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생명의 은인> 스틸컷
㈜영화특별시SMC
03.
"그놈들 잡을 때까지는 여기서 지내면 되겠다."
두 사람이 동거하게 되는 시점부터 영화는 이전까지 이어왔던 일종의 불안을 애매하게 봉합하면서 짧지만 깊은 안온함을 보여주고자 한다. 세정의 500만 원을 은숙이 함께 찾아주기로 하면서다. 물론 순수한 목적은 아니다. 이제 그는 자신에게 그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더 이상 감추지 않으며 훨씬 더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세정 역시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모습이다. 어차피 자신이 지낼 공간을 위해 필요했던 액수이기에, 지금처럼 은숙과 함께 지낼 수 있다면 잠시 빌려주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이의 존재감이 나쁘지 않아서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사기꾼을 찾아내고 500만 원을 되찾게 된 다음 날, 은숙은 각서까지 쓰며 빌린 병원비를 들고 혼자 도망쳐 버린다. 심지어 함께 지내던 집은 밀린 월세로 보증금까지 다 까먹으며 바로 비워줘야 하는 상황. 다시 돈을 잃게 된 세정은 즉시 길 위로 나앉게 된다. 그만큼 500만 원이라는 금액은 이 작품 속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자립 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세정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출발점이자, 그가 지금껏 기대해 온 독립된 삶의 마지노선. 동시에 은숙에게는 자신의 생명을 연장할 마지막 수단이자 기회로 여겨진다.
이렇게 두 인물의 처지를 관통하는 동일한 금액은, 단순한 재화 이상의 생존 수단이자 정체성의 문제로 작동한다. '나만의 방'과 '목숨값' 사이의 금액은 철저히 양도 불가능한 절박함의 무게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은 다시 한번, 사회가 정해놓은 자립의 금액과 죽음을 피해 보려는 한 인간의 마지막 수단이 동일한 위치에 매달려 있다는 사실로 치환되며 비극을 극대화한다.
04.
영화 <생명의 은인>에서 반드시 짚어봐야 하는 점은 세정이 두 번에 걸쳐 500만 원에 대한 위협을 받게 되는 구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사실이다.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첫 번째는 명백한 사기꾼에 의한 것이고, 두 번째는 자신이 생명의 은인이라 말하며 접근한 은숙 때문에 벌어지는 사건이다. 이 두 사건은 모두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세정이 누군가로부터 신뢰를 요구받고, 그 신뢰가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만드는 일에 해당한다. 하지만 두 사건의 본질은 완전히 다르다. 사기꾼과 달리 은숙은 과거로부터 이어진 감정적, 시간적 라포가 형성된 대상이어서다.
이 차이가 영화의 후반부 전개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낸다. 은숙이라는 인물이 오롯한 악인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한 서사가 발 디딜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은숙의 전 남자 친구인 현식(허정도 분)은 그사이의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인물이 된다. 두 번의 사건을 지나는 동안, 세정은 자신의 과거에 놓여 있었던 이야기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게 되고, 은숙은 그 사건으로 인해 평생 마음으로부터 떨쳐낼 수 없었던 일 하나와 화해할 수 있게 된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후의 방법을 통해서다.
▲영화 <생명의 은인> 스틸컷㈜영화특별시SMC
05.
"너는 세상에서 네가 제일 불쌍한 거 같지? 나도 살아. 청승 떨지 마. 오늘은 그냥 네 생일이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고도 무엇 하나 기억할 수 없는 시간을 홀로 잘 버텨오긴 했지만, 세정에 삶 속에 그 흔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영화 속 그의 세계가 낯설게 다가오는 이유다. 너무나도 밝고 씩씩하게 잘 자랐지만, 세상은 그를 '다르게' 여기고, 또래 친구들은 겪지 않아도 될 일을 너무 빨리 혼자 경험해야만 한다. 가장 평범하고도 가까운 일상에서부터 '신뢰'라는 감정을 끊임없이 빼앗겨 왔을 것이고, 지켜내기 위해 몸부림쳐야 했을 것이다. 비극의 동의어와도 같을 생일이라는 단어만 꺼내도 표정부터 경직되는 그의 모습에서 그 무게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영화는 그 자리를 은숙과 그의 전 남자 친구 현식과 같이 갑자기 등장한, 익숙한 일상과는 달리 더 위험하게 느껴질 수 있을 인물들을 통해 점차 가능성으로 되돌려 놓는다. 심지어 이들은 세정을 속이기도 하고, 무례한 방식으로 다가오기도 했던 존재다. 두 사람은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신뢰라는 것이 사회적 합의와 시스템 속에서 자동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감수하며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것임을 알려준다.
이처럼, 익숙한 현실과 낯선 인물 사이의 신뢰를 중심으로 한 감정적 역전은 자립준비청년이라는 세정의 입장을 고려할 때, 훨씬 더 크게 두드러진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모든 호의와 믿음, 진심과 신뢰가 깨끗하고 안전하기만 한 것이 아니며, 때로는 상처 위에 세워지거나 가느다란 감정적 잔재 위에 형성된 것이 더 믿을 법하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그 불완전한 감정에 마음을 걸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렇게 쌓인 마음 위에서 비로소 세정 역시 자신의 생일을 다른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06.
중후반부를 지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한 선택이 다소 쉽게 결정되며, 급하게 마무리된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운 것은 분명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만 사회 드라마의 정석적인 흐름을 따르고자 노력하면서도, 은숙이 정말 세정의 생명을 구한 인물인지, 아프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들며 미스터리적 긴장감을 놓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의미의 고집마저 보인다. 이로 인해 영화는 사실 여부를 판단하고 답을 내리기 위한 단순함을 피해 어떻게 관계가 구성되는지에 대한 하나의 층위를 더 파고들 수 있게 된다.
영화의 말미에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려는 세정을 향해 '모르는 과거를 마주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는 보육원 원장의 대사가 등장한다. 이 말을 오래 곱씹게 되었다. 이유는 하나다. 은숙에게 이 문장은 '아는(잊을 수 없는) 과거를 마주하는 일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려서다. 이 글의 처음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영화가 그를 오롯한 가해자로 몰거나 남겨두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세정을 찾아간 이유 또한 마지막으로 그 일을 해내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감춰진 또 하나의 (심리적) 자립은 여기에도 있고. 이 영화 <생명의 은인>은 여기에서 끝나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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