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손가락 찾으러 공장으로... 남매가 마주한 비정한 현실

[김성호의 씨네만세 1209] 25회 전북독립영화제 <손가락을 찾는 방법>

몇 년 전인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오래 입원한 적이 있다. 6인실을 몇 달간 쓰는 동안, 같은 병실에 신체 일부가 절단된 뒤 접합수술을 한 이들이 여럿 들고 나갔다. 신기한 것은 이들 중 상당수가 비슷한 배경을 가진 젊은 청년이었단 사실이다. 그들과 함께 지내며 나는 그 대부분이 비슷한 일로 다치고 입원했단 걸 알게 되었다. 이들 중 다수는 공장 노동자로, 기계를 잘못 다룬 탓에 손가락이며 다리가 눌리고 잘렸다고 했다. 어째서 비슷한 직업, 유사한 환경에 있는 이들만이 같은 병실에 들어오는 것일까. 그런 의문이 자연스럽게 자리했다.

서울서 공부하고 비교적 안정된 일자리를 옮겨 다닌 때문일까. 서른이 다 될 때까지 산업재해를 피부로 체감한 적이 없었다. 서른 즈음에 해양수산부 산하 한국해양수산연수원에서 항해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고 난 뒤에야 산업재해를 당하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론교육을 마치고 시험에 통과한 뒤 실습을 위해 처음 상선에 오르던 그날, 한국 굴지의 대기업이 운영하는 선박에서 한 항해사의 손가락이 잘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가 마지막이 아니었다. 육지로는 좀처럼 전해지지 못하는 목소리들이 저기 어느 배에서 배를 묶은 밧줄이 터져 중상을 입었다거나, 기관실에서 무거운 물체가 떨어져 발가락이 잘렸다거나,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유로 바다에 떨어져 목숨을 잃은 선배며 동기들의 이야기를 전해왔다. 사고는 끊이지 않았으나 바뀌는 것은 없었다. 산재 인정을 받는 일도 눈치를 봐야 했고, 보상조차도 소송을 거치는 경우가 흔했다.

손가락을 찾는 방법 스틸컷
손가락을 찾는 방법스틸컷전북독립영화제

산업재해 다룬 영화, 아이를 주인공으로?

25회 전북독립영화제서 선보인 <손가락을 찾는 방법>은 최근 여러 영화제서 각광받고 있는 작품이다. 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이어 전북독립영화제, 최근 열린 12회 부천노동영화제에서까지 관객과 만날 기회를 얻었다. 21분짜리 단편영화는 2023년 23회 대한민국청소년영화제서 은상을 받은 <아가미로 숨쉬는 방법>의 손윤희 감독의 신작이다. 대학시절 출품했던 전작에 이어 두 번째 영화로 <손가락을 찾는 방법>을 제작해 선보였다.

영화는 산업재해를 소재 삼은 작품치곤 낯선 형식을 가졌다. 주인공이 이제 갓 초등학생이 되었을까 싶은 어린 남매란 점부터가 그렇다. 언니 리희와 동생 리안 남매는 산업재해가 거듭되는 공장을 찾아 혼란하고 괴기스런 상황과 마주한다. 계기가 되는 건 아버지의 부상이다. 공장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하고 남매에겐 별 일 아닌 것처럼 가볍게 거짓말을 한 때문이다. 그로부터 아이들은 아버지의 잘린 손가락을 찾기 위해 공장으로의 여정을 떠난다.

잘린 손가락을 찾게 되면 아버지의 손이 원래대로 돌아오리란 믿음, 그 아이다운 상상이 참혹한 현실과 맞물려 빚어내는 이야기다. 그러나 관객은 그저 흥미롭게 영화를 지켜볼 수 없으니 현실이 영화 속 상상 못잖게 참혹하단 걸 알아서일 테다.

손가락을 찾는 방법 스틸컷
손가락을 찾는 방법스틸컷전북독립영화제

아버지 손가락 찾아 공장을 헤매는 남매

리희와 리안이가 공장에서 마주한 현실은 끔찍하기 짝이 없다. 그곳엔 그저 아버지의 손가락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용접 노동자는 시력을 잃었고, 아버지처럼 손가락을 잃은 이들도 수두룩하다. 지하에서 만난 한 노동자는 잘려 없어진 제 손가락 자리와 수없이 많은 잘린 손가락들을 대어보며 제 것을 찾고 있다.

아이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공장은 이미 가장들이 노동하는 건전한 산업의 터전이 아니다. 열악한 환경 가운데 착취당하는 이들과 사람의 형상을 잃어가는 괴물 같은 이들의 수용소일 뿐이다. 아이들의 모험이 마주하는 그 끔찍한 형상들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산업 현장을 자라나는 세대 앞에 내보일 수 있는지 되묻게 된다.

영화의 한 순간, 아버지의 손가락을 찾으려는 아이들과 산재 등 후속처리만 생각하는 공장장의 모습이 대비된다. 사용자에게 노동자는 부품일 뿐이지만, 아이들에겐 더없이 소중한 가족이 아닌가. 그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법제도와 자본의 논리가 영화 가운데 서럽게도 선명하기만 하다. 착취와 피착취, 계급화 된 자본과 노동의 고리가 단순히 손가락을 찾아 나선 동심 가득한 아이들의 이야기로부터 읽히는 건 어째서일까. 우리네 현실이 영화와 다르지 않은 때문은 아닌가.

소위 '중후장대' 산업에 종사하는 지방도시 남성 노동자, 건설노동자와 아직 여물지 못한 공장 실습생들, 이주노동자며 먼 바다로 나가는 뱃사람들만이 산재 피해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농어촌 노동자, 때로는 도시 사무직 노동자들도 죽고 다치는 일을 당하고는 한다.

전북독립영화제 포스터
전북독립영화제포스터전북독립영화제

매년 사망자 2000명, 한국의 현실

분업화된 노동현실 가운데서 산업재해는 더는 저기 먼 누구의 일로 여겨져선 안 된다. 우리 모두가 쓰고 먹는 일과 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공공연한 산업재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경주하지 않고 있다. 수많은 아까운 죽음에도 불구하고 경영책임자가 면책될 여지가 큰 데다 원안보다 형사처벌 수준 또한 크게 낮아진 반쪽짜리 중대재해처벌법을 그나마도 간신히 통과 시킨 지난날을 떠올린다.

법 제정은 결국 현실을 바꾸지 못하였다. 매년 일터에서 수천 명이 죽어나가는 현실은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다치는 이는 그보다 수십 배가 더 많아서, 산재 피해를 당한 이가 매년 수십만 명씩 통계에 잡힌다. 올해 국정감사에 나온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산업재해 재해자 수는 2020년 10만 8379명에서 ▲ 2021년 12만 2713명 ▲ 2022년 13만 348명 ▲ 2023년 13만 6796명 ▲ 2024년 14만 2271명으로 증가세가 뚜렷하다. 사망자 수도 매년 2000명 내외를 기록하고 있다.

<손가락을 찾는 방법>이 일깨우는 건 노동현장에서 죽고 다치는 모두가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당연한 사실이다. 그 사실을 우리 법과 제도는 과연 감안하고 있는가. 영화 속 돈과 절차만 생각하는 사용자와 손가락이 잘린 노동자가 동등한 인격체란 사실을, 그들 모두가 어느 누구의 더없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충실히 고려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 영화가 비정한 현실을 다루며 어린 아이를 주인공 삼은 이유가 이로부터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을 테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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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