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레데터 : 죽음의 땅>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03.
덱이 이야기의 중심으로 옮겨오면서 일어나는 또 하나의 변화도 생각해 볼 법하다. 타자를 공격하고 사냥하던 행위가 더 이상 절대적인 힘을 상징하는 수단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애초에 덱은 약하다는 이유로 무리로부터 강제로 추방당하는 인물이다. 겐나 행성에 도착한 이후로도 외계 덩굴과 독을 뿜는 식물, 거대한 조류 등에 의해 끊임없이 공격받는다. 도리어 합성 인간인 티아(엘르 패닝 분)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남을 수 있게 된다.
이는 덱이라는 존재 개별적으로는 성장 서사를 마련하기 위한 구조가 되지만, 그동안 시리즈가 쌓아왔던 폭력과 사냥, 힘의 논리에서 보자면 그 행위 자체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되묻게 되는 장치가 된다. 우리는 그동안 프레데터 종족의 힘을 타 종족을 복종시키고 지배하기 위한 도구만으로 이해해 왔지만, 무리에 속한 이들 사이에서의 통제 권력으로도 이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같은 자리에 놓여 있는 서로 다른 레이어, 약한 존재인 덱이 일련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일, 외부로부터 공격받으면서도 사냥에 다시 나서는 이유, 독단적인 사냥을 벗어나 타자와의 협력을 도모하는 것 등의 모든 서사는 프레데터 공동체, 야우차 족이 기존에 갖고 있던 힘과 사냥의 개념과 구조를 스스로 전복시키기 위한 행위가 되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극이 입고 있는 외피는 개인의 존재성을 인정받기 위한 여정이지만, 단순히 사냥에 성공해 돌아가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04.
"야우차는 혼자 사냥한다. 넌 도구다."
잠깐 언급했지만, 이 영화 <프레데터 : 죽음의 땅>에서 합성 인간인 티아는 중요한 존재다. 성장 서사나 로드 무비의 형식적 요인을 갖추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서사로부터 벗어난 두 존재가 서로의 결함과 결핍을 알아보게 만드는 대상이어서다. 덱은 무리로부터 버림당한 사냥꾼이고, 티아는 자신을 만든 조물주로부터 버려지는 도구다. (덱이 처음부터 그를 도구라고 부르는 것은 일종의 복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처음 조우하던 장면의 티아는 칼리스크로부터 공격받아 하반신이 떨어져 나간 상태로 존재한다. 힘을 증명하지 못해 덱의 입장에서는, 자신보다 훨씬 더 나약한 대상인 것. 칼리스크의 동굴로 인도하겠다는 약속이 있기는 하나, 그런 존재를 등에 둘러업고 여정을 다시 시작하는 일은 존재의 무게를 공유하는 방식의 교감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동안의 프레데터 시리즈에서는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정서적 교류다.
후반부에서 칼리스크 종족의 어린 개체로 밝혀지는 작은 생명체 '써드' 역시 기존에 존재했던 힘의 규범을 무너뜨리는 또 하나의 축이 된다. 그는 원초적 존재인 덱과 기술적 상징인 티아와 달리 순수한 생명성을 지닌 존재다. 그로 인해 세 인물은 야생과 기계, 생명이라는 삼각 구도를 구축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그 중심에 타자성의 연대를 위치시킨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것은 이 관계 중 어떤 대상도 인간이라는 존재에 봉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덱과 칼리스크가 웨이랜드 유니티에 의해 포획될 뻔했다는 점, 티아는 처음부터 그들을 위해 존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요한 변화다.) 그리고 덱은 (아마도) 야우차 족 가운데 처음으로 타 종족과 교류하고 힘을 합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누군가와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혼자 사냥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가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덱의 목표는 사냥꾼으로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아니다. 대신 그는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를 위해 함께 싸우는 자리를 선택한다. 이 선택은 분명 프레데터이자 야우차 족의 내부 규범에도 반하는 일이다. 영화는 그렇게 새로운 윤리를 가진 미래의 알레고리로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인간의 흔적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자리에서 피어나는 가장 인간적인 면모인지도 모른다.
▲영화 <프레데터 : 죽음의 땅> 스틸컷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05.
겐나 행성에서의 서사가 모두 마무리되고 난 뒤에 야우차 프라임으로 돌아온 덱이 자신의 아버지를 향해 칼을 겨누게 되는 것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아니, 영화의 시작에서 형의 죽음을 딛고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주인공으로서는 반드시 넘어야만 하는 관문과도 같다. 티아, 써드와 함께하기 위한, 힘의 논리에 의해서만 좌우되지 않는 자신만의 무리를 만들기 위해서도 그렇다. (아마도 더 있으리라 추정되지만) 앞으로 이 시리즈 위에 남은 서사가 존재한다면, 프레데터 종족은 적어도 무조건적인 포식자 혹은 사냥꾼으로만 존재하게 되지는 않게 될 것이다.
영화 <프레데터 : 죽음의 땅>을 단순히 프레데터가 중심인물인 시리즈로 말하기는 이제 어려울 것 같다. 형식의 변화 깊숙한 곳에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어떤 형태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 내재되어 있어서다. 오랜 시간 폭력의 미학으로만 설명되던 시리즈가 이제 관계와 윤리에 다가가기 시작했다는 점만으로도 이 변화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어쩌면 이 영화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학살이 아닌 돌봄, 경쟁이 아닌 연대와 같은 새 시대를 열어갈 프레데터 종의 존재 이유와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타자와 함께 나아가는 새로운 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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