 담기기도 하고, 특히 이사벨을 통해 그 세대만이 가질 법한 욕구를 드러내는 것 또한 같은 맥락에 있다. 반대로 로미는 자신이 원하는 '말도 되지 않는' 옷을 입으라고 강요하기도 하는데, 이는 단지 위선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세대 간의 여성 욕망이 단절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정확한 방식이다. 엄마는 딸에게 자신의 욕망을 진실되게 말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딸은 그런 엄마의 외형적 완벽함만 보고 믿으며 자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여전히 사회가 '여성'에게 어떤 욕망을 허용하고 또 어떤 욕망을 억압하는지를 드러내는 작은 무대가 이 영화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06.
"이걸 원한다는 걸 인정해요. 솔직하게."
한번 무너지고 역전된 관계는, 해고를 무기로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로미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다시 고쳐지지 않는다. 원래의 위치가 높았다는 뜻은 잃을 것 또한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을 경우 모든 것을 폭로하겠다는 사무엘의 태도 앞에서 로미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핼리너 레인 감독이 그로 하여금 영원한 쾌락을 허용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일방적인 관계 속에서도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욕망을 통해 잃어버리고 살았던 자기 성적 정체성을 되찾고자 하는 로미이지만, 결국 드러나는 진실과 남편의 일갈은 러닝타임 내내 끌어오던 판타지와 정서적 혼란을 일거에 흩어버리고 현실로 데려다 놓는다.
결국 이 영화가 1990년대 에로틱 스릴러 장르의 미학적 전통을 뼈대로 하되, 정반대의 방향으로 구조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존의 에로틱 스릴러가 여성의 육체와 쾌락을 시각적 정점으로 소비해 왔다면, <베이비걸>은 쾌락이 도달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감정적 균열과 자기 파열에 길게 이끌리는 식이다. 이는 과거 유사 에로틱 장르가 이용해 왔던 남성 중심의 여성 응시와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여성의 욕망이 주체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는 동의하면서도 남성의 시선에 의해 여성의 욕망을 소비하는 쪽에는 반대하며 그 틀을 뒤집으려는 시도다. 카메라 역시 그렇게 그의 몸을 일방적인 성적 대상으로 소비하지 않고, 시선을 따르며 자신의 욕망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보여주고자 한다.
▲영화 <베이비걸> 스틸컷메가박스중앙㈜
07.
영화 <베이비걸>은 결국, 하나의 쾌락이나 관계를 완성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쾌락의 완성에 도달하지 못한 채 겹겹이 쌓이는 욕망의 궤적, 그로 인해 무너지고 파열되는 주체의 모습을 오랜 시간 응시하게 만든다. 로미는 기꺼이 자신의 욕망을 따르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욕망을 통해 새로운 자아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 방식, 그리고 그것이 놓인 사회적 맥락 속에서 서서히 모든 것을 잃어간다. 욕망은 종종 정체성을 회복하게 만들지만, 이 영화는 그 욕망이 어떻게 발현되느냐에 따라 오히려 자아를 해체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는 점을 정면으로 말한다.
이 작품은 분명히 중년 여성의 일탈만을 다룬 에로틱 스릴러가 아니다. 권력과 젠더, 사회적 제도 안에서 사회가 여성의 욕망을 인정하지 않거나 허용하지 않을 때, 얼마나 복잡하고 위험하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예리하게 파고드는 심리 드라마다. 그렇게 로미는 무언가를 깨닫고 변화하는 인물이지만, 그 변화는 더 나은 자기로의 이행이 아닌 스스로가 누르고 있었던 욕망에 짓눌려 붕괴되는 한 존재의 궤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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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