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자연이 만든 블록버스터, 기대되는 두 가지 이유

[리뷰] 영화 <프레데터: 죽음의 땅>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르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목할 만한 블록버스터가 극장가에 등장했다. 바로 댄 트랙턴버그 감독의 <프레데터: 죽음의 땅>이다. 1987년 첫 영화가 나온 이후 속편 복이 영 없었던 <프레데터> 시리즈를 2022년 영화 <프레이>, 그리고 애니메이션 영화 <프레데터: 킬러 오브 킬러스>로 다시 부흥시키는 데 성공한 감독의 복귀작인 만큼 기대치가 상당히 높아졌음에도 <프레데터: 죽음의 땅>은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 이유를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해 본다.

'공포'에서 'SF 모험'으로, 장르 전환이 통하다

 영화 <프레데터: 죽음의 땅> 스틸컷
영화 <프레데터: 죽음의 땅> 스틸컷이십세기폭스

<프레데터> 시리즈는 호러 영화로 시작했다. 아널드 슈워제네거를 주연으로 내세운 1편은 언제 어디서 나타나 사람을 죽일지 모르는 외계인 '프레데터'를 통해 전쟁과 유독한 남성성에 대한 비판의식까지 담아냈다는 평을 받는다. 그런 1편을 염두에 두고 <프레데터: 죽음의 땅>을 관람한다면 본작이 지니는 방향성이 의외라 느껴질 수도 있다. '호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기 때문이다.

<프레데터: 죽음의 땅>은 그동안 '괴물'의 영역에 있던 프레데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사모아계·통가계 뉴질랜드 신예 배우인 디미트리우스 콜로아마탕기가 프레데터 '덱' 역할을 맡았다. 동족에게서 버림받아 자신을 증명해 내야 하는 어린 사냥꾼 '덱'은 사냥 불가능한 사냥감 '칼리스트'를 무찌르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하반신이 잘린 안드로이드 '티아(엘 패닝 분)'와 의외의 우정을 확립하며 여정에 함께하는 것이 본작의 주 내용이다.

문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누비는 두 중심인물이라는 공식은 최근까지도 그 흥행 능력을 입증해 왔다. 2023년 드라마 <라스트 오브 어스>나 2024년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 역시 이러한 정석적 구도를 잘 살려내어 비평가들과 관객들 모두에게서 찬사를 받아 왔다.

<프레데터: 죽음의 땅>이 이런 작품들과 맺는 가장 결정적이고도 유일한 차이는 바로 외계인이 주인공이라는 것뿐이다. 훌륭한 성과를 거두어 아버지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덱의 욕구는 가장 원초적인 것이고, 그렇기에 지금껏 적대자 역할을 해 온 프레데터라도 관객들의 공감과 응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본작은 시리즈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에서 PG-13(우리나라의 15세 관람가 등급에 준함)판정을 받은 영화이기도 한데, 이 때문에 피가 난무한 프레데터의 '살육 액션'이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본작은 프레데터와 안드로이드를 주연 삼은 덕분에 통상적인 액션 영화의 한계를 뛰어넘는 연출을 보여줄 수 있었고, '무자비한' 프레데터를 좋아하던 기존 팬들의 우려도 단숨에 종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오락 영화의 기본을 지켜내면서 영리하게 꾀한 '장르 전환'이 신규 팬과 기존 팬, 두 마리 토끼를 전부 잡은 셈이다.

'현실적인' 배경의 이유

 영화 <프레데터: 죽음의 땅> 스틸컷
영화 <프레데터: 죽음의 땅> 스틸컷이십세기폭스

<프레데터: 죽음의 땅>은 이처럼 시원시원한 액션 영화인 데다가, 외계 행성을 배경으로 삼는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의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본작을 본 사람들은 이국적이면서도 익숙한 풍경에 미묘한 기시감을 느낄 것인데, 이는 <프레데터: 죽음의 땅>이 뉴질랜드에서 촬영되었기 때문이다. <반지의 제왕> 실사영화 시리즈의 배경으로도 쓰인 뉴질랜드가 제공하는 천혜의 경관은 관객을 또 하나의 신비로운 경험으로 이끈다.

댄 트랙턴버그 감독은 뉴질랜드에서의 현장 촬영을 고집한 이유로 '자연스러움'을 꼽는다. 레터박스(Letterboxd)와의 인터뷰에서 트랙턴버그 감독은 "우리가 자연 속에, 야생 속에 있다고 느끼게 하고 싶었다"라고 밝힌다. 거기에 약간의 특수효과를 덧입힌 결과가 바로 <프레데터: 죽음의 땅> 속의 매력적인 행성 '겐나'다. 해당 행성을 유심히 관찰하면 '외계 행성'치고 지구와 비슷한 동식물이 많이 기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외계 괴수들은 실제 초원을 누비는 동물들과 닮았고, 식물은 여전히 현실적인 녹색을 띤다.

이러한 지구와의 유사성은 '외계 행성' 설정을 발목 잡지 않는다. 오히려 몰입감을 증대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이미 외계인과 안드로이드가 주인공인 비현실적 상황에서 배경까지 낯선 모습으로 확정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은 것이다.

당장 2023년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와 본작을 비교하면 이러한 결정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는 화려한 CGI와 볼륨(volume) 기술을 도입해 우리가 사는 지구와 완전히 딴판인 '양자 디멘션'을 작품의 주 배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이는 현실과 지나치게 괴리된 모습으로 관객의 피로를 자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레데터: 죽음의 땅>이 뉴질랜드에서의 촬영을 중시한 건 오히려 마법적인 이야기로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함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프레데터: 죽음의 땅>은 호러 영화였던 기존 시리즈의 잔인함을 계승하면서도 이를 시원시원한 액션·모험 장르로 재편해 다시금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 뉴질랜드의 광활한 풍경과 이를 십분 활용한 세계관적 상상력 역시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창의적이고 풍부하다. <프레데터> 시리즈에 입문하고 싶었으나 엄두를 내지 못했다면, 혹은 겨울의 포문을 완성도 탄탄한 블록버스터 영화로 열고 싶다면 극장에서 <프레데터: 죽음의 땅>을 관람해 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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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 픽션 신봉자. 이야기가 가지는 힘을 믿고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