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는 일본보다 해외에서 더 큰 충격을 안겼다. 인간의 의식이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세계, '전뇌'라는 개념은 <매트릭스>나 < 블레이드 러너 2049 > 등 수많은 작품에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9년 후 등장한 후속작 <이노센스>는 정작 본토에서 또 한 번 흥행 참패를 맞았다. 철학적이고 난해한 대사, 현학적 구도, 한 치의 감정선조차 허락하지 않는 냉정한 세계관은 대중에게 쉽지 않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20년이 흐른 지금, 그 실패는 되레 이 작품의 명예가 되었다. 2004년 <이노센스>가 예언하듯,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상을 넘어 인간 그 자체를 모사하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기계는 인간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보다 '인간은 이미 기계가 된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이 더 현실적이 되어버린 지금, 이 작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이노센스>는 2032년을 배경으로, 인간의 영혼이 전뇌 속으로 확장된 시대를 그린다. 공안 9과 소속 버트와 토그사는 '하다리'라 불리는 소녀형 애완로봇이 주인을 살해하고 자살하는 사건을 조사한다. 수사 끝에 거대 기업 '로커스 솔루스'의 비밀이 드러나지만, 그보다 작품이 집요하게 추적하는 건 '인간의 본질'이다. 인간이 왜 자신을 닮은 기계를 만들고, 그 기계가 왜 인간을 공격하는가. <이노센스>는 이 단순한 물음에서 시작해 철학과 신학, 윤리와 기술의 경계를 끝없이 넘나든다.
영혼이 있는 기계가 묻는 철학
▲애니메이션 영화 <이노센스>의 한 장면.
디스테이션
버트는 거의 완벽한 사이보그다. 그의 남은 인간성은 뇌의 일부와 사라진 동료 쿠사나기 소령의 기억뿐이다. 반면 토그사는 공안 9과에서 몇 안 되는 '완전한 인간'으로, 이성보다 감정을 믿는다. 두 사람의 대조적인 존재 방식은 곧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가를 상징한다.
영화 속에서 인용되는 밀턴, 데카르트, 공자, 성경의 구절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하고자 만들어온 문명의 언어들이다. "인형은 왜 자신을 만든 인간을 공격하는가?"라는 질문은 곧 "창조주는 왜 자신의 피조물에게 반항당하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신과 인간의 관계를 인간과 로봇의 관계로 치환하면서, <이노센스>는 '창조의 죄'를 탐구한다.
영화의 대사는 종종 난해하고, 화면은 지나칠 만큼 정교하다. 눈부시게 세밀한 배경, 2D와 3D의 완벽한 융합, 빛과 그림자의 미학은 마치 한 편의 시각 철학서 같다. 관객은 스토리를 따라가는 대신, '사유의 깊이'로 빠져든다. <이노센스>는 단순한 서사가 아니라, 철학적 명상으로 작동한다.
현실이 된 20년 전 예언
▲애니메이션 영화 <이노센스>의 한 장면.디스테이션
2004년, <이노센스>는 시대를 너무 앞서 있었다. 인공지능은 여전히 공상과학의 영역이었고, 로봇은 인간의 노동을 돕는 존재에 머물렀다. 그러나 2025년의 우리는 다르다. AI가 시를 쓰고, 음악을 만들며,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낸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실제로 무너지고 있는 지금, <이노센스>의 문제의식은 더 이상 철학적 공상이 아니다.
버트가 토그사에게 던지는 대사가 있다. "인형에게도 영혼이 있다면, 인간과 뭐가 다르지?" 이 짧은 문장은 오늘날 인공지능을 둘러싼 모든 논쟁의 본질을 꿰뚫는다. 기술의 진보는 인간을 구원할까, 아니면 인간을 대체할까.
결국 <이노센스>는 '기계의 반란'을 이야기하는 영화가 아니다. 인간의 오만, 인간 스스로의 기계화를 고발하는 작품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완벽하게 만들고자 했지만, 그 욕망이 오히려 인간을 기계로 환원시켰다. 그리하여 제목 'Innocence(순수)'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이미 잃어버린 마지막 덕목을 뜻한다.
재개봉한 <이노센스>를 다시 보는 일은 단순한 향수나 팬심의 문제가 아니다. 20년 전 한 감독이 던진 질문을 이제야 우리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한다. 이 영화는 더 이상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의 '경전'이다.
<이노센스>는 결코 친절하지 않다. 그러나 그 불친절함이야말로, 인간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가장 정직한 질문의 형식이다. "우리는 아직 인간인가?" 라는 질문 앞에서, 20년 전의 애니메이션은 가장 현대적인 작품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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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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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살해한 애완 로봇, 현실이 된 20년 전 예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