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독립영화제 성료, 대상작은?... 낯선 실험영화가 주는 특별한 감상

[김성호의 씨네만세 1207] 25회 전북독립영화제 옹골진상 <몬스트로 옵스큐라>

정동진, 목포국도1호선 등 전국 여러 독립영화제 가운데서도 성공례가 아닌가 한다. 10월 30일부터 이달 3일까지 닷새간 펼쳐진 전북독립영화제 이야기다. 올해로 25회 차를 맞이한 전북독립영화제엔 모두 1118편이 출품돼 이 중 57편이 상영되며 한국 독립영화판에서 제작되는 거의 모든 작품이 출품을 고려하는 주요한 창구로써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단순히 영화를 소개하는 장을 넘어 동료 영화인을 응원하고 관계를 돈독히 하는 독립영화 축제로서의 가치 또한 분명히 해냈다.

전북독립영화제 최고 영예는 대상격인 옹골진상이다. 순우리말로 '실속 있게 꽉 찬' 모양을 뜻하는 '옹골진' 작품을 골라 선정한다. 매년 독립영화계 주목할 만한 작품이 이 상을 가져가는 가운데, 올해는 홍승기 감독의 단편 <몬스트로 옵스큐라>가 옹골진상의 주인공이 됐다.

홍승기는 근 몇 년 동안 독립영화계에서 주목할 만한 작가를 여럿 배출한 성결대학교 영화영상학과를 졸업한 영화인이다. 올해 전북독립영화제 외에도 58회 시체스국제영화제, 27회 정동진독립영화제, 25회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26회 대구단편영화제, 1회 대전꿈돌이영화제 등 크고 작은 다양한 영화제 문턱을 넘어 관객과 만났다. 옹골진상을 비롯하여 <몬스트로 옵스큐라>가 올해 여러 영화제서 받은 다양한 상들은 영화가 가진 남다른 착상과 스타일이 나름의 성취를 얻은 결과라 해도 좋겠다.

몬스트로 옵스큐라 스틸컷
몬스트로 옵스큐라스틸컷전북독립영화제

영화 현상 폐수에서 생겨난 괴물

신작 <몬스트로 옵스큐라>는 1996년 서울에서 버려진 폐수로 괴물이 생겨난다는 독특한 설정을 배경으로 한다. 폐수는 영화 필름을 현상하며 나온 것으로, 이로부터 비롯된 괴물이 영화적 환상을 간직한 채 도심을 떠도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로그라인은 '폐수로부터 괴물이 깨어나고, 필름 속 수많은 영화는 그의 기억이 된다'고 적고 있는데, 영화가 남긴 기억과 망각된 기억 사이로 도심을 걷는 괴물의 모습을 실험적으로 그려냈다.

17분짜리 실험적 극영화는 흑백 화면 위에 방황하는 괴물의 모습을 비춘다. 제목을 이루는 '옵스큐라 Obscura'는 사각형 구조물로, 카메라의 기원이 된 암상자 카메라 옵스큐라를 연상케 한다. 옵스큐라는 앞에 붙은 '몬스트로 Monstro', 즉 괴물을 뜻하는 라틴어와 맞물리며 영화적 괴물이 된다. 흑백 화면에 더하여 고전영화를 떠올리는 연출, 나아가 이 같은 제목까지 맞물리며 <몬스트로 옵스큐라>는 그대로 영화적 고전을 고전적 SF적 연출로써 구현한 독자적이며 실험적 작품으로 완성됐다.

감독은 전북독립영화제에 앞서 '더 이상 자신을 찾아오지 않으니 스스로 세상 밖으로 나와 자신을 잊은 현실을 영화로 오염시키는 한 괴물에 대한 이야기'라 작품을 소개했다. 디지털로 변환되기 이전 필름시대의 유산으로써의 영화예술이 괴물로 화하여 현실을 오염시킨다는 이야기가 곧 작품의 구조임을 보여준다.

한편으로 이는 20세기 말엽 곧 디지털로 대체될 운명에다 TV와 인터넷에 의해 빠르게 설 자리를 잃어가는 영화예술의 비명을 형상화한 듯도 하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흘러 기존 극장 영화가 OTT 서비스 등과도 경쟁하고 있는 현실 가운데서 <몬스트로 옵스큐라>의 이야기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몬스트로 옵스큐라 스틸컷
몬스트로 옵스큐라스틸컷전북독립영화제

전북독립영화제의 원픽 <몬스트로 옵스큐라>

전북독립영화제는 <몬스트로 옵스큐라>에 대하여 "영화에 대한 헌사이자 전위적인 선언"이라 극찬했다. "감독의 치열한 고민과 집념에 찬사를 보낸다"고까지 평한 심사위원단의 극찬이 곧 옹골진상의 이유가 되었는데, 잊혀져가는 고전적 영화의 환상적 매력이며 사회가 돌아보지 않는 짜투리며 쓰레기조차 자산으로 삼는 영화의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독특한 작품으로 평가한다.

물론 이 짤막한 작품이 영화 전체에 대한 헌사이며 전위까지 나아간 선언이라고 볼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남는 건 사실이다. 영화 아래 깔린 치열한 고민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도 언급되지 않았으며 추정하기도 어려운 것 또한 물론이다. 실험영화가 흔히 마주하는 비판, 즉 무엇을 위한 어떤 방식의 실험인가에 대하여 마치 현대예술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적 실험 또한 그 구체성을 확인하지 않고 있는 때문이겠다.

그럼에도 <몬스트로 옵스큐라>는 전에 흔히 본 적 없는 독자적 상상이며 기존의 양식화된 내러티브와 차별화된 작품임을 부인할 수 없다. 대동소이한 작품들에 지루함을 느끼는 일단의 관객들이 <몬스트로 옵스큐라>에 호평을 내어놓는 것도, 여러 영화제 심사위원들이 불명확한 의도와 성취에도 호의적 평가를 내리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여긴다.

25회 전북독립영화제는 <몬스트로 옵스큐라> 외에도 차석격인 다부진상을 서한울 감독의 <너의 안부를 물을게>에, 야무진상을 이현빈 감독의 <마루와 내 친구의 결혼식>에 안겼다. 배우상은 <자매의 등산>에서 공연한 강진아, 심해인 배우가 함께 받았다.

전북독립영화제 포스터
전북독립영화제포스터전북독립영화제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전북독립영화제 몬스트로옵스큐라 홍승기 실험영화 김성호의씨네만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