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스틸컷
싸이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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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하자 엄마. 나 너무 힘들다."
타이틀인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라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 역시 그 지점이다. 이 문장은 관객으로 하여금 마주하게 되는 그 즉시 윤리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데, 아들 환을 향한 도덕적 판단은 이미 그때부터 시작하게 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영화가 오프닝에서 스릴러 장르의 외피를 잠시 가져다 쓰는 것 역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전개를 따르다 보면, 환은 엄마 레티한을 버리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홀로 돌보는 일의 한계를 어렵게 인정하고 그의 기억이 머물러 있는 곳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다시 말하면, '엄마를 버린다'라는 표현은 영화 전체를 역설적으로 뒤집어 보게 만들기 위한, 인물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상처와 결단을 은폐한 채 관객들이 먼저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방안에 해당한다. 실제로 극중 인물인 환의 선택은 윤리적 무책임이 아닌 감정적 피로와 현실의 무게가 (지난 10여 년간) 축적된 결과에 가깝다. 엄마를 돌보기는커녕, 언제 또 자신이 정신을 잃고 쓰러질지 알 수 없는 막연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후의 선택인 것이다. 한국으로 향하기로 마음먹기 전, 베트남 다른 지역에 엄마를 버리려는 시도를 했다가 다시 찾아가는 장면이 한 번 배치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Leaving Mom'이라는 원제를 찾아보면 국내 개봉을 위해 선택된 이 문장이 얼마나 더 효과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자동(自動)의 의미가 담긴 원제와 달리, 지금의 표현에는 일종의 죄책감과 같은 감정이 내포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는 사랑과 책임이라는 가치가 사회적 구조가 아닌 개인의 결단으로 환원되어야 할 때의 현실적 문제와 함께 영화의 중심에 서 있는 환이라는 인물의 감정적 구조가 얼마나 복잡한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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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영화가 한국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볼 법 하다. 엄마 레티한이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도 마지막까지 매달리는 장소는 자신이 태어난 베트남이 아닌 한국이다. 치매 환자가 놓지 않고 끝까지 매달리는 장소는 그의 일생에서 가장 두터운 기억 혹은 정체성이 어디인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한국에서 정민이라는 남자를 만나고 아들 지환을 낳아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어떤 사고도 겪게 된다. 일련의 과정은 앞서 이야기했던 과거 서사에서 모두 밝혀지는 일들이다.
한 개인의 기억이 체험적 집합에 지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일생에 달라붙게 되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지점이다. 결코 시간의 문제나 질병의 증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물론 서사적으로는 일련의 방향을 향해 그려진다. 하지만 환과 레티한이 방문하게 되는 한국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와는 조금도 상관이 없다. 이후 벌어지는 일은 결과적 사건일 뿐이다. 오히려 자신의 청춘을 모두 바쳐 보살피고도 고맙다는 소리 한번 듣지 못하고 얼굴도 알지 못하는 이부형제의 이름만 부르는 엄마의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환의 마음과 처지가 훨씬 더 가까운 곳에서 영향받는다. 한국이라는 공간이 어쩌면 엄마가 원하는 마지막 안식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인해서다.
▲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스틸컷싸이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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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는 베트남 시장을 정확히 겨냥한 합작 영화라는 장점도 뚜렷하지만, 반면 연출 전반이 여전히 2000년대 한국 상업영화의 신파적 정서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는 단점도 보여준다. 치매라는 소재를 다루는 방식 역시 무게감 있는 성찰보다는 감정 소모적인 방식으로만 이루어지고 있으며, 캐릭터의 활용에서도 일상적 현실보다는 극적 상황을 설정하는 것에 우선하는 듯 보인다. 특히, 영화의 중요한 순간에서만 선택적으로 기억을 되찾아 현실로 돌아오는 레티한의 모습에서는 이 작품에 윤리적 딜레마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과 탐구가 있었는지 의문을 품게 만든다.
러닝타임 내내 감정을 밀어붙이는 형식과 기존의 관습적 문법만을 따르려는 영화적 성격 또한 구조적인 피로감을 조성한다. 슬픔과 자책, 불안으로만 수렴되는 제한적인 감정적 스펙트럼이 정서적 피로를 누적시키는 것이다. 눈물과 감동의 회로로만 환원되는 서사 또한 관객들로 하여금 이미 예상 가능한 감정 흐름 속에 갇히게 만들며 영화적 동력이 이야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고조에만 놓여 있도록 만들어 감정 이입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내는 데 실패할 뿐만 아니라, 작품의 내구성이나 비평적 설득력을 획득하는 데도 어려움을 남긴다. 성장기를 지나 전성기에 접어들고 있는 베트남 시장에서와 달리, 국내 관객에게는 더 이상 신선함을 주기는 어려운 방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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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우리 가족 중에 단 한 사람만이라도 행복해야 되는 거 아닐까?"
베트남이라는 구체적이고도 낯선, 동시대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두 사람의 서사를 타자의 가족사처럼 받아들이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작품이 보여주는 생존의 무게, 돌봄의 문제, 사랑의 지속 가능성과 관련한 문제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돌봄의 위기나 연대의 결핍까지도 떠오르게 만들며 그런 자리에 대한 의식을 환기시킨다. 이 작품이 갖는 작은 성취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환은 예전처럼 엄마를 곁에 둔 채 거리의 이발사로 일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대신 그의 목에는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발작을 대비한 안내 표식이 걸려있다. 그 표식은 다가올 내일에 대한 두려움이면서도, 이 사랑을 놓지 않고 계속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렇게 고단한 삶의 한가운데로 다시 돌아온 두 사람은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모습이다. 영화는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내세운다. 한국으로의 여정이 어쩌면, 환 스스로가 자신을 시험해 본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라도 하는 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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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