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불평등에 맞서라, '미친 모자장수'의 탄생 배경

[안지훈의 뮤지컬 읽기] 뮤지컬 <매드해터(MAD HATTER)>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미친 모자장수(Mad Hatter)의 새로운 기원을 상상한 뮤지컬 <매드해터>가 개막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뮤지컬은 동화 속 인물을 모티브로 삼아 19세기 영국 런던에서 먹고 살기 위해 모자를 만드는 14살 소년 '노아'와 사람들이 쓰고 싶어 하는 모자를 만드는 걸 꿈꾸는 또 다른 소년 '조슬린'의 만남을 그려낸다.

올해 관객 앞에 첫 선을 보이는 <매드해터>는 2인극으로 구성됐다. 뮤지컬에 등장하는 인물은 훨씬 많은데, 조슬린을 연기하는 배우가 공장 직원, 노숙자, 모자 가게 손님 등을 함께 연기한다. 한 작품 속에서 많은 캐릭터를 구현해야 하는 만큼 배우의 퍼포먼스와 상상력이 중요하다. 이 역할은 박영수·조성윤·송유택이 소화하며, 노아 역은 이봉준·이한솔·홍기범이 맡는다.

 뮤지컬 <매드해터> 공연 사진
뮤지컬 <매드해터> 공연 사진(주)홍컴퍼니

암울한 시대를 발랄하게 비튼다

<매드해터>의 배경은 만국 박람회를 앞둔 1851년 런던으로, 14번째 생일을 맞이한 노아는 법적으로 더 많이 일할 수 있게 된다. 더 정확하게 묘사하자면 노아와 같은 소년들에 대한 착취가 법적으로 허용된 것인데, 먹고 살기 바쁜 노아는 이런 생각을 할 겨를은 없다. 노아는 더 많이 일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지만, 노아를 기다리는 건 열악한 노동 환경과 노동 조건이다.

<매드해터>에서 모자는 사람들의 계급적 지위를 나타내는 표식으로 설명된다. 어떤 모자를 쓰는지가 그 사람의 계급 또는 사회적 지위를 나타낸다. 그래서 지위에 맞게 표준화된 모자의 모델이 있고, 모자 공장에 취직한 노아는 정해진 대로 모자를 만든다. 이때까지만 해도 노아는 영국 신사의 상징인 탑햇을 동경하고, 공장에서 일할 수 있다는 데 만족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노아가 목격하는 건 하나둘 쓰러져가는 노동자들이다. 이는 곧 공정 과정에서 사용되는 수은 탓으로 밝혀지는데, 노아가 이 사실을 밝혀내고 공장 사장에게 시정을 요청하는 모습에서 <매드해터>는 노동 문제에 대한 고발극의 성격을 띤다. 하지만 작품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에 대한 유쾌한 풍자극으로 영역을 확대해간다.

사장은 노아의 요청을 거절할 수 있다. 수은을 값비싼 다른 재료로 대체하는 것보다 쓰러진 노동자를 새로운 노동자로 대체하는 것을 택한다. 절대적 강자인 자본가의 행위는 그럴 듯한 말로 포장될 수 있다. 사장은 수은에 노출되기 쉬운 작업 환경이 싫다면 언제든 그만둬도 좋다며 자신은 선택할 기회를 주었다고 자부한다. 물론 이는 노아가 반론하는 바와 같이 선택하는 게 아니라 노동자가 먹고 살기 위해 참는 것일 뿐인데 말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구체적인 불평등이 발견된다. 약자는 참아야 하고, 강자는 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참는 것도 능력이고,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이미 병들고 지친 노동자는 참을 힘마저 잃어버린 사람이다. 참을 힘을 상실한 사람은 자본주의에 의해 '쓸모없음' 판정을 받고 거리로 내몰린다. 사장에 의해 자신의 요청이 무시 당하는 좌절을 맛본 노아가 연대하는 대상은 바로 거리에 내몰린 사람들이다.

 뮤지컬 <매드해터> 공연 사진
뮤지컬 <매드해터> 공연 사진(주)홍컴퍼니

불평등한 세상에 맞선 유쾌한 반란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인 모자는 곧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그래서 모자는 곧 사회 질서이고, 이 질서는 불평등하다. 동시에 <매드해터>에서 모자는 '대량 생산의 산물'이라는 또 하나의 의미를 갖는다. 이미 만들어진 모자에 자신의 머리를 끼워 맞춘 사람은 기존의 질서에 편입되는 셈이고, 이를 통해 돈을 버는 모자 공장 사장은 불평등한 질서에 의존해 이윤을 추구하는 셈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자는 동일성을 상징한다. 노아는 바로 이 동일성에 저항하며 개별성을 옹호한다. 노아는 조슬린과 함께 만드는 사람이 편한 모자가 아니라 쓰는 사람이 편한 모자를 만든다. 쓰는 사람의 추억과 꿈을 담아 각양각색의 모자를 만든다. 이때 더 이상 쓸모가 없다고 여겨지며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이 노아와 조슬린의 모자 만들기 프로젝트에 함께 한다. 그렇게 미친 모자장수가 탄생한다.

이런 의미들이 한데 모여 노아와 조슬린의 프로젝트는 강력한 저항이 된다. 어떤 사람 눈에는 희한하고 괴상하게 보일 수도 있는 모자를 만들어 팔고, 다양한 모자를 쓰며 행진한다. 동일한 모자를 쓰고 자신의 지위를 뽐내는 사람들, 그리고 노아를 내몰았던 모자 공장 사장이 있는 만국 박람회장으로 걸어간다. 이 모든 저항은 유쾌하게 그려지고, 소년 노아의 시선와 만나 순수함이 더해진다.

한편 뮤지컬 <매드해터>는 내년 1월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링크아트센터 드림 2관에서 공연된다. 서사에 철학적 질문을 녹여내는 시도를 거듭해온 강남 작가와 유쾌하고 발랄한 음악을 선보여온 리카C 작곡가 등이 창작에 참여했다.

 뮤지컬 <매드해터> 공연 사진
뮤지컬 <매드해터> 공연 사진(주)홍컴퍼니
공연 뮤지컬 매드해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